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그 재주가 뛰어난 미인 아가씨는 아직 결혼을 안 했나요?"
"안 한 것 같아요. 그 아가씨도 동생도 재산은 별로 못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잉그램 경의 영지는 대부분 한정 상속(限定相續)으로 되어 있고 맏아들이 거의 독차지한 것 같아요."
"하지만 부유한 귀족이나 신사가 구혼을 안 했던가요? 가령 로체스터 님 같은 분이. 로체스터 님은 부유하지 않습니까." - P286

무슨 노예적인 자격지심으로 자기를 비하해 버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스스로에게 이렇게 타이른 것이었다.
‘주인의 피보호자를 가르쳐 줌으로써 봉급을 받고 또 의무를 다했을 때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는 정중하고 호의 어린대우에 감사를 하기만 하면 그뿐이다. 그 이상 너와 손필드 저택의 주인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주인이 너와의 사이에 진지하게 인정하고 있는 인연은 그것뿐이라는 것을잊어서는 안 돼. 따라서 그를 너의 사모나 기쁨이나 괴로움 등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는 너와 같은 계층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의 분수와 지체를 지켜라. 너 자신을 아껴서 온통 마음과 영혼과 기력을 바치는 사랑을 함부로 주지마라. 그런 사랑의 선물을 원하지도 않거니와 업신여기는 사람에게.‘ - P292

메리는 블랑슈보다 유순하고 보다 펑퍼짐한 얼굴이었다. 이목구비도 부드럽고 살색도 희었다.(블랑슈는 스페인인들처럼 가무잡잡했다.) 그러나 메리는 생기가 없고 얼굴의 표정도 없고 눈에는 영롱한 빛이 없었다. 화제도 없어서 일단 걸터앉더니 벽람에 장식된 조각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매는 둘 다순백색의 의상을 걸치고 있었다. - P310

그는 나를 잠시 살펴보았다.
"조금 우울한 것 같소. 무슨 일이오? 얘기를 해 봐요."
"안 그래요. 우울하지 않아요."
"아니오. 분명 그렇소. 몇 마디만 더 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소. 정말로 벌써 괴어서 반짝이는걸. 속눈썹에서 한 방울 떨어져 바닥으로 흐르는걸 시간 여유가 있고 수다스러운하인이 지나갈 염려 없다면 자세한 얘기를 꼭 들을 터인데. 자, 오늘은 이만 실례하오. 그러나 손님들이 묵는 동안 매일저녁 응접실로 나오시오. 나의 소망이오. 잊지 마시오. 자, 그럼. 가 보오. 아델러를 데려가도록 소피를 보내오. 그럼 안녕. 나의………."
그는 여기서 말을 그치더니 입술을 깨물고는 황급히 내 곁을 떠났다. - P325

만약 그녀가 즉각적인 승리를 거두고 로체스터 씨가 굴복하여 진정 그녀의 발밑에 마음을 내던졌다면 나는 내 얼굴을 가리고 벽을 향했을 터이고 그들에게 있어 나는 (비유적으로 말해 본다면) 죽은 것이나 진배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 잉그램 양이 기운과 열의와 친절과 양식(良識)을 두루 갖추고 있는 마음씨 곱고 고결한 여성이었다면 나는 두 마리의 호랑이, 즉 질투와 절망을 상대로 죽자사자 힘을 겨루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슴을 뜯기고 집어삼켜지는 몸이 되면서도 그녀를칭송하고 그녀의 탁월함을 인정하며 여생을 조용히 보냈을 것이다. 그녀의 탁월함이 절대적이면 절대적일수록 나의 탄복도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또 내 마음의 평온도 그만큼 컸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로체스터 씨를 매혹시키려는 잉그램 양의 노력을 지켜보고 그 노력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 마는 것을 목격하는 것, 본인은 실패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그녀의 오만과 자기 만족이 매혹시키려는 대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있음에도 불구하고 쏜 화살이 모두 과녁을 맞혔다고 터무 - P335

니없는 생각을 하면서 성공에 도취되어 으쓱해진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끊임없는 흥분과 무자비한 억제를 동시에 맛보는 셈이었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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