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가져올 테니……… 저기 계세요." 그녀는 고갯짓으로 하얀 문을 가리키고는 자리를 떴다. 그는 아주 깔끔하고 길쭉한 하얀 방으로 들어갔다. 한쪽 구석에 좁은 침대가 있고, 탁자 위에는 스케치와 연필이 잔뜩 흩어져 있었다. 벽에는 색색의 견본 조각들이 압정으로 꽂혀 있었다. 둥글고 나지막한 탁자와 작은 의자 두 개가 있는 공간은 이 작업실의 휴식공간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아내한테 이런 방이 있다면 나는싫을 것 같은데, 바버라의 남편은 어떨지・・・・・・? 지금까지 그는그녀와 그녀의 남편을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았다. - P43

이렇게 시작된 일은, 그가 나중에 생각해보았을 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창피한 일이 되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를 그녀에게 돌렸다. - P49

"내가 데려다주지." 그가 곧바로 말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눈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죽을 만큼 지루하다는 듯, 어둠이 빛을 집어삼켰다. "내가 데려다줄 거야." 그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난 혼자 가는 편이 좋은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빙긋 웃었다. "그래도 굳이 데려다주고 싶다면야. 그리고 극장에서 당신은 꼭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죠. 제임스랑 다른 사람들이다 볼 수 있게. 그래서 날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거죠?"
그는 그녀를 증오했다. 순전히 그녀의 뛰어난 머리 때문에. 그녀는 언제나 그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어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그녀를 향해 작업을 거는 것을 한순간도 빠지지 않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는 통제할 수 없는 일종의 운명 또는 내적인 충동 때문에 감상적으로 말을 이었다. "이런, 적어도 당신을 일터까지 데려다주고 싶은 마음은 진짜라는 걸 알 텐데."
-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 - P58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열기 속에서 태양이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동료들과 함께 일하던 옥상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런 데서 일을 하라고 하다니!‘ 정당한 분노가 그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여자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뜨거운 바람 한 줄기가 검은 머리카락을 살짝 건드리자 머리카락이 무지갯빛으로 반짝였다. 어젯밤 꿈에서 그가 어루만지던 머리카락이었다.
그녀에 대한 분노가 마침내 그의 발을 움직여 사다리를 내려가게 했다. 그는 건물 계단을 내려와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를 증오하며 술에 취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하늘이 회색이었다. 비를 품은 회색 하늘을 보며 그는 못된 생각을 했다. ‘그래, 하늘이 당신 버릇을 고쳐놓았군, 그렇지? 아주 제대로 고쳐놓았어.‘
- 옥상 위의 여자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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