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가져오는 위험 중 가장 명백한 위험은 경계를 넘어가 죽는 것이다. 이 위험이 제일 중요하며, 또 언젠가는 이 위험을 피할 수 없는 날이 오고야 만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다른 위험이 있는데, 바로 질병에 집착하게 되는 위험이다. 질병을 자신과 마주하지 않고 또 다른 이들과 마주하지 않으면서 뒷걸음질 치는 핑계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질병은 계속 매달리고 있을 만한 무엇이 아니다. (할 수 있다면) 그저 회복하면 된다. 그리고 회복의 가치는 새로 얻게 될 삶이 어떤 모습일지 얼마나 많이 알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 P8

아직도 진찰을 받을 때마다, 보험 서류를 작성할 때마다 암에는 차도가 있을 뿐이지 ‘완치‘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하지만 암이라는 질환의 생리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암 경험이 미친 영향이다. 암을 앓고 난 후에는 예전에 있던 곳으로 전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변화의 기회를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도 비싼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너무도 많은 고통을 보았고, 특히 젊은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은 갖기 어려울 수도 있는 어떤 관점에서 고통을 보았다. 삶이라는 게임을 이전과 같은 조건으로 계속할 수는 없었다. 예전의 나를 회복하기보다는 앞으로 될 수 있는 다른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 그리고 글쓰기는 이 다른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일부다. - P9

또 그때야 질병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님을 배울 수 있다. 아프다는 것은 그저 다른 방식의 삶이고, 질병을 전부 살아냈을 즈음에 우리는 다르게 살게 된다. 질병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도 자명하지도 않은 이유는 질병이 우리를 다르게 살도록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질병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위해 쓴다. 질병 경험 안으로 들어가 질병이 열어 보이는 가능성을 증언하고 싶지만 아프다는 것에 집착하고 싶지는 않다. 기회를 붙잡으려면 질병을 완전히 경험한 다음 떠나보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가야 한다. - P10

결국 다른 모든 경험에서와 마찬가지로 ‘내 것‘과 ‘내가남들을 통해 살아낸 것‘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은 없다. - P11

전문적인 의학 용어를 써서 말하려고 애쓰면서 아픈 사람은 개인의 경험이라는 자신만의 드라마를 스스로 부정한다 - P12

심각한 질병은 삶의 모든 면을 건드린다. 아픈 사람을 수 - P15

용하기 위해 지어놓은 병원과 의료 시설들은 환상을 만들어왔다. 아픈 사람을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떨어뜨려 가둬놓음으로써 질병 자체도 아픈 사람의 삶 안에 가둬놓을 수 있다는 환상이다. 이 환상은 위험하다. 아프게 되면 관계에도 직업에도 변화가 온다. 자신이 누구며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삶이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다르게 느낀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무섭다. 심하게 아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번의 경험에서 나는 변화가 다가오는 것을 보며 압도되었다. - P16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당신에게는 이제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들을 애도할 자격이 있지만, 슬퍼만 하다가 당신이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느끼는 감각이 흐려져선 안 돼요. 당신은 위험한 기회에 올라탄 겁니다. 운명을 저주하지 말길. 다만 당신 앞에서 열리는 가능성을 보길 바랍니다. - P17

거래를 받아들이는 대가가 무엇인지 당시엔 알지 못했다. 경험은 살아야 하는 것이지 처리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몸 또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관리자가 나라도 그렇다. 몸은 삶의 수단이며 매개체다. 나는 몸 안에서 살 뿐만 아니라 몸을 통해서 산다. 정신을 몸에서 떼어내라고, 그러고는 몸이 어디 바깥에 놓여 있는 사물인 양 이야기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몸이 고장 났다는 말을 들으면서 여전히 냉정하고 전문가답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의학의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언제나 냉철하게 행동하라고 요구받는다. 몸이 고장 났지만 공포와 절망은 고장 난 일부가 아닌 것처럼대해야 하고, 삶 전체가 바뀌었지만 바뀌지 않은 듯이 행동해야 한다. - P25

나는 의사도, 질병도 잘 몰랐기에 제한을 받아들였으며, 그리하여 질병이 가진 힘을 알게 되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질병은 삶을 바꿀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음을, 나는 아주 나중에서야 깨닫는다. - P27

질환 이야기는 어떤 측정값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기록한다. 질병 이야기는 완벽하게 편안했던 몸이 다른 몸이 되어가는 변화에 관해 말한다. 이 다른 몸은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것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 P29

내가 아픈 사람들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것은 그보다는 더 바로 눈앞의 문제들과 관련이 있다. 의료 환경 안에서 의사들과 일반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픈 사람들이 인식하길 바란다. 질병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 가야 한다. - P31

충만한 삶을 산다는 측면에서는 아픈 사람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음을.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의지를 발휘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확인하고 증명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건강이 필요하다. 반면 아픈 사람은 자신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의지를 전혀 행사하지 않아도 세계가 이미 완벽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아픈 사람은 자유롭다. 하지만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다른 회복을, 사고에서의 회복이 아니라 질병에서의 회복을 배워야 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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