비질, 시시포스의 형벌은 어디에나 있다..
양극성 장애에 대한 대학 학업 과정에서의 배려,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할까.
남자의 말투에는 빈정거림이 묻어 있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도발에 가까웠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생산하는 뭔가 중요한 걸 한번 생각해봐. 나는 위스키를 홀짝거리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다. 클리블랜드는 대체 뭘 생산할까? 우리를 중요하게 만드는 게 뭘까? 우리를 남들과 구별해주는 게 뭘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서 나는 클리블랜드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했다. 농담을 한 것이다. "클리블랜드에서 뭐가 나냐고?" 내가 말했다. "실패." 동석자들이 모두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렇게 막장 도시에서 살다니 안 된 일이야." 변호사가 말했다. 위스키 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클리블랜드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언의 규칙이 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그곳 흉을 보면서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어도 외지인들은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 내가 말했다. "거지 같아. 네가 클리블랜드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재미있어 하는 눈치였다 - P21
클리블랜드에 꼼짝없이 갇혔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내 고향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그곳은 "호반의 실수The Mistake on the Lake"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도시다. 끈질긴 인내로 점철된 패배자의 도시다. 그곳 사람들은 고난에 직면해도 특유의 끈덕진 낙관주의를 잃지 않는다. - P22
러스트벨트의 도시에서 주황빛 불꽃은 단순히 역한 냄새와 오염의 전조만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착오도 아니며 혁신의 부족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샌프란시스코나 보스턴 같은 도시의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러운 존재일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그 이상이다. 그것은 일자리고 세금이다. 그것은 경제성장을 가리킨다. 저 불꽃이 타오르면 클리블랜드가 잘 굴러간다는 뜻이야, 하고 철강 노동자들은 말한다. 저 불꽃은 우리 역사와 우리 정체성의 일부다. 그것은 어떤 것도 영원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에서 시간의 시험을 이겨내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 P23
마감부 배치가 복권 당첨이라면 수송부 배치는 복권 당첨에 더해 같은 날에 마당에서 값진 보물을 찾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직원이 수송부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업무는 상대적으로 수월했고 제러미는 곁에 와서 사람을 비탄에 빠뜨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든 것은 일터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것이었다. 짐작하건대 수송부에서 죽음을 초래할 것은 몇 가지뿐으로, 크레인과 포장 기계, 그리고 권태가 다였다. 제철소에서 근무를 시작한 첫날, 권태는 아직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샘, 찰리와 더불어 처음 몇 시간 동안은 쉬지도 않고 비질을 했는데, 곧 이것이 시시포스의 형벌이라는 걸 깨달았다. 바닥 한 부분을 청소하면 먼지 뭉치가 빗자루에 쓸려 허공으로 날아갔다. 다음 부분으로 넘어갈 때쯤에는 먼지가 막 청소를 끝낸 곳에 다시 내려앉았다. 완벽주의자 악마는 내 어깨에 앉아 계속해서 나를 채근했다. 나는 몇 번이고 청소를 끝낸 곳으로 되돌아가 내려앉은 먼지를 다시 쓸어냈다. "소용없는 일이에요." 찰리는 말했다. "그렇게 다 못 쓸어내요." "그렇다니까" 샘은 맞장구쳤다. "그냥 쭉 앞으로 갑시다. 그래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단 나아 보이네." - P99
며칠 후 그 고참이 내가 일하는 작업장에 들렀다. 머리는 벗어지기 시작했고 걸음걸이는 예순을 넘긴 사람답지 않게 우쭐거렸다. "이봐, 꽥꽥이." 그가 음흉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네." 나는 우물거리며 답했다. 이 비열한 늙다리가 지껄이는 헛소리를 더는 참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가 꽥꽥이라 는별명으로 나를 부른 이후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건 자살이었다. 그건 내가 그 별명에 신경을 쓴다는 걸 증명할 것이라서 나는 때를 기다리며 고참이 혼자 떠들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는 여자들은 죄다 꽃뱀이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너희 여자들은 돌봐주기를 바라잖아." 그가 내게 말했다. "너희 여자들은 머릿속에 돈 생각밖에 없지." 너희 여자들은, 너희 여자들은 그가 마침내 숨을 쉬려고 말을 멈췄을 때 나는 눈을 부릅뜨고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워, 워, 워," 그는 놀라서 몇 발짝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지금 나한테 한 거야?" "네." "내 면전에 대고?" "네. 어쩔 건데요? 울기라도 하게요?" 제철소에서 존중을 얻는 것은 정교한 기술이었다. 타박상을 입어도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수동적으로 보여서도안 된다. 어떤 남자 못지않게 강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 P105
제철소에 여성 노동자가 있기는 했지만 확실히 소수집단이었다. 몇몇 남자들은 여전히 여성 노동자들을 회사가 채워야 하는 할당량으로 보았다. 기껏해야 그들은 여성 노동자들을 상징적 존재로 여겼고, 많은 경우 우리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았다. 우리가 아이디어나 의견을 내면 이 남자들은 언제나 우리가 말한 내용을 확인하려고 다른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툭하면 맨스플레인을 하려고 했고 1950년대에서 곧장 나온 듯한 말을 생각 없이 내뱉었다. - P123
십대 시절 양극성장애 진단을 받은 이후로 이 병이 남긴 조각들을 끊임없이 치우는 기분이었다. 대학생일 때 변덕스러운 심리 상태로 학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이 실패를 만회할 나름의 방법을 강구했다. 졸업 연장을 신청하고 불완전 이수 학점(미국대학교에서 학생이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하나의 교육과정에 필요한 모든 학업을 완수하지 않았을 때 받는 학점. 학기 내에 마치지 못한 과제는 정해진 기간 안에 제출해야 한다)을 받은 것이다. 교수들은 나를 꽤 책임감 있는 학생으로 알고 있어서 병이 발병하면 기꺼이 편의를 봐주었다. 또한 내가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게을러서도, 미루는 버릇이 있어서도 아니라는 걸 알았고, 그런 교수들의 융통성 덕분에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 P137
나는 개가 된 듯 꾸밀 수 있었다. 활기차고 사랑과 애정이 넘쳐 보이게 할 수 있었다. 토니가 몇 시간 동안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길 수 있도록 기꺼이 슬픔을 감출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가 떠나면 질병 앞에서 모든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여자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쥐들은 어둠 속에 빵 부스러기를 찾아 싱크대 밑에서 나올 것이고 나는 필사적으로 악마를 못 본 척 외면할 것이다. 더 이상 미소를 지을 수 없을 만큼 분별도, 지각도 할 수 없는 날이 오리라는 걸 안다. 그러면 등을 활처럼 구부린 채 발톱을 세우는, 역겹고 굶주린 존재가 될 것이다. 토하고 쉬익 소리를 낼 것이다. 가까이 오는 모든 사람에게 성을 낼 것이다. 나는 개가 아니므로, 결단코.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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