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히는 삶이 있고, 업어주는 삶이 있지. 나는 이제 업히는 삶을 살 거야. 업히는 삶이 더 어려워. 업어주는 삶이폼도 나고, 당당하기도 하고, 만족감도 크지. 하지만 내가 젊은 날에 업어주는 삶이었다고 믿었던 그 순간들마저도 실은업히는 삶이었던 거야." - P9

생전장은 신이치 선생님의 인사로 시작되었다. "요우코소 슬로 데스 하나미(느린 죽음 꽃놀이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곧 신이치 선생님의 라쿠고(일본의 전통적인 1인 만담) 판이 벌어졌다. 서툰 일본어 탓에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삶과 죽음에 관한 해학이 가득한 만담에 자주 웃음이 터졌다. 만담이 끝난 후 고이치 선생님이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켜 모두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물기 어린 두 눈 가득웃음을 머금고 "오늘은 죽기에 좋은 날입니다"라면서. 아메리카 인디언 운동을 주도했던 데니스 뱅크스의 말이었다. "제 어머니는 11년 전, 오늘 같은 봄날에 친구와 가족을 불러모아 이틀간 웃고 노래하며 꽃놀이를 즐긴 후 세상을 떠나셨죠. "완벽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요. 그때 이후 저는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며 죽음을 늘 마주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왔지요. 더 나아가 저도 어머니처럼 이 세상과 작별하고 싶었어요. - P19

싱글, 여성, 여행작가. 어떻게 보면 제법 근사한 조합이라 오해를 사기 딱 좋다.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하며 살아가는, 거칠 것 없는 삶을 연상하기 쉬우니.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할 수는 없지만 모든 일에는 이면이라는 게 있다. 양지가 있으면 그늘이 있는 법. 이 삶의 양지만을 부러워하는 이들을 만나면 음지의 이야기를 건네게 된다. 한마디로내 자유로움은 경제적 불안함과 동의어다, 외로움과 불안함을 반반씩 섞어 자유 위에 덧바른 삶이다, 등등. 결국 우리는 저마다 각자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다 가질 수 없으니 더 절실한 것을 끌어안고, 그걸 지키려 애쓰며살아가는 거 아니냐고. 내게는 가족이나 사회적 성취 같은것보다 길 위의 삶이 가장 간절했다. 간절한 것 하나를 얻기위해 다른 것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 P28

싱글로 사는 한 생계를 책임지는 일도 온전히 혼자 해내야 한다. 지금껏 내 힘으로 생계를 해결해와서 뿌듯하지만, 밥벌이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조금 답답해지기도 한다. 저축이나 집도 없이 일용직 노동자처럼 사는삶이 힘에 부칠 때도 있다. ‘통장 잔고 0‘을 겪은 건 여러 번, 동생이 건네준 마이너스 통장에 기대어 산 적도 두어 번 있다. 다음달 수입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삶을 쭉 이어가야 하니, 아무리 내일이 없다는 듯 살아가는 나라 해도 가끔은 한숨이 나온다. 티베트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그러니 걱정은 미루고 그저 오늘을 살 수밖에. - P32

얼마 전 따뜻한 봄날, 엄마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 일흔여덟의 나이에 마라톤을 시작했다. 10킬로미터 단거리지만 봄가을마다 온갖 마라톤 대회에 부지런히 참석한다. 엄마 집 거실에는 엄마가받은 메달 서른 개가 걸려 있다. 몇 주 전에도 마라톤에 참석했던 엄마가 갑자기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 이번에 꼴찌 했어." 그러더니 깔깔 웃는다. "사실 내뒤로 딱 한 팀이 더 있긴 했지. 아이 둘을 데리고 뛰던 부부. 근데 거기는 애들 때문에 그런 거니까 내가 꼴찌인 셈이잖아. 달리다보니까 마라톤 대회 입간판 있지, 그게 다 바닥에쓰러져 있는 거야. 바람에 날렸나 했는데 철거하려고 치워놓은 거였어. 처음 마라톤 시작할 때는 10킬로를 1시간 10분에 뛰었는데, 그다음 해는 20분대, 그다음은 30분대, 이렇게조금씩 늦어지더니 이번에는 결국 꼴찌까지 왔네. 세상에, 그야말로 꼴찌를 다 해봤어." 다시 깔깔깔. 그런데도 엄마는 굴욕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엄마는 다음 마라톤 대회에도 나가서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엄마만의 속도로 완주를 해낼 것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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