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기쁜 기색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어쩌면 같이 일하지 않아도 될지도 몰라." 콜베리가 말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려선 안 되지." 군발드 라르손이 말했다. - P164
마르틴 베크는 그동안 경찰로 살면서 자신이 겁쟁이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주 던져보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대답을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래, 나는 겁쟁이야. 하지만 젊었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그 답이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한편 자신이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 남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캐는 것이 직업이다 보니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옅어졌다. 마르틴 베크가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 P169
뉘만이 그동안 경찰관으로 일하면서 괴롭혔던 사람은 넉넉히 수백 명은 될 것이다. 그중 극소수만이 진정서를 썼을 테고, 뢴이 간략한 조사로 알아낸 이름은 그중에서도 또 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마르틴 베크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고, 장기적으로는 소득이 있는 작업이라도 처음에는 거의 모두 무의미해 보인다는 것도 알았다. - P173
"뭐라고 말했습니까?" "경찰관은 친구가 많을 수 없는 법이라고요." 그건 만고의 진리지, 마르틴 베크는 생각했다. 마르틴 베크도 친구가 없었다. 콜베리와 딸뿐이었다. 오사 토렐이라는 여성도 친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오사도 이제 경찰관이었다. 굳이 더하자면 말뫼의 페르몬손 형사도 친구라고 할 수 있을지도. - P177
뢴은 마르틴 베크의 힘찬 목소리에 전혀 감명받지 않은 듯 쩍 하품을 했다. "그러면 무전을 쳐" 뢴이 말했다. "어디 멀리 가진 않았을테니까." 마르틴 베크는 놀라서 뢴을 보았다. "그래, 그것 참 건설적인 제안인데." "’건설적인‘ 제안이란 게 무슨 뜻이야?" 뢴은 불쾌한 추궁을 당한 사람처럼 대꾸했다. - P195
"에릭손이 출근했을 때나 그런 때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나?" 뢴이 못 믿겠다는 듯이 물었다. 막 일곱 살이 된 아들을 둔 뢴은 지난 칠 년 동안, 휴가나 주말에는 더욱더, 아이 하나가 인생의 어느 시기에는 성인 두 명의 시간과 에너지를 거의 스물네 시간 내내 잡아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자주 놀랐다. - P235
남자는 시선을 옆으로 돌리고 낮게 말을 이었다. "오케는 착한 앱니다. 오케가 힘들게 사는 건 그 애 탓이 아닙니다. 우리는 평생 뼈빠지게 일하면서 오케를 번듯하게 키우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오케도 우리도 인생이 어그러져버렸죠. 내가 젊었을 때는 그래도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든 게 나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늙어서 찬밥 신세가 되었고 세상도 다 틀렸지만. 만약에 사회가 이렇게 될 줄을 미리 알았다면 아예 자식을 안 낳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내 우리를 속였죠." "누가요?" 뢴이 물었다. "정치인들, 정당 대표들, 우리가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하지만 죄다 도둑놈이었습니다." - P279
"사이즈가 세 가지뿐인가 봐." 콜베리가 말했다. 군발드 라르손은 고개를 끄덕끄덕한 뒤 총을 허리띠에 차고 꾸물꾸물 가운을 입었다. 가운은 어깨가 너무 꽉 끼었다. 콜베리는 고개를 설레설레한 뒤 그나마 제일 커 보이는 가운을 내려서 입었다. 가운은 너무 꽉 끼었다. 배가. 콜베리는 자신들이 무성영화에서 튀어나온 코미디 듀오처럼 보일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 P287
"포위망은 점점 좁혀지고 있지." 말름이 흡족하게 말했다. 하도 구닥다리 같은 표현이라서 주변 사람들은 속으로 비웃을 힘조차 없었다. - P300
"이건 한 사람이 해야 하는 일입니다." "누가?" "제가." "그런 건 허락할 수 없네." 말름이 당장 대꾸했다. "양해만 하신다면, 제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잠깐." 콜베리가 끼어들었다. "무슨 근거에서 그런 결론을 내린 거야? 기술적 고려? 도덕적 판단?" 마르틴 베크는 콜베리를 보았다. 하지만 말은 없었다. 콜베리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둘 다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마르틴 베크가 결정했다면, 콜베리는 반대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너무 잘 알았고 너무 오래 알았다. - P317
마르틴 베크는 문득 자신의 생각이 무섭게 느껴졌다. 자신이 발코니에 꼼짝 않고 누워 있은 지 한참 된 것 같았다. 지붕 위의 남자는 살해되거나 체포되었을까? 상황이 종료되었지만 사람들이 나를 잊은 걸까? 나는 이렇게 혼자 작은 발코니에서 죽는 걸까?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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