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게 다 뭐야?"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잠시 뒤에 또 중얼거렸다. "다들 미친 게 틀림없어. 뢴도 나머지도 전부다."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다가왔다. 군발드 라르손은 황급히 침대로 들어가서 얌전하고 착하게 보이려 애썼다. 거북하기 짝이 없는 과제였다. - P112
화재 현장 조사는 끈기와 체계가 필요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몇 명이 죽었는지를 알아내는 게 관건이었다. - P117
엄밀히 따지자면 대답되지 않은 의문이 하나 남아 있기는 하다고 멜란데르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수백가지나 상상할 수 있었으며, 그걸 일일이 살펴서 올바른 답 하나를 건져내는 건 불필요할뿐더러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 P127
콜베리는 종이컵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페이스트리를 덥석대어 마르틴 베크의 책상에 온통 부스러기를 흘리고 있었다. 마르틴 베크는 속에 그나마 나을까 싶은 헛된 희망에 차를 마셨다. 오후 3시 반이었다. - P135
"이 화재 건은 영 마음에 안들어." 마르틴 베크가 말했다. 꼭 혼잣말 같았다. "대체 무슨 소릴 중얼거리는 거야?" 숨을 고른 뒤 콜베리가 말했다. "그게 마음에 들고 말고 할 일인가? 네 명이 불에 타서 죽고 키 이 미터짜리 바보가 메달을 받은 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아?" - P137
아이의 습관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겠지만, 솔직히 경찰이 상관할일은 아니지 않은가? 한때 그 아이는 미성년자로서 국가의 관리 대상이었지만, 요즘은 탈선한 여자 청소년 문제에 대해서 당국의 시각이 바뀌는 추세였다. 일탈한 아이가 너무 많았고, 사회복지사는 너무 적었으며, 교정 조치란 존재하지 않거나 시대에 맞지 않았다. 그 결과 청소년들은 대체로 제멋대로 하게 되었고, 당국은 평판이 나빠졌으며, 부모들과 선생들은 좌절과 무력감에 빠졌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건 경찰이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 P156
칼손은 전형적인 말단 판매자였다. 학생들의 용돈, 혹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훔쳤거나 공중전화와 자판기를 털어서 마련한 돈을 받고 점심시간에 마약을 내주는 잔챙이였다. 물건이 그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중간상을 거쳤는지는 그도 모를 게 분명했다. 그와 악의 근원 사이에는 정치적 오산과 실패한 사회철학이라는 거대한 복합체가 놓여 있었다. - P167
"안녕하세요! 뭘 도와드릴까요?" "댁이 정말로 날 도울 수 있다면 범죄학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겠군." 전화를 건 남자가 신랄하게 대꾸했다. 옐름은 성마르고 짜증이 잦았지만 유명한 과학수사 요원이었다. 그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게 없다는 건 콜베리도 경험으로 아는 바였다. 그래서 콜베리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옐름에게 말하길 꺼리는 편이었고, 이번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170
"아, 그래요." "아, 그래요라니, 댁은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여기 앉아서 하루 종일 난장판을 뒤질 필요는 없으니까. 꽁꽁 언 개똥을 비닐 봉지에 담아서 이름표에 ‘미확인 물체‘라고 적어넣는 건 쉽지만, 그게 뭔지 정체를 알아내는 건 훨씬 더 어렵단 말이오. 동의하지 않소?" - P171
옐름은 잠시 침묵하여 극적 효과를 준 뒤에 말을 맺었다. "……사건을 담당한 과학수사관의 박식함과 관찰력이 대단히 뛰어나지 않다면 말이죠." - P178
일손이 더 필요하면 말만 해." "일손이라뇨?" 콜베리가 물었다. "누굴 끌어옵니까?" "글쎄……." 함마르가 어깨를 치키며 말했다. "그 스카케라는 친구도 있고." 스카케의 이름이 나온 순간 콜베리는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멈춰 선 콜베리가 뭐라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마르틴 베크가 그를 복도로 밀어내고 등뒤로 문을 닫았다. - P186
초인종이 울리자, 마르틴 베크는 허리띠를 조이고담배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자신이 사라지자마자 잉리드가 한모금 훔쳐 피울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 P189
잉리드는 아빠의 배를 쿡 찌른 뒤 제 방으로 사라졌다. 마르틴 베크와 콜베리가 현관으로 나가서 코트를 입노라니 잉리드의 닫힌 방문에서 시끄러운 팝송 소리가 새어 나왔다. "비틀스." 마르틴 베크가 말했다. "저 애 귀가 떨어져나가지 않는 게 신기하지." "롤링스톤스야." 콜베리가 말했다. 마르틴 베크는 놀라서 콜베리를 쳐다봤다. "차이를 안단 말이야?" "크나큰 차이가 있지." 콜베리는 이렇게 말하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P191
누구도 멜란데르에게는 신경쓰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멜란데르는 낯익은 종업원을 하나 발견했다. 여자는 달라르나 출신의 시골 처녀가 될지 카르멘이 될지 미처 정하지 못한 채 가장무도회에 온 사람처럼 옷을 입고 있었다. - P207
멜란데르는 셰레트가 일러준 클럽을 찾아갔다. 그러나 입구에 붐비는 젊은이들을 보고는 자신이 저곳에서 눈에 띄지 않게 녹아들 가능성은 닭떼 속에 낀 타조 수준이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집으로. - P211
"뭐하나?" 콜베리가 멜란데르에게 물었다. "생각중이겠지." 마르틴 베크가 대신 대답했다. "그건 나도 알아.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거지." "경찰의 치명적인 실수 중 하나에 관해서." 멜란데르가 말했다. "아, 그래, 어떤 실수?" "상상력 부족." "그게 자네가 할 말인가?" "그래, 나한테도 그런 결함이 있지." 멜란데르는 차분히 받았다. "현재의 문제는 이 사건이 상상력 부족의 완벽한 사례가 아닐까 하는 거야. 수사 활동의 편협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 P242
"그래, 수사는 어떻게 되고 있나?" 함마르가 방을 휘 둘러보면서 도전하듯이 말했다.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몇초 뒤 함마르는 나가버렸다. 그에게 쉴 새 없이 수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고 묻는 검사, 경찰 관료, 상사들과의 끊임없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그도 견딜 게 많았다. - P291
"그래, 몰라. 하지만 우리가 확실하게 짐작할 수 있는 게 하나는 있지." "그래." 멜란데르가 말했다. "자네 생각이 옳을 거야." "프로의 솜씨." 마르틴 베크가 저 혼자 중얼거렸다. "바로 그거야." 콜베리가 말했다. "프로. 프로만이 양말에 넣은 돌멩이나 망할 폭탄 같은 걸 쓰지." "동의해." 멜란데르가 말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꼭 기적이라도 목격한 것처럼 눈이 튀어나온 채 머리를 긁적이면서 여기 앉아 있는 거야. 우리는 지금까지 아마추어만 다뤄봤으니까. 너무 오래 그랬기 때문에 우리 자신도 아마추어처럼 되어버렸거든." "범죄의 98퍼센트는 아마추어 짓이야. 심지어 미국에서도."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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