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한 바에 따르면, 곰표 맥주는 단품으로 마셔도 좋지만 ‘체이서(Chaser)‘로서 아주 훌륭하다. 체이서란 위스키나 데킬라, 혹은 보드카와 같은 독주를 샷으로 마시고 나서 입안에 남는 쓴맛을 가시기 위해 바로 따라 마시는 비교적 도수가 낮은 술이다. 사람의 입맛에 따라 다양한 체이서가 존재할 수 있는데 누군가는 ‘워터 백 - P102

(Water back)‘이라고 해서 물을 마시기도 한다. 물론 나는 권장하지않는다. 맛있는 술을 마시고 있는데 맛없는(無味) 물로 술맛을 가시는 것은 산통을 깨는 일이 아니겠는가. 독주와 어울리는 가장 흔한 체이서는 맥주다. 맥주로 체이서를 마실 때 ‘비어 백(Beer back)‘이라고도 한다. 곰표 맥주는 쓴맛이 없고 탄산이 적당하며 향긋해서 피트향이 강한 위스키나 쓴맛이 도드라지는 데킬라의 체이서로 아주 훌륭하다. 독특한 향으로 즐기는 술일수록 안주를 피하는 것이 좋은데(향이 부딪힐 수 있으니) 그런 의미에서 체이서는 안주 역할을 훌륭히 대신하기도 한다. 술을 안주로 마시는 발상은 도대체 누가 처음에 한 것일까? 무지막지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나는 정통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에 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탈리스커(위스키)와 맥주 체이서, 그리고 패트론(데킬라)과 맥주 체이서다. 흔히들 섞어 마시는 술은 좋지 않다고 하지만 이는 절대적인낭설이다. 섞어 마시는 술이 유독 좋지 않았다면(더 빨리 취한다거나, 숙취가 더 심하다거나) 수백 가지가 넘는 맥주 베이스 칵테일, 예를 들어 아이리쉬 밤(기네스 흑맥주+베일리스 샷), 보일러 메이커(맥주+위스케 샷) 등은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 P103

첫날은 늦게 도착한 터라 호텔방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일본 여행의 백미 중 하나는 편의점 쇼핑이 아닌가. 이것저것 간식과 ‘아사히 수퍼 드라이‘ 세 캔을 사서 침대 위에 펼쳐놓고 만찬의 구색을 맞췄다. 사실 일본 맥주를 마실 때 기린이든 아사히든 에비수든 딱히 가려 마시지는 않는다. 일본 맥주는 대부분 라거라서 라거의 팬이 아닌 나로서는 어떤 맥주를 마셔도 맛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만 왠지 아사히가 더 ‘본토‘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일본 여행을 오면 망설임 없이 아사히 수퍼 드라이를 집어든다. 아사히 수퍼 드라이의 특징은 튀지 않는 고소함이다. - P112

그렇게 한나절 동안 종이냄새를 맡고 나니 진한 커피가 간절해졌다. 칸다의 고서점 거리에는 오래된 킷사텐[喫茶店]이 즐비하다. 킷사텐은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신식 카페가 아닌, 드립커피 위주의 전통적인 커피숍을 말한다. 내가 킷사텐을 특히나 좋아하는 것은 커피도 커피지만 오래된 경양식집 스타일의 촌스러움과 음식 메뉴 때문이다. 대부분의 킷사텐은 샌드위치나 하이라이스 같은 간단한 음식과 주류를 갖추고 있다. 공수한 책을 들여다보고 싶기도 해서 가까운 킷사텐에 들어갔다. 이번 여행에서는 마를렌 디트리히의 영화 속 의상을 모은 사진집을 구했는데 얼마나 포장을 예쁘고 정성스럽게 해줬는지 당장 포장지를 뜯어서 열어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결국 그 자리에서 책을 보는 것은 포기하고 이른 저녁이나 먹자 싶어서 커피와 맥주, 그리고 하이라이스를 주문했다. - P114

