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파괴의 천사 조지 엘리엇
<성직 생활의 장면들>
<애덤 비드>
<급진주의자 펠릭스 홀트>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미들마치>
<로몰라>
<대니얼 데론다>
모순, 분노, 파괴의 천사, 살인 본능, 생매장, 바느질, 거미줄..

이번 장 읽은 책도 없고, 너무 많은 책이 언급되어 있고, 그리고 이불 속에서 졸며 읽었네. 이젠 더 모를 ‘시’ 챕터…

성직 생활의 미덕에 대해 쓰려고 하는 불가지론자로서, 아내의 봉사를 찬양하는 ‘타락한‘ 여자로서, 모성을 찬양하는 아이 없는 작가로서, 여성적 감수성을 기꺼워하는 의미로 스스로 ‘삶의 실험’이라[편지 6] 부른 소재를 다루는 지성인으로서, 엘리엇은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자기 소설 인물들에게 복수하고(그녀가 고백한 소설가의 의도와 견주면 더 두드러지는) 가혹한 징벌을 내림으로써 그런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정신과 마음 사이의 이 긴장이야말로 엘리엇이 초기 필명 중 하나(파괴의 천사 폴리언)의 역할에 헌신했던 이유이며, 또한 매우 다른 미국의 두 동시대인인 마거릿 풀러와 헤리엇 비처 스토에게 매력을 느낀 이유다. 엘리엇은 엘리엇 자신의 예술 안에서 싸우는 충동을 두 사람이 구현했다고 본 것 같다.
조지 엘리엇과 마거릿 풀러는 성취한 업적이 매우 다르긴 하지만 여성적 힘에 대한 불안을 공유했다. 또한 이 둘은 다수의 지적 개인적 목표를 공유했다. 마거릿 풀러의 삶이 엘리엇 자신의 인생에 ‘구원과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을 때[편지 2], 엘리엇은 그런 사실을 인식했던 것 같다. 엘리엇처럼 무섭고 엄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풀러는 부도 사회적 지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풀러는 돈 때문에 글을 쓰는 경우도 빈번했다. 학식이 높다는 이유로 비정상으로 여겨졌던 풀러는 엘리엇과 마찬가지로 무녀처럼 취급되었다. - P825

‘선머슴’ 같은 조가 발끈하는 성미 때문에 결국 누군가 죽이고 말 거라고 걱정하자 어머니는 자신도 40년 동안이나 못 고친 성질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거의 날마다 화가 나지만, 티를 내서는 안 된다고 배웠지.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것을 느낄 수 없게 하는 법을 배웠으면 해. 그러려면 또 40년이 걸리겠지만‘ 하고 조에게 말한다.

- 작은 아씨들 - P832

만약 그녀가 존재의 평온한 위엄에서 행위의 끊임없는 불안으로 타락한다면 당신은 분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장] - P834

여자 주인공들이 자신의 분노를 누르고 체념의 필요성에 순종하는 동안, 작가는 네메시스가 되어 여자 주인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그의 창조자를 위해’ 행동했던 방식이나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가 제인 에어를 ‘위해‘ 행동했던 방식과 똑같은 방식이다. 따라서 『성직 생활의 장면들』에서 미친 여자는 바로 (남성 화자가 아니라 장면들 뒤에 있는 여성 작가로서) 소설가라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 P843

『안티고네』 개정판에 대한 소론에서 엘리엇이 ‘자연적인 성향과 수립된 법 사이의 투쟁‘으로 묘사했던 것은 매기 털리버의 비극에 그녀가 기울인 관심의 극히 일부일 따름이다. 엘리엇은 여성 혐오자 크레온 왕에 반항한 안티고네에게 몹시 이끌렸다. 그녀의 반항은 오빠 폴리네이케스에 대한 충절 때문이었고, 그것이 결혼 거부라는 형식을 띠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티고네 - P848

