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쉽게 마음을 고백하고, 쉽게 마음을 접는다. 어떤 사랑은 천천히 시작되고, 오래간다. 사랑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말로 사랑을 드러내는 데 신중한 사람이고 싶다. 머뭇거리고, 기다리고, 참을 줄 아는 사람이고싶다. 내가 애정하는 모든 대상에게 나는 조심조심 손을 내미는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삶이 무거운 것들로만 가득하다면? 매일이 주저하고 망설이는 순간으로만 채워진다면? 그런 삶은 또 얼마나 버거울까. 우리의 삶은 가벼움과 무거움이 번갈아가며 만들어내는 화음일지도 모른다. 삶에는무거운 마음으로 기억해야 할 것들과 가볍게 흘려보내야 할것들이 공존하니까. 모든 것이 지나치게 무거운 요즘, 봄볕에 흩어지는 꽃잎 같은 가벼움을 소환해서라도 이 한때를 지나가고 싶어진다. - P76

너무 얼마 전 구남친이 물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은 여행작가의 가난한 성찬은 요즘 어떤지를. 그날 점심 상차림 사진을 찍어 보냈더니 그가 이런 글을 보내왔다. "제가 관찰한 누나는 항상 접시에 음식을 담았어요. 락앤락 뚜껑만 연 채로밑반찬을 먹는 일은 하지 않았지요. 라면을 먹어도 누나는항상 끓이고, 파도 좀 넣고, 그릇에 따로 내와 먹었어요. 이러면 라면은 라면 이상이 되죠. 제가 느끼기엔 그랬어요. 먹고 난 뒤에도 항상 깔끔하게 바로 정리하고요. 사람의 생활이 무너질 때는 먹는 것부터, 뭘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 거기부터 무너지더라고요. - P85

욕조의 머리카락을 치우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축축해진 타월을 걷고, 구겨진 시트를 벗기는 일을 반복적으로 해내야 한다. 내 기분과는 상관없다. 미룰 수 없는 청소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쓰는 화장실 거울의 얼룩은 며칠 닦지않아도 괜찮다. 손님용 화장실 거울에는 한 점의 얼룩도용할 수 없다. 바닥에 머리카락이 보이면 대재앙이다. 청소를 방금 마쳤는데 눈앞에 먼지 한 덩이가 보이면 격렬한 동공 지진에 휩쓸린다. 에어비앤비를 하게 된 후 나는 먼지의 무한자가증식설을 믿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해도 해도자꾸 나오는 이 먼지를 설명할 길이 없다. 코로나 시대라 문고리나 테이블 같은 곳은 소독제를 뿌려가며 또 닦아야 해서 더 피곤하다. 조만간 청소의 달인으로 거듭나지 않을까싶다. - P122

무얼 먹어도 맛있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오월의 신록이 그늘을 드리운 숲에 웃음소리가 번졌다. 여자들은 다정하게 서로를 보듬었다. 마지막 순서로는 청운공원 윤동주 시인의 언덕 근처 정자에서메리 올리버의 글을 읽었다. 숲에는 귀여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우리는 모두 용감하고 야성적이고 귀엽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산문 「몇 가지 말들]이었다. 그녀의 잘 알려진 시 「기러기」를 마저 읽고 해 지는 청운동에서 헤어졌다. - P129

양희은 선생님은 남편과 함께 참여하셨는데 여러 면에서 나를 놀라게 했다. "아침 9시에 로비에서 모일게요." 다음날 아침 9시에 내려가면 두 분은 이미 와 계셨다. 10분 전에 내려가도 계셨다. 아니, 이분들이 로비에서 주무신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번 1등이셨다. 나는 마지막날까지 두 분보다 먼저 로비에 도착하는 데 실패했다. 조금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이 생겨도 불평 한마디 없으셨다. 나이든 사람의 미덕은 돈을 잘 내는 거라며 모두에게 맛있는 식사도 여러 번 사주셨다. 어떤 제안을 해도 가장 먼저 좋다고 손을 번쩍 들어주시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제일 연세가 많은 분들이셨는데 가장 배려가 넘치는 여행자들이었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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