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상실감이 빚은 예민함
조지 엘리엇의 숨겨진 비전

조지 엘리엇의 100페이지도 안되는 중편 <벗겨진 베일>에 무려 한 장을 할애한다. 예지력을 가진 ‘여성적인’ 남성 주인공과 남편인 그를 독살하려는 부인(무려 이름이 버사!! 이 책 읽을 때는 인지 하지 못했는데 앞으로 버사라는 이름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조지 엘리엇의 분열적인 모습, 자기혐오. 조지 엘리엇의 인생이 궁금하다.

에덴의 여자들은 어두운 무덤 속에 자신들을 감추기 위해 손수 짠 부드러운 비단 베일 속에서 겨울잠을 잔다.
그러나 남자들은 여자의 죽음을 통해 부활해 영원한 삶을 산다.
- 윌리엄 블레이크!

…분별력과 훌륭한 감식력은 순수과학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룩한 여자로 하여금 일반적인 관찰자들이 자신을 알아볼 수 없도록 항상 베일을 쓰게 만들었다. 그런 성취는 여자의 성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 두걸드 스튜어트

천천히, 머뭇거리며, 기어서,
여자는 여기까지 왔다! -
그녀는 베일을 쓴 채 졸면서 걷는다,
자신의 힘을 알지 못하므로.
- 샬럿 퍼킨스 길먼 - P767

샬럿 브론테의 소설은 여성문학에 나타난 폐쇄라는 문학적 형상과 분신 사용의 관련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우리가 그녀의 작품에서 보았듯이, 이 둘은 여성의 희생을 나타내는 상보적인 기호다. 불편한 공간과 불편한 자아에 갇혀 있는 브론테의 여자주인공들은 그들 자신이 두려워하는 충동을 대체하거나 가장하는 대행자를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그녀들은 존 어윈이 남성 소설에서 최근에 탐색했던 ‘운명의 손아귀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죽음에 직면해서, 모든 힘 있는 아버지의 손 안에서 무력감을 경험할 때조차‘ 프로이트가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고 말했던 것을 반복해서 견뎌야 한다. 여자들의 이런 무력감은 여성 정체성의 수수께끼에 대한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적절한 해결책으로 처방되는데, 이 사실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예를들면 루시 스노는 스스로 수동적 상태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려 애쓴다. - P768

여성들이 정치, 사회, 교육 분야에서 그들의 영향력과 활동을 확대해가던 19세기 중반까지, 역설적으로 여성 작가들은 반항하기보다는 한 발 물러나 내면화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19세기 중반의 여성 작가들은 천사 같은 순종과 괴물 같은 자기주장이라는 쌍둥이 같은 유혹에 붙잡혀 있는 가운데 남성 지배 문화에서 문제적인 여성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그들은 모두 오스틴, 울스턴크래프트, 메리 셸리, 브론테의 열렬한 독자였기 때문에 여성의 하위문화에 의식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이름을 들자면 영국의 조지 엘리엇과 크리스티나 로세티, 이탈리아의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미국의 에밀리 디킨슨과 해리엇 비처 스토가 있는데, 이들 사이에 감지되는 끈끈한 유대를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여성의 하위문화다. - P769

또한 래티머 이야기의 초기 무대를 제네바의 알프스로 설정하고, 죽은 시체를 다시 살려낸 영국 과학자 친구를 등장시키고, 늙어가는 래티머가 ‘악마를 숭배하는 것 외에는 어떤 숭배도 신앙도 불가능하다‘고 말하게 하고, 마지막으로 래티머를 외로운망명자로 묘사함으로써, 엘리엇은 자신이 메리 셸리에게 신세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 P787

이런 판단은 엘리엇이 자신을 한 여자인 동시에 암암리에 여성 혐오자로도 인식했다는 점에서 매우 타당하다. 엘리엇이 낭만주의에 양가적 반응을 보인 것은 빅토리아적이지만, 그것은 여성에게 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 전통을 내면화하지 않으려는 여성의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798

낭만주의 전통의 비평가이자 계승자로서 엘리엇은 특히 여성선구자들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벗겨진 베일이 반향하는 또다른 그물망이 이 점을 논증한다. 이 이상한 단편이 메리 셸리의 소설을 상기시킨다면, 엘리엇이 반복해서 영국의 조르주 상드라고 옷차림만 덜 도발적일 뿐이다‘ [편지 2]) 칭송했던 한 여성 작가의 걸작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샬럿 브론테의 소설은 「벗겨진 베일」의 집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브론테 - P798