극히 일상적이지만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주옥같은 대사들이 빼곡하다. 가령 드라마의 1화에서 아키라는 회사에서 상사에게 갖은 수모를 겪고 파이브 탭으로 향한다. 힘들었던 일을 맥줏집 사장 사이토에게 이야기하자, 사이토는 "맥주를 따라주는 것밖에 해줄수없어서 미안해"라며 아키라를 위로한다. 아키라는 맥주를 건네받으며 말한다. "그 맥주가 어지러운 마음에 스며든다니까요."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맥주가 어지러운 마음에 스며든다‘는 표현처럼 우아하고 적확한 표현이 어디에 있을까. 아키라의 말처럼 좋은 맥주나 꼭 필요한 순간에 마시는 맥주는 간이 아니라 마음에 스미는 법이다. 암, 그렇고말고. 이 대목에서 아키라에게 ‘선택받은 맥주는 ‘레어드‘의 페일에일이다. 페일에일 특유의 향긋함과 쌉싸름함이 분명 아키라의 ‘어지러운 마음‘을 다독였을 것이다.
<짐승이 될 수 없는 우리> - P127

영화는 개봉 당시 총 980만이 넘는 관객을 기록해서 화제가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기록에 n차관람이 꽤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입소문을 타면서 극장마다 특징(사운드나 스크린 사이즈)이 다른 특별관을 순회하며 영화에서 재현되는 공연(특히 클라이맥스인 라이브에이드 공연을 색다르게 경험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나 또한 메이저 극장 3사(CGV, 롯데, 메가박스)의 특별관(스타리움, 스크린 X, MX, 수퍼플렉스G 등)을 누비며 퀸의 그루피(Groopie, 극성팬) 노릇을 했다. 그렇게 총 5번의 관람을했지만 지루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관람은 관객들이 프레디 머큐리의 시그니처인 흰색 난닝구를 입고 떼로 들어와서 (그런 건 도대체 어디서 약속을 하고 오는 건지…) 노래가 나오는 장면마다 싱어롱(Sing along, 따라 부르기)을 한 회차였다. 그 밖에 4회의 관람에서도 싱어롱이 이루어졌는데 아무래도 떼창이 기본인 영화다보니 대부분 극장 매점에서 맥주를 싣고(?) 들어와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광경이 빈번했다. - P132

사실 방송을 하는 동안 즐거웠던 시간보다는 자괴감에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더 많았다. 한 마디 한 마디가 후회스러웠거나, 더 경쾌하지 못했던 것에 죄책감이 들었거나. 고꼬로오뎅은 늘 패잔병이 되어 돌아오는 내게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곳이다. - P156

최근에 둑분이와 함께 공드리를 오랜만에 방문했다. 맥주 라인업도 안주 메뉴도 바뀌었지만 아직도 맥주를 마시며 한낮을 여유 있게 보낼 수 있는 나른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영화 이벤트 포스터가 가득한 벽면은 여전했다. 이날도 꽤 많은 양의 맥주를 마시고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 후 시내에서 어중간한시간에 미팅이 끝난 날, 공드리에 들러 라자냐와 함께 필스너를 마셨다. 그리고 한참 동안 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하고 새로 생긴 가게들의 간판을 훑어보며 흘러나오는 팝송의 가사를 해석하는 쓸데없는 짓으로 몇 시간을 보냈다. 공드리는 아직도 그런 걸 할 수 있게 하는 하고 싶게 만드는 마력으로 충만한 곳이다. - P160

한 시간 일하고 와서 이렇게 호사스러운 점심을 할 수 있다는 건 신나는 일이지만, 여기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늘 지출이 (그날의) 수입을 넘는다는 사실이다. 연합뉴스 일을 시작한 이래로 우드앤브릭을 들르지 않은 날은 없었으므로 나의 수입의 대부분을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면 이곳에 오기 위해서 연합뉴스를 들렀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뭐, 아무려면 어떤가. 미국의 소설가, 제이미 아텐버그가 말했다. "북클럽을 뭐하러 하나 브라우니와 와인을 먹지 않을 거라면.(What‘s the point of having a bookclub if you don‘t get to eat brownies and drink wine?)" 주말에 일을 뭐하러 하나, 빵도, 맥주도 먹지 않을 거라면.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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