의 반항은 순수한 자신을 자발적으로 매장하는 것이다. 엘리엇은 크레온과 폴리네이케스를 한 인물, 즉 톰으로 결합시켜 여자가 자신을 정의하고 자존감을 갖기 위해서는 남자에게 완전히 의존해야 한다는 여성 노예화를 분석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끌어들이고 있다. 『로몰라』 (1862~1863)에서 콜로노스의 안티고네 초상화 모델을 서는 여자 주인공이나 『미들마치에서 기독교적 의미의 안티고네로 보이는 도러시아의 경우도 분명 이에 해당하며, ‘헤카베와 헥토르 시대 이래‘ 여자들은 ‘성문 안에서 […]멀리 떨어져 세상의 싸움을 바라보고, 길고도 공허한날들을 기억과 공포로 채우고 있는데, 남자들은 밖에서 신과 인간의 일로 격렬하게 투쟁한다‘고 [5부 2장]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의 화자는 추론한다. 국가의 법적 요구보다는 가족의 사적유대에 더 헌신하는 현대의 안티고네들은 자신의 충절 행위가 늘 자살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고독하고 무력한 존재들이다. - P849

이 화술은 무시할 수도 없고 폄하할 수도 없다. 타락한 여자의 분노는 작가의 플롯에 감추어진 변증법 속에서 미친 여자와 성모 마리아를 연결하며 극화되지만, 결국 화자의 여자 주인공으로 살아남은 자는 이타적인 성모마리아다. - P855

샬럿 브론테가 저항했던 모든 부정적 전형이 조지 엘리엇에 의해 미덕으로 전환된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브론테는 여자가 지적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저주하는 반면, 엘리엇 - P855

은 지적인 결핍이 초래할 무서운 결과는 인정하지만 이 결핍 덕분에 여자에게는 감정적인 삶이 더 풍부해진다고 암시한다. 브론테는 여자가 자기주장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주는 반면, 엘리엇은 남성적 경쟁이 아닌 서로 돕는 동지애에 기초한 고유한 여성 문화의 미덕을 극화한다. 브론테가 여성의 감금이 불러일으키는 숨 막히는 구속의 느낌을 극화한다면, 엘리엇은 『미들마치』의 마지막에 인용한 던의 말마따나 자신의 사랑으로 ‘어디에든 작은 방‘을 만들 수 있는 여성의 창의성을 칭송한다.[83장] 브론테는 남자들이 소유한 권위 있는 자유를부러워하는 반면, 엘리엇은 그 권위 때문에 사실상 남자들이 그들 자신의 육체적 심리적 진정성을 경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P856

엘리엇은 자신의 후기 소설 전반을 통해 인자한 여자주인공들에 대한 화자의 존경과 작가의 복수충동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 우리가 이 투쟁의 의미 전체를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마도 엘리엇의 가장 위대한 소설 『미들마치』일 것이다. - P857

(로체스터가 제인 에어에게 행실이 의심스러운 프랑스 배우와 사귄 경험에 대해 설명한 것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플롯전개로 보더라도 불필요하기 짝이 없는 이 이상한 사건을 포함해) 『미들마치』에서 묘사한 결혼 관계와 여자의 연기가 은연중에 드러내는 살인 본능에 대한 엘리엇의 관점은 흥미롭다. 「벗겨진 베일』과 『성직 생활의 장면들과 같이 엘리엇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남성적 정신‘과 ‘여성적 가슴‘으로 규정한 대립적인 두 측면에 내재한 폭력 가능성에 관심이 있었다. - P858

그때도 도러시아는 ‘단지 시시한 길들의 미궁처럼 보이는,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는 벽으로 꽉 막힌 미로처럼 보이는 사회생활에 에워싸인 채, 편협한 교육의 굴레 속에서 몸부림쳤다.‘ [3장] - P868

도러시아의 딜레마는 한 미국 여자가 겪은 곤경을 기이하게 반향한다. 그녀의 가족은 19세기 후반 미국 인문학을 대표했다. 앨리스 제임스는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나 자신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거나, 은백색 머리카락의 자비로운 아버지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을 때 그의 머리를 부숴버리고 싶은 격렬한 충동이 갑자기 온갖 형태로 나의 근육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모든 공포와 고통을 느꼈지만, 다만 광인과 다른 점이라면 내몫의 의사나 간호사의 의무와 구속복이 있다는 것이었다.