의 소설은 엘리엇에게 여성으로 확인된 여성과 여성 혐오자 사이에서 엘리엇이 경험했던 자기 분열을 극화하도록 허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샬럿 브론테는 미친 여자를 통해 그녀의 분노는 자신과 자신의 유순한 분신에게서 사랑을 빼앗아간 남성적 권력의 상징을 찢고 불태우고 파괴한다) 메리 셸리와 에밀리 브론테의 인물들이 경험하는 자기 분열과 살인적인 물질성, 섹슈얼리티로의 추락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엘리엇은 분노에 찬미친 여자를 ‘버사‘로 명명함으로써 「벗겨진 베일」이 여성의 복수 시도에 관한 이야기임을 제시한다. - P799

버사의 관점을 고려하기 위해 래티머의 시각을 벗어나면, 래티머가 버사를 통해 어떻게 욕망의 거세와 활력의 포기를 나타내고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래티머가 지옥 같은 버사와의 결합을 점차 수동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버사는 자신의 생명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으로 래티머의 죽음을 열렬히 욕망하는 것이다. 버사는 래티머에게 남을 꿰뚫어보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하며, 래티머에 대한 ‘공포에 끊임없 - P800

이 시달리고, 이 공포는 한 번씩 그에 대한 반항으로 표출되었다. 어떻게 하면 자기 삶에서 이 악몽을 떨쳐낼 수 있을지, 자신이 한때 바보라고 경멸했고 이제는 심문자처럼 두려워진 존재의 이 가증스러운 속박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버사는 계속 생각했다.‘ 버사의 공포는 자신이 래티머의 플롯에 따라 움직여왔다는 깨달음, 심지어 래티머에 대한 자신의 원한조차 자신을 섬뜩한 눈을 가진 괴물로 보는 그의 통찰에 따라 예견되고 만들어졌다는 깨달음의 산물이다. - P801

엘리엇은 자신 안의 분열을 여성 혐오주의자 남성과 남성을 증오하는 여성 사이의분열로 간주하고, 자기 자신의 문제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기혐오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상속받은 전통에서 벗어난다. 상호적이면서 상반되는 두 인물인 여성적인 래티머와 거세하는 버사는 삶에서 자유를 강탈해간 그들 자신의 한 측면으로서 서로를 경험한다. 더 나아가 래티머의 초월적 신통력과 버사의 정열적 욕망 사이의 투쟁은 일레인 쇼월터가 말한 매기의 ‘여성적인‘ 정열과 톰 털리버의 ‘남성적인‘ 억압 사이의 갈등을 상기시킨다. 이런 투쟁과 갈등은 또한 『미들마치』의 결혼관계에서도 (엘리엇이 이런 결혼 관계를 통해 자신의 무력감과 자신의 성을 약화시키고 폄하하는 태도를 내면화했다는 죄책감을 극화할 때조차 나타난다. - P803

젠더의 한계를 비상할 정도로 초월한 작가로서 엘리엇은 자신의 노력과 성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중요한 소설에서 여성적 체념의 신조와 복종의 서약에 자주 의지한다. 그런 신조와 서약은 공격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나갔던 엘리엇 자신의 삶과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따라서 엘리엇은 ‘나의 책들이나를 괴롭힌다‘고 소리쳤던 것이다. [편지 5] 버지니아 울프도 엘리엇에 대해 ‘오랫동안 그녀는 차라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우리·엘리엇이 ‘영원히 여성적인‘ 고귀함을 찬미하면서도 자기 이야기를 쓰는 일은 거부함으로써 두통에 시달렸으며, 두통 때문에 괴테의 마카리에 같은 유형, 즉 작가에게는 결코 기분 좋지않은 유형의 인물이 되어버렸음을 알게 된다. 더 나아가 「벗겨진 베일」에서 엘리엇은 타락의 신화와 여성적 악의 신화에 양가적 태도를 견지하는데, 이로써 그런 신화를 영속시켜 여자를 ‘타자‘로 규정하는 가부장적 문화를 엘리엇 자신이 내면화하고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엘리엇은 전 생애 동안 이런 내면화의 - P804

