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의 얼굴에서 식별되지 않고 대화에서도 들리지 않는 어떤 지적인 면을 읽어 내보려고 나는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지. 명랑하고 조금 작은 눈이었어. 이윽고 활달함과 허영과 교태가 홍채를 통해 내비치는 것을 보았지만, 영혼을 감지해 보려고 한 일은 허사가 되어 버렸지. 난 순종적인 건 좋아하지 않아. 하얀 목과 주홍빛 입술과 뺨, 산뜻한 곱슬머리 타래만으로는, 장미와 백합이 시든 후에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잿빛이 된 후에도 살아남아 있을 프로메테우스 같은 섬광이 없다면 내겐 충분한 게 아니지. 햇빛과 유복함 속에서는 꽃이 한껏 피어나는 법이야. 그렇지만 인생에는 비 오는 날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말일세. 명쾌하고 기운을 돋워 주는 지성의 빛이 없는 사람들의 벽난로와 가정이 꽁꽁 얼어붙어버리는, 재앙의 11월 말이야. - P21

스타이튼 씨는 교활하면서도 신중해 보이는 얼굴을 가진 35세 가량의 남자로 이 명령을 서둘러 수행했다. 그는 그 서신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고 나는 곧 거기에 앉아 영어로 된답신을 독일어로 바꾸는 데 몰두했다. 서류를 쓰는 동안 상사가 서서 지켜보아도 자신의 생계비를 버는 최초의 노력에 대해 내가 느끼는 통렬한 행복감은 해를 입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그가 내 성격을 읽어 내려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가 꼬치꼬치 살펴도 마치 투구를 쓰고 눈가리개를 내린 것처럼 나는 안전하다고 느꼈고, 무식한 사람에게 그리스어로 씌어진 편지를 보여 줄 때처럼 자신 있게 내 얼굴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는 외형을 살피고 성격을 뜯어볼 수는 있겠지만 거기서 무슨 결론을 끄집어낼 수는 없었다. 내 성격은 그의 성격이 아니며 내 성격이 드러내는 기호는 그가 모르는 언어와도 같을 것이다. 오래지 않아 그는 갑자기 돌아서서 당황한 것처럼 사무소를 나가 버렸다. 그는 그날 두 번 더 들어왔다. - P30

그는 은근한 냉소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나는 하숙집 여주인이 스타이튼과 나눈 대화를 우연히 꺼내기 전까지는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여주인의 말이 내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 뒤로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회계 사무소로 출근했고, 공장 주인의 악의에 찬 조롱을 그럭저럭 받아냈으며, 그 다음에 그가 조롱을 겨누어 던지면 꿰뚫을 수 없는 무관심으로 방패를 삼았다. 오래지 않아 그는 조상(彫像)에다 대고 헛되이 공격을 하는 것에 지쳐버렸지만 화살을 팽개치지는 않았다 - 단지 화살통 속에 고이 모셔 두었을 뿐이었다. - P33

내 마음은 그림의 이미지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그분의 자태와 용모 - 이마, 눈, 피부색 ㅡ 를 상당히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떤 아름다운 용모도 자기를 닮은 모습이 좀 더 부드러워지고 세련되게 표현된 얼굴만큼 자기 중심적인 인간을 기쁘게 해줄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이유로 아버지들은 딸들의 얼굴 생김새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는데, 그 얼굴에서는 종종 자기와 유사한 모습이 부드러운 색조와 유연해진 윤곽으로 보기 좋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게 그토록 흥미로운 그림이 객관적인 관찰자에게는 어떤 인상을 줄까 하고 궁금하게 여기던 차에 웬 목소리가 내 바로 옆에서 이렇게 말했다.
「흠, 저 얼굴에는 분별력이 있군.」 - P35

「제 얼굴은 신께서 만들어 주신 그대로입니다, 헌스던 씨.」
「신께서는 이 도시를 위해 자네 얼굴이나 머리를 만드신 건 아니지. 자네 두상에 나타난 이상과 우월감, 자존심, 세심함이 여기서 무슨 소용이 있나, 듣고 있는가? 하지만 자네가 빅벤 구역을 좋아한다면, 여기 머무르게 자네 인생이지 내인생이 아니니까.」
「내겐 선택권이 없습니다.」 - P39

나는 킹부인의 하숙집 적은 침대에 누워 의무라는 우상과 인내라는 물신(物神)을 세워 두었음에 틀림없다. 이 둘은 내 방의 신이 되어 버렸고, 내가 사랑스러운 비밀로 간직하고 있던 관대하고 전지전능한 상상의 여신은 부드러움으로든 힘으로든 나를 그 우상에서 떼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나와 나의 고용주 사이에 생겨난 반감은 날이 갈수록 그 뿌리와 그림자를 더 깊이 더 짙게 뻗어 나갔고, 나는 삶이 비추어 주는 그 어떤 햇빛으로부터도 제외되었다. 나는 내가 우물의 얇은 벽 바깥 습기찬 그늘에서 자라는 식물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 P43

헌스던 씨가 기름을 칠한 듯 매끄럽게 말을 하는 유형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은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 나는 그가 스스로는 매우 민감하지만 다른 사람의 민감함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이기적인 성격을 보이는 사람들 중의 하나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크림즈워스나틴들 경 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신랄한 사람이었으며 자기만의 방식을 지나치게 고집하는 것 같았다. 박해받는 자가 압제자에게 저항하도록 선동하려는 목적을 가진 그의 질책은, 집요한 그 재촉 속에 압제적인 어조가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나는 그의 눈과 태도에서 자신의 자유에는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느라 바빴는데 인간의 모순이 드러난 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나직이 웃음을짓고 말았다. 내가 생각한 대로였다. 헌스던 씨는 내가 그의 부당하고 공격적인 억측과 냉정하고 교만한 냉소를 조용히 받아들이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래 놓고 자신은 거의 속삭임보다 더 크지 않은 웃음에 언짢아진 것이다. - P51

여기 용의주도함이 들어 있네. 자네가 갈 길에서 첫번째겪는 난관을 물리쳐 줄 개척자가 그 속에 들어 있다고. 젊은이, 나는 자네가 어떻게 풀려 나올지도 모르는 채 올가미 속에 목을 집어넣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사람이란 걸 잘알고 있어, 그리고 자네는 그 점에서 옳아. 나는 무모한 사람을 아주 싫어할 뿐 아니라, 그런 사람의 일에 끼어들라고 날설득시킬 방도는 어디에도 없어. 무모한 사람들은 대개 자기 친구들에게는 10배나 더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이지.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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