- 앨리스 인 베드!! - P877

‘시간이 흐른뒤에는 어떤 이야기도 똑같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읽는 우리가 더는 똑같은 해설가가 아닌 것이다.‘ [『애덤 비드』 54장] - P888

로저먼드는 어떤 면에서 여성으로서 자기 역할을 수용한다는 표시로 바느질을 한다. 그녀는 이 점에서 엘리엇의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여자 주인공들과 현저한 차이가 있다. 다른자 주인공들은 기예가 부차적이고 전적으로 보상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에 대해 느끼는 혐오감과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바늘이나 물레에서 떨어지는 세 방울의 피가 여성적 젠더로 추락하 - P889

는 것을 의미하고, 잠에 빠져들거나 임신하는 상황을 상징하는모든 동화에서 바느질은 여성이 집 안에 갇히거나 축소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기 털리버는 조각보를 만들기 위해천을 조각조각 찢는 행위를 경멸하면서도 마침내 밋밋한 바느질을 완성시킨다. 그 바느질은 스스로를 고행의 길로 밀어넣고자 하는 열의에서 나온 것이다. 반면에 궨덜린 할레스는 어머니와 자매들과 함께 테이블보나 성찬식 식탁보를 만든다는 생각만으로도 치를 떤다. 매기와 궨덜린은 응접실을 꾸미려고 응접실에서 작업하는 여성적 예술에 반항한다는 점에서 도러시아를닮았다. 그러나 도러시아는 ‘성경 속 여성 인물들을 연구함으로써, [・・・] 그리고 안방에서 수를 놓기보다는 자신의 영혼을 돌봄으로써‘ 축복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배제되어 있다. [3장] - P890

많은 비평가들은 『미들마치』가 사회를 서로 다르지만 서로 관련된 삶들로 짜인 직물로 묘사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예를 들면 이 마을의 역사는 도시적인 마을과 시골 교구 사이에 만들어진 ‘새로운 연결의 실‘이라는 측면으로 묘사된다.[11장] 반면 시골 생활의 개인 관계들은 일종의 실로 꼬아 만든 듯한 창조물이 된다. 화자는 ‘이 대부분의 내면의 삶이란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갖고 있다고 믿는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그의견들로 짠 천이 파멸의 위협을 받을 때까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하고 묻는다. [64장] 다만 이보다 덜 명확한 것은 연결의 실을 바느질하는 것이 여자들이기 때문에 공동체를 구성하는 의견의 천을 짜는 사람들도 여자들이라는 점이다. - P892

우리는 앞으로 에밀리 디킨슨이 그녀 자신을 전복적인 주문의 실을 조용히 잣는 거미라고 생각하며, 어떻게 ‘보이지 않는도구로 / 비밀리에 싸우는지‘ 탐색할 것이다. 가장 작은 틈과 균열 안에서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일하는 거미의 모습은 일찍이 매기 털리버가 풍요로운 하얀 가루로 뒤덮인 플로스의 물방앗간에서 만들어진 마술 같은 레이스 세공품을 떠올렸을 때 그녀의 생각을 지배했다. 실제로 거미줄은 자연이 보여주는 기예의 사례이며 누에고치 솜floss도 마찬가지다. 엘리엇이 - P897

그 강을 플로스라 불렀을 때, 그 이름은 강물의 흐름과 실 사이의 은유적인 관계에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물론 앤 핀치의인용구가 말해주듯 거미줄은 엘리엇과 디킨슨 훨씬 이전부터 중요한 상징으로 쓰여왔다. 상징으로서 거미줄은 여성의 권위추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실제로 마거릿 캐번디시는 자신의 시의 서문에서 ‘손가락으로 실을 잣는 일이 시를 공부하거나쓰는 일보다 (이는 두뇌로 실을 잣는 일이다) 여성에게 더 적절하다는 것은 진실‘이라고 인정한다. 그런 만큼 캐번디시가 어느 시에서 ‘거미줄을 잣는 거미의 가사 노동은 자기 옷이 아니라날벌레 잡을 밧줄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쓴 것은 결코 놀랍지 않다. - P898

엘리엇이 『미들마치』에서 분노를 넘어서고, 초기 작품에서 드러나는 남성 역할의 전유를 넘어서 작업하고 있듯, 스토 역시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해방의 고유한 여성적 형태를 그린다. - P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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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21 0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13장 읽었는데 조지 엘리엇 하나도 안읽어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ㅠㅠ 그래서 <벗겨진 베일>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어요 ㅠㅠ

햇살과함께 2022-12-21 09:2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역시 빠르다~! 벌써 13장이요?!
14장은 조지 엘리엇 종합선물세트입니다:;;
벗겨진 베일은 100페이지도 안되서 금방 읽을 수 있으실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