징후들(사회적 승인을 받지 못한 일에 대한 계속된 죄책감, 남자 친구를 더 좋아한다는 공언, 여성의 반페미니즘, 여성의 예속보다 다른 형태의 불의 전체가 더 중요한 자기 예술의 주제라는 자기 변명 같은 주장, 격려와 인정을 받기 위해 루이스에게 극도로 의존했던 모습, 작가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었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장 호의적인 비평조차 읽을 수 없었던 무능력)을 보여준다. - P805

소설에서 엘리엇은 베일에 담긴 이 모든 의미를 불러낸 것이 분명하다. 래티머는 허영의 베일을 걷어올리는 셸리의 성직자처럼 ‘사랑할 대상‘을 찾지만, 그 결과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 발견할 따름이다. 태양이 ‘아침 안개의 베일‘을 걷어올리는 것을 볼 때, ‘미래의 커튼‘을 꿰뚫어볼 때, ‘[가까운 관계에 있는] 인물들의 관계망이 현미경으로 보는 것처럼 조각조각 떨어져나가는 것처럼 보일 때‘, ‘또 다른 어두운 베일‘인 죽음을 꿰뚫어볼 때, 래티머는 어떠한 차이도 발견하지 못하고 ‘숨겨진 것을 보고 싶은 영혼의 욕구가 너무 절대적이어서‘ 장막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안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베일은 충분히 두꺼워야 한다.‘ 다시 말해 「벗겨진 베일」은 사람들이 기대할 법한 무시무시한 비밀을 전달하거나 악의 관념을 견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포, 디킨스, 호손의 이야기와 다르다. - P810

결국 베일 뒤의 존재를 기록하는 일은 분명 여성적인 작업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베일 뒤에 존재하며, 공적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사적인 영역에 거주하는 자는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에 엘리엇은 워즈워스 시에서 알아본 소리 없는 괴로움과 기록되지 않은 고통을 탐색하기로 결심한다. 엘리엇은 포프 류의 시인이 택한 올림포스 신 같은 육중한 시각을 왜 인간은 현미경과 같은 미세한 눈이 없는가? / 이것이 바로 인간이 파리가 아닌 이유다’) 거부했다. 왜냐하면 엘리엇은 일반 렌즈로는 보이지 않는 세밀한 것을 보기 위해 ‘배율이 큰 렌즈’를 사용해 래 - P816

티머의 ‘현미경적인 시각‘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가정에서 전통적인 여성의 자리를 유리하게 이용해 공적인 태도 뒤에 가려져 있는 사적인 연약성을 폭로하며 남성적 신화를 반박하는데,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이라면 엘리엇의 이런 방식을 전형적으로 여성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동양적 전통과 베일로 가린 여성의 얼굴을 통해 가부장이 성공적으로 다루었던 악은 과연 어떤 종류의 악인가? 만약 민첩하고 확실한 본능과 정직하고 순수한 눈을 가진 가모장이 그 가부장을 흘깃 바라보고 이름을 불러 그들을 손쉽게 추방한다면 어떻게 될까? - P817

엘리엇은 꽤 최근까지 거의 전적으로 남성 문학사의 차원에서만 주목받았지만, 「벗겨진 베일」은 그녀가 강력한 여성 전통의 일부임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여성 작가들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자의식, 남성적 문학 관습에 대한 비판, 예지력과 영적 교감 능력에 대한 관심, 감금 이미지, 파편화에 대한 정신분열적인 인식, 자기혐오, 에밀리 디킨슨이 그녀의 ‘가려진 비전‘이라 불렀던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전통에 엘리엇을 자리매김해준다. - P82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수하 2022-12-13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빌레뜨>만 읽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벗겨진 베일>도 읽어야 하네요.
갈 길이 머네요.... @_@

햇살과함께님 화이팅입니다 ^^

햇살과함께 2022-12-13 11:15   좋아요 1 | URL
수하님도 빌레뜨 화이팅입니다!! 저 빌레뜨 안읽고 12장 읽어서 망했어요 ㅎㅎ
벗겨진 베일은 그나마 100페이지도 안되요~ 다행히 5월에 민음북클럽 버전으로 읽었네요.
이제 다음 장 미들마치와 플로스강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