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질문을 받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겠지만, 그런 질문에 답하는 것만큼 불가능한 일 또한 없었다. ‘그 즐거운 돌림병이 어떻게 그에게 슬그머니 다가왔는지’ 그는 말할 수가 - P422

없었고, 똑같은 감정을 약간씩 표현을 바꿔 가며 세 번째 되풀이하자, 누이동생이 얼른 끼어들었다. "어머, 오빠! 그래서 런던에 갔던 거구나! 볼일이 있다더니 바로 이거였어! 마음을 정하기 전에 제독님께 상의드리러 간 거야." - P423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중용이 필요하지. 매우 강인한 분이다 보니, 남들도 자연히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시게 되나 보다. 그리고 물론 또 다른 이유도 있지. 충분히 이해도 되고, 평소 그분의 소신을 잘 아니까. 원칙 자체는 훌륭한데, 다만 과할 수는 있지. 네 경우에는 실제로 과했고. 가끔은 부당한 차별이 있기도 했다는 것 잘 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한 너는 그런 걸 가지고 원망하거나 할 아이가 아니지. 분별심이 뛰어나니까 부분만 보고 일방적으로 판단하지는 않을 게다. 그때그때 사정과 각자의 입장, 여러 가능성들을 감안해서지난 일을 전체적으로 보면, 다들 나쁜 뜻에서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 거다. 앞으로 네가 평범한 수준의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하고 그에 맞게 교육하고 준비시켜 온 것이지. 그런 염려가 결국 불필요한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만, 어쨌든 잘되라는 뜻에서 한 일 아니겠느냐. 그리고 여태껏 소소한 결핍이나 제약이 좀 있었더라도 앞으로 누릴 유복한 삶의 가치가 그만큼 곱절로 늘어나리라는 점 또한 믿어도 좋을 거다. 네가 노리스 이모님에 대한 마땅한 공경과 배려를 소홀히 함으로써 내 기대를 벗어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여기 앉아 보거라, 패니. 잠시할 말이 있으니. 오래 붙잡지는 않으마." - P452

놀라운,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산책에서 돌아와 다시 동쪽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 벽난로에 불이 타오르고 있는 것이었다. 난롯불이라니! 분에 넘치는 대접 아닌가. 다른 때도 아니고 오늘 같은 날 이런 호사를 베풀어 주시다니. 너무나 고마워서 가슴이 아팠다. 토머스 경이 이런 사소한 일을 기억하고 신경을 써 주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불을 살펴보러 들른 하녀가 묻기도 전에 하는 말을 듣고 그녀는 앞으로는 날마다 불을 피우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토머스 경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 P465

숙녀 편에서 마음먹은 것과는 달리 만남은 짧게 끝나지도 않았고 결정적인 자리가 되지도 않았다. 신사 편에서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토머스 경이 바란 대로 그는 꿋꿋이 밀고 나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원체 자만심이 강한지라 처음에는, 그녀 자신은 잘 모르지만 실은 자기를 좋아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크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다음에는, 그녀가 자신의 현재 감정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도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자 이번에는 그 감정을 머지않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 P469

패니는 자신의 뜻은 잘 알고 있었으나, 자신의 태도에 관한 한 제대로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그녀의 태도는 손볼 수 없 - P471

을 정도로 온순했고, 그러다 보니 단호한 취지가 얼마나 가리워지는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조심스럽고 유순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취하다 보니, 아무리 마음이 없다고 말을 해도 일부러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최소한그에게 듣기 괴로운 말들은 그녀 자신에게도 그 못지않게 괴로운 이야기인 듯 보인 것이다. 크로퍼드 씨는 더 이상 예전의 크로퍼드 씨가 아니었다. 마리아 버트럼의 은밀하고 음험하며 불충한 찬미자로 혐오스럽기만 하던 그 크로퍼드 씨, 쳐다보기도 싫고 말을 섞기도 싫고 훌륭한 자질이 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던, 호감을 사는 능력조차 거의 인정할 마음이나지 않던 그 크로퍼드 씨가 아니었다. 지금의 그는 다름 아닌 패니 본인에게 사심 없는 열렬한 사랑을 호소하고 있는 크로퍼드 씨였다. 그 감정도 이제는 분명히 명예롭고 당당한 것으로 바뀌었고, 사랑에 기반한 결혼에 모든 행복이 달려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 자기가 생각하는 패니의 장점을 쏟아붓듯 열거하고, 연모의 정을 토로하고 또 토로하며, 재기 발랄한 사람다운 표현과 말투와 기백을 보이면서 자신이 패니를 원하는 것은 패니의 온화한 성격, 패니의 선량한 성품 때문임을, 말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입증하려 애쓰게 사람이었다. - P472

잠시 애써 마음을 추스른 후 패니가 말했다. "난 여자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일 줄 알았는데요. 아무리 인기가 많은 남자라도 여자 쪽에서 마다하거나 적어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고요. 모든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남자라도 어쩌다 마음만 주면 상대편에서는 무조건 좋다고 할 거라는 생각은 곤란하다고 봐요. 그렇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또 누이분들 생각대로 크로퍼드 씨가 모든 조건을 갖춘 분이라고 해도, 내 마음이 어떻게 그분의 마음과 같을 수 있었겠어요? 내 입장에서는 정말 뜻밖이었거든요. 이제껏 나를 대하는 행동에 무슨 의미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사실 그분이 나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그것도 분명 일시적인 감정에 불과할 텐데, 그런 이유만으로 억지로 관심을 갖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 처지에 크로퍼드 씨한테 기대를 품는다면 지극히 오만한 생각 아닌가요? 그분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누이분들부터 그렇다고 볼 거예요. 그분은 별생각이 없는데 그런다고요. 그런데 내가어떻게……… 사랑 고백을 받는 즉시 사랑에 빠질 수 있겠어요? 그분이 원하기만 하면 사랑으로 응답할 준비라도 되었어야 하나요? 누이분들도 그분을 생각하는 만큼 내 입장도 헤아려 주어야지요. 그분의 가치를 높게 볼수록, 내가 그분을 마음에 두는 게 더욱 부적절해지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그리고…………이번에 보니 여자의 속성에 대해 나하고는 생각이 아주 다른가 봐요. 여자가 구애에 그렇게 금방 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니까요." - P509

이 편지에 그녀는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 두어야 했다. 에드먼드의 편지가 두려운 대상이 되다니! 그녀는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시간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가 빚어내는 온갖 의견과 감정의 변화에 대해 내가 아직 경험이 부족하구나 하는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 마음의 양태를 아직은 다 겪어 보지 못한 것이다. - P539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패니는 자기 눈에 비친 두 집을 견주어 보면서 결혼과 독신에 관한 존슨 박사의 유명한 경구110)를 원용하고 싶어졌다. 즉 맨스필드에도 괴로움은 있겠지만 포츠머스에는 아무런 즐거움도 있을 수 없다고.

110) 새뮤얼 존슨의 『라셀라스』 (1759)에 나오는 "결혼 생활에도 괴로움은있겠지만 독신에는 아무런 즐거움도 없다."라는 문장을 가리킨다. - P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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