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저는 가야 해요." 나는 울화증이 치밀어 오르는 걸 느끼며 대꾸했다. "당신에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기 위해서 제가 눌러 있을 줄 아세요? 제가 무슨 자동인형인 줄 아세요? 감정도 없는 기계로 아세요? 그리고 입에 문 빵조각을 잡아채이고 컵에 담긴 저의 생명수가 엎질러지는 것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가난하고 미천하고 못생겼다고 해서 혼도 감정도 없다고 생각하세요?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혼도 있고 꼭 같은 감정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복이 있어 조금만 예쁘고 조금만 부유하게 태어 - P31

났다면 저는 제가 지금 당신 곁을 떠나기가 괴로운 만큼 당신이 저와 헤어지는 것을 괴로워하게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저는 지금 관습이나 인습을 매개로 해서 말씀드리는 것도 아니고 육신을 통해 말씀드리는 것도 아녜요. 제 영혼이 당신의 영혼에게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마치 두 영혼이 다 무덤 속을 지나 하느님 발밑에 서 있는 것처럼, 동등한 자격으로 말이에요. 사실상 우리는 현재도 동등하지만 말이에요!"
"현재도 동등하다!" 로체스터 씨가 되풀이했다. "그래." 그는 덧붙여 말하곤 나를 두 팔로 감아 가슴에 끌어안고 그 입술로 내 입술을 눌렀다. "그래요, 제인!" - P32

"네. 아일랜드로요. 전 제 심정을 다 털어놓았어요. 그러니까 이젠 어디든지 갈 수 있어요."
"제인, 가만있어. 이렇게 버둥대지 마요. 마치 제 분에 못 이겨 제 털을 뜯어내는 사나운 미친 새 같군그래."
"전 새가 아녜요. 그러므로 어떤 그물로도 저를 잡을 수는 없어요. 저는 자주적인 의지를 가진 자유로운 인간이에요. 그 의지력으로 저는 지금 당신 곁을 떠나는 거예요." - P32

"어서, 제인, 이리 오라니까."
"우리 사이에는 당신의 신부가 막아서 있어요." - P34

그가 말했다. 만약에 내가 그를 좀 덜 사랑했던들 나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그의 말투나 표정을 야비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별이란 악몽에서 깨어나 결혼의 낙원으로 부름을 받고 그의 곁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줄곧 넘쳐흐르도록 내게 주어진 행복만을 생각했다. 몇번이고 그는 물었다. "행복하오, 제인?" 그리고 나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대답했다. "네." 그다음에 그가 소곤거렸다. "속죄가 될 거야. 속죄가 될 거야. 이 사람은 친구도 없이 썰렁한 가슴을 안고 아무런 삶의 즐거움도 없이 살고 있는 것을 내가 발견하지 않았던가? 내가 지켜 주고 사랑해 주고 위로해 줄 것 아닌가, 내 가슴속에는 사랑이 있고 내 결심에는 지조가 있지 않은가, 하느님의 법정에서 속죄가 될 거야. 창조주께서 내가 하는 일을허락해 주심을 나는 안다. 이 세상의 심판에 대해서는, 나는 세상과는 손을 끊는다. 인간의 비판에 대해서는, 나는 움쩍도하지 않으리라." - P37

나는 주장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도 천사는 될 수 없고요. 로체스터 님, 당신은 제게서 천사의 것과 같은 것을 기대하셔서도 안 되고 강요하셔서도 안 돼요. 당신에게 그런 것이 없듯이 제게도 그런 것은 없으니까요. 그런 건 전혀 기대하고 있지도 않아요." - P46

그는 껄껄 웃고 두 손을 맞비볐다. "아아, 당신을 보고 듣고하고 있으니 참 기분 좋군!"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여자는 좀 괴짠가? 신랄한가? 나는 이 조그마한 한 사람의 영국아가씨를 영양(羚羊)처럼 부드러운 눈을 가지고 있고 극락의천녀(天女)처럼 아름다운 터키 황제의 후궁들 전부하고도 바꾸지 않겠어!"
터키 후궁과의 비유가 또 내 비위를 건드렸다. "전 터키 후궁의 대역(役 같은 건 절대로 안 하겠어요. 그러니 절 그런것과 똑같이는 보지 마세요. 만약 그런 종류의 여자가 좋으시거든 지체 마시고 이스탄불의 노예 시장으로 가세요. 그리고 여기서는 시원스럽게 쓰질 못해 애쓰시는 모양인 그 돈을 노예 대량 매입에나 쓰세요." - P63

"이젠 누구하고 결혼하시나요?"
"귀여운 제인한테 그런 질문을 받다니 뜻밖이로군."
"아녜요! 이건 가장 당연하며 또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당신의 미래의 부인은 죽을 때도 당신과 함께 죽는다고 하셨죠. 그런 이교적인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하실 셈이세요? 제게는 함께 죽어 드릴 용의가 없어요. 그것만은 확실해요."
"아, 내가 바라는 것, 내가 기원하는 것은 오직 당신이 나와함께 살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오. 당신 같은 사람이 죽다니 당치도 않은 이야기야."않고
"그래요. 제겐 당신과 마찬가지로 죽을 때가 오게 되면 죽을 권리가 있어요. 그때가 올 때까지는 기다리겠어요.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서둘러 순사해 버릴 생각은 없어요." - P70

"지나치게 흥분한 머리가 만들어 낸 환영이겠지. 틀림없이 당신을, 내 귀중한 보배를 잘 보살펴 주어야겠군. 당신 같은신경은 함부로 다룰 수가 없이 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아녜요. 제 신경 탓이 아녜요. 그것은 정말로 나왔고 그 사건은 틀림없이 일어났던 거예요."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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