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획득하는 소유물이 아닌, 생각의 문제이고 마음의 상태이다. 물론 지금의 우리에게도 절망의 순간은 찾아온다. 하지만 시계로 잴 수 없는 시간이 영원으로 치달을 때 나는 그의 미소를 보면서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 함께 걸어간다는 것, 어떤 의견 차이도 우리 사이의 장벽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 P11

하지만 부인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구역을 마구 짓밟고 돌아다니는 머리 나쁜 염소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민망한 마음에 나까지 얼굴이 붉어졌다. - P27

"텅 빈 집은 꽉 찬 호텔처럼 고독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둘 다 냉정한 장소라는 거죠." 그는 다시 망설였다. 나는 그가 드디어 맨덜리 이야기를 하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의 입을 막았고 결국 그는 성냥불을 불어 끄면서 의지의 빛도 꺼버렸다. - P42

그는 또 라일락을 좋아하냐고 물었던 것 같다. 잔디밭 가장자리에 선 라일락나무는 침실 창가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향기가 강하다면서 부지런한 현실주의자인 누님은 맨덜리에는 향기가 너무도 많다고, 그래서 취해버릴 수밖에 없다고 그에게 불평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가진 인생 최초의 기억은 하얀 화병에 꽂힌 커다란 라일락 가지가 내뿜는 향기였던 것이다. - P51

첫사랑의 열병이 두 번 반복되지 않는다는 점은 참 다행이다. 시인들이 어떻게 찬양하든 그건 분명 열병이고 고통이기 때문이다. 스물한 살의 나이는 용감하지 못하다. 겁이 많고 근거 없는 두려움도 많다. 쉽게 까지고 상처를 입어 가시 돋친 말 한마디를 견디지 못한다. 중년을 바라보면서 탄탄한 갑옷을 입은 지금에야 가시에 찔린 사소한 상처 같은 것을 가볍게 넘기고 곧 잊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그때는 남이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오래도록 남아 고통스러운 낙인이 되고 어깨 너머 뒤돌아본 눈길 하나가 영원히 기억에 꽂히고 마는 것이다. - P56

곧 부인은 혼자서 침대칸에 앉아 떠나겠지. 그와 나는 호텔 식당에 앉아 미래를 계획하며 점심을 먹을 것이다. 대모험의 시작인 것이다. 부인이 가버리고 나면 그는 나를 사랑한다고, 함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해줄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는 시간이 없었다. 또 그런 말은 아무 때나 쉽게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눈길을 들어 거울에 비친 부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부인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고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침내 마음을 고쳐먹고 행운을 빌어줄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고 용기를 북돋아줄 모양이었다. 하지만 부인은 모자 아래 머리카락을 매만지면서 계속 미소만 지었다. - P98

"물론 왜 그가 너랑 결혼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설마 그가 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빈 저택의 공허함이 괴로운 나머지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까지 온 거야. 네가 들어오기 전에 자기 입으로 그 얘기를 하더구나. 도저히 혼자서는 거기서 살 수 없다고 말이야………" - P98

나는 맥심 팔에 몸을 기대고 그 소매에 얼굴을 묻은 채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내 손을 톡톡 치면서 비어트리스와 이야기를 했다.
‘이건 내가 재스퍼를 대할 때와 똑같잖아.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나는 재스퍼처럼 굴고 있어. 그는 생각날 때마다 나를 어루만지고 그럼 난 기분이 좋아지지. 그는 내가 재스퍼를 좋아하듯 나를 좋아하는 거야‘ - P158

비어트리스는 내 손을 잡고 얼굴에 살짝 입을 맞췄다. "잘 있어요. 내가 무례한 질문을 너무 많이 했다면 잊어주고. 하지 말아야 할 말도 많이 해버렸네. 맥심도 말하겠지만 내가 워낙 생각 없이 떠드는 편이어서요. 아까도 말했지만 올케는 정말 내 예상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비어트리스는 날 가만히 바라보더니 휘파람을 불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니까, 레베카와는 전혀 다르다는 말이에요."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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