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행복, 윤리, 가능성

옮긴이의 말 지금 우리에게 행복은 무엇을 하는가

행복은 우리가 지향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행복의 획득은 곧 우리의 기량, 잠재력의 획득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잘 사는 법에 대한 도덕적 결정을 안내하는 원칙) 이기도 하다. 행복은 말하자면 이중의 목적인을 제공한다. 즉, 삶의 목적이면서 좋은 삶의목적인 것이다. - P361

마치 행복하다는 말이 정서를 부여한 것처럼, 잘 자람이 온통 느낌인 것처럼 말이다. 행복은 말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최소한 그것이 "존재"하는 듯한 판타지를 심어 준다. - P363

행복이라는 말을 반복함으로써 표현되는 것은 바로 행복에 대한 욕망그자체다. - P363

행복은 그 자체가 이미 유동적이기 때문에 유동적인 방어책이다. 꼭 집어 고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상관관계, 기대, 대답, 소망 등에 의존한다. - P369

감정의 기호처럼 작동하는 말들, "감정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말 가운데 행복은 윤리와 너무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서 가장 많이 언급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은 삶이 행복한 삶이다. 혹은 덕을 갖춘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혹은 가장 좋은 사회가 가장 행복한 사회다. 행복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좋은 것의 척도다. 그래서 행복은 좋은 것이 이미 성취되었다는 기호가 된다. 우리가 행복이라는 말의 묵직함을 좀 더 온전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행복과 윤리의 친밀성을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 P370

니체 자신의 확언(그것이 필수적인 것도, 명백한 것도 아니지만)에의하면, "우리 행복한 자들"이라는 귀족적 발화 행위에는 부정이 필요하지 않다. 타자들은 말하자면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러하다는 식으로 부정되며, 시간이 흐르면서 연민의 대상이 되고 불쌍해지고 불행해진다. 부정에서 시작한 자들, 아니오라고 말함으로써만 행동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타자들, 부정된 자들이다. - P372

우리는 행복을 행운의 전위로 재해석할 수 있다. 내가 첫 장에서 지적했듯이, 행복happiness이라는 영어 단어의 초기 의미 중 하나는 행운 관념, 즉 운fortunate 혹은 요행lucky 관념과 관련돼 있다. 그러나 행복의 역사는 행복이 단순히 행운을 지시하는 데 그칠 수 있음에 대한 불안을 포함한다. - P374

결국 나는 행복에 대한 내 비평을 "긍정으로의 전회"라고 하는 것까지 포함할 수 있도록 확장하고자 한다. 긍정으로의 전회는 행복으로의 전회로 환원되지 않는다. - P384

우리가 나쁜 느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까이 다가오는 것에 의해 우리가 어떻게 변용되는지 알기 위해서이다. - P389

행복을 우리가 옹호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하지 않으면, 우리가 옹호하고 있는 그 행복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삶에 대해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이 되기를 원하는지 물을 수 있다. 가능성은 가능해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인식돼야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헤더 러브가 잘 묘사하고 있듯이, 되돌아가는 것, 심지어는 "거스르는 느낌"(Love 2007)을 수반한다. 가능성을 받아들이려면 과거로의 회귀, 즉 우리가 상실한 것뿐만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것, 포기한 것뿐만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가능성에 대해 배우는 것은 계보학을 하는것, 현재의 도착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현재를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성에 대해 배우는 것에는 현재로부터의 일정한 소외가 수반된다. 익숙한 것이 물러나면 다른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정서 이방인들은 창조적일 수 있다. 우리는 그릇된 것들을 바랄 뿐만 아니라, 포기하라고들 하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이런 바람들을 중심으로생활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가 행복에서 멀어져야 일이 벌어진다. 우연발생이 생겨나는 것이다. - P392

불행할 자유는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복할 자유를 포함한다. 그런 자유는 행복 하중을 가볍게 할 것이다. 불행할 자유는 그러므로 행복을 제쳐 두지 않을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우연발생을 행복 안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우리는 그런 투쟁의 역사들을 물려받았다. 필연성으로서의 행복에 맞선 투쟁은 가능성으로서의행복을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행복 운동이 아닌 우연발생 운동으로서의 정치 운동에 대해 생각하려 한다. 그것은 불행한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이 되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건 결코 아니다. 혁명적 형태의 정치의식은 우리가 불행을 느낄 대상이 정말로 얼마나 많은가에 대한 의식화를 포함한다. 행복에 대한 욕망이 행복 없음을 나타내는 기호들을덮을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혁명적 정치학은 불행에 계속 근접해 있기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연발생의 정치학이 단순히 불행에 집착하거나 그것을 정치적 명분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 P400

우연발생의정치학이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가능성, 어쩌면perhaps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만약 가능성을 여는 것이 불행을 야기한다면, 우연발생의 정치학은 불행하다고 생각될 것이다. - P400

행복 담론이 정치적 이데올로기nose로 작동할 때 그것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행복을 누릴 사람과 그렇지 않- 사람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아메드는 이 책에서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개념을 규정하는 대신 행복이 무엇을 하는지, 즉 행복이 우리를 어떤 대상과 태도로, 어떤 삶의 결과로 이끄는지 보여 준다. 아메드의 분석이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행복이 모두에게 선하게 작동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행복이 작동하는 방식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며, 그 과정에서 억압과 소외의 효과가 나타난다. 아메드는 행복이 누구에게나 좋은 것, 선한 것이아니었으며 오히려 상실과 낙심의 원인이 되기도 했음을 역사, 문화, 그리고 정서의 측면에서 찾아 들어간다. - P405

아메드는 행복이 차별을 자연스럽게 은폐하는 지배기술로 사용되어 온 다양한 역사적 맥락들을 찾아낸다. 최대 다수의 행복을 우선한다는 공리주의, 피식민지인들의 안녕을 제공한다는 식민주의, 미개한 문화의 문명화를 도와준다는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가족 중심과이성애 중심의 젠더 이데올로기 등이 대표적으로 소개되는 예이다. - P408

행복이 기쁨을 유발하는 대상과 가까워지고 싶게 하는 지향성을 형성하고 좋지 않은 정서를 만들어 내는 대상과는 멀어지게 한다면, 사회는 바로 이런 행복의속성을 이용해서, 즉 기쁨을 유발하는 정서와 그렇지 않은 정서를 구분하고 특정 관계나 대상에 특정 정서를 귀속시킴으로써 행복을 정치적 지배기술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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