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에는 야간 쥐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있다. 시험을 치르고 선발된 준공무원이다. 그들은 높은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한 것을 자랑스레 여긴다. 그들에겐 손전등, 전선 3미터, 막대기가 지급된다. 그들은 으슥한 골목길이나 시장에서 쥐를 때려잡는다. 손전등을 비추면 쥐는 1초간 움직이지 않게 된다. 이때 시신의 손가락을 뜯어 먹고, 자는 사람의 귀를 물어가던 쥐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다. 쥐잡이 한 사람이 하룻밤에 큰 쥐 서른 마리 이상을 잡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날은 결근한 것으로 처리된다. - P116

폐허가 풍기는 몽환이 만개한다. 사원의 계단들을 오르내리다가 몽환에 빠졌나보다. 또 나가는 길을 잃었다. 몹시 어둡다. - P123

나는 이곳에서 내 더러운 것이 내 더러운 것을 닦는 것을 경험한다. 내 더러움에 익사하자 내 더러움이 잠시 깨끗해진다. 혹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더러워진다. 내가 사는 동안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나는 내 안에 무한증식, 무한 사망하는 숯처럼 까만 쥐들을 거느리고 피리를 불며 식별 불가능 지대를 떠난다. 나는 이곳을 겪었는가? 다만 나의 그 무수한 쥐들 중 한 마리를 이곳에서 만났을 뿐인지도 모른다. 까만 숯처럼 쌓인 쥐들 중 어느하나가 지금 붉은 눈 두 개를 반짝 뜨고 있다. 나다. 곧 재가 될 바알간 숯이다. - P138

드넓은 초원에서 내 감각들 중 시각이 제일 먼저 어쩔 줄 몰라 한다. 거침없는 지평선을 마주한 적이 없는 나는 먼저 거리를 가늠할 줄 모른다. 멀고 먼 곳을 향하던 시야를 거두어들이면 바로 눈앞에서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배가 고픈 양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쓰러진다. 너무 굶주리거나, 너무 목이 마르면 눈에서 피가 나나 보다. - P151

속이 붉은 자두를 깨무는 순간, 으깨지며 터지는 과육과즙! 붉은 황혼 머리를 속에 담그고, 바람 선득선득한 곳에 홀로 서 있던 아가씨가 스윽 지나간 듯. 혀가 입속에서 황홀하게 뒤친다. 늦은 여름의 햇빛이 이토록 향기 나게 쫀득거리는 것을 만들어내다니. 향기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다. 향기의 발음기호 속엔 이 질감이 없다. 표현할수 없으므로 말은 필요 없다. 자두와 만난 오감이 몸을 훑고 최전방에 배치된 이 순간, 바로 예술 작품이라는 것, 그것들이 펼친 순간의 황홀을 생각한다. - P158

노래가 들린다. 사막의 세이렌이 거기서, 서, 서 노래한다. 그러나 멈추면 죽는다. 늘 출발해야만 한다. 적멸속에선 늘 출발해야 한다. 적막 속에선 늘 출발해야만 한다. 소멸 속에선 늘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막의 영에게 먹힌다. 방치된 상태를 출발함으로 겪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칠 것이다. 나는 미치기 시작한다라는 말을 몸으로 이해한다. 슬픔이 분노로 바뀐다. 그리움이 분노로 바뀐다.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풍경이있다.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끓는 냄비 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지독히 아픈데 아직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 P172

영혼 없는 몸이 외로움을 탄다. 외로움이 물질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이 무겁다. 외로움이 다리에도 있다. 머리에도 있다. 가슴에도 있다. 몸에서 뛰쳐나오려는, 그러나 꽉 막힌 그것을 꺼내려 기침을 하는 것 같다. 기침을하면 할수록 가슴이 막힌다. - P176

밑에서 쳐다보면 소녀가 하늘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소녀가 자라 드디어 시집가는 날.
할머니는 누구에게 시집가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머리에 옷을 덮은 그녀가 울었다. 소리 높여 울었다. 끌려가는 짐승처럼.
소녀는 남편의 남동생들과 다 결혼해야 한다고 했다.
결혼식 다음 날 남편은 돈 벌러 도시로 떠나고, 그녀는 겨울지나 남편의 둘째 동생과 또다시 결혼해야 한단다.
어두운 방에서, 남편 형제들의 번들거리는 눈빛을 받으며 그녀가 그보다 더 번들거리는 버터차를 만들고 있었다. - P201

어느 것은 하기 쉽고, 어느 것은 어렵다. 밤 10시 정도까지 춤이 계속되는데 모든 주민이 노래에 맞는 모든 동작을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아기들도 알고 있다. 고원 사람은 말할 줄 알면 노래할 줄 알고, 걸을 줄 알면 춤출 줄 안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다. 모두 춤꾼들이다. - P205

이들은 결혼하지 않는다. 당연히 이혼도 없다. 아버지가 없으니 대대손손이란 말도 없고, 가부장이란 말도 없다. 남녀가 가정을 꾸리지 않으니 부부 싸움도 없다. 이들은 어머니 집에서 모두 산다. 어머니는 부엌 곁 1층에 방이 있고, 2층에는 자매들의방, 형제들의 방, 합궁의 방이 있다. 합궁의 방에는 남자가 떠나야 할 창문이 침대 머리맡에 있다. 남자가 여자의 방에 한밤중 올라오려면 90도 각도의 벽을 타고 올라야 한다. - P231

물 많고, 논 많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작지를 가진 나라가 이렇듯 억압 속에 있다니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다 연이어 모든 사물과 생물은 중력 없이 떠 있는데 내 몸만 야수처럼 중력에 갇혀 있는, 슬프고 괴이한 느낌이 몸을 뒤덮는다. - P239

경배가 지나치고, 사랑이 지나치다. 지겹다. 전 국민이 부처를 스토킹 중이다. 삶은 팽개치고 부처 얼굴만 쳐다보는 것 같다. 불교 사회주의, 불교 민족주의, 불교 국교화에 짓무른 일상을 똥처럼 뭉개고 앉아, 딱딱하고 노란 황금 얼굴만 쳐다보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 위에 국민의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욕구는 억압하고, 부처만 쳐다보도록 장려하는 군복을 입은 자들의 손길이 있다. 일상을 반추해보지 못하도록 하는 음험한 허구 기계가 가동 중이다. 그와 아울러 타 종교를 억압하는 죄의식 없는 자의식이 준동한다. 부처는 황금 마취제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오그라들어 작은 체구에 주름 가득하고, 뼈만 앙상한데, 부처는 황금 속에 익사해 영원불멸한다. 나날이 뚱뚱해진다. - P242

간혹 거리에서 분홍색 가사를 걸치고 머리를 밀어버린 여자들을 만나지만 그녀들은 승려가 아니다. 여자는 사원에 몸을 의탁해도 승려가 될 수는 없다. 단지 잡무만 본다. 남자가 1층에 있을 때, 여자는 2층에 올라갈 수 없다. 여자가 남자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건 남자를 모욕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원의 제단에도 여자는 올라갈 수 없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말한다. 국립대학에는 여학생 수가 더 많고, 사미니들의 불경 지식이 더 풍부하고, 해박하다고. 그래도 사미니들에게 분홍색 옷을 입히고, 양산을 씌워 그들이 여성임을 강조하고 금기를 덧씌우는 법은 사라지지 않는다. 독재정권 아래서 살아보지 않은 자는 모른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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