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은 우산의 투명 비닐 밖에 펼쳐진 축축한 회색 풍경을 바라봤다. 모자가 필요한 날씨다. 검정 야구모자와 헤어 젤. 로빈은 둘 다 쓰지만, 오늘 같은 날씨에는 뭘 해도 소용이 없다. "바보같이 외모 걱정을 왜 해? 생각만 바꾸면 비의 생명력이 내 것이 되는데!" 로빈의 엄마가 늘 하던 말이다. 로빈이 궂은 날씨를 싫어하는 마음과 거의 비슷하게 엄마는 폭풍우를 좋아했다. - P65
누군가 걱정을 하면, 로빈의 아빠는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도 50퍼센트지"라고 말하곤 했다. 로빈의 엄마는 그 말을 정말 좋아했다. 요즘 아빠는 그 말을 별로 하지 않는다. 나머지 50퍼센트의 불행이 닥쳤을 때도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 믿기는 힘들다. 그래도 시벨을 자기 의지로 거부한 건 잘한 일이었다. 경험을 쌓고 싶지만 아무한테나 목매달고 싶진 않았다. - P84
위니는 토미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속삭였다. "내가 네 아빠라면 좋겠다." "우리 서로 아빠가 되어 주면 되지." 둘은 서로에게 엄마이기도 했다. 늘 서로 밥은 먹었는지, 옷은 따뜻하게 입었는지 챙겨 주었다. 한번은 토미가 위니에게 스케이트보드 기술을 가르쳐 주다가 말했다. "넌 내가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아들이야." 위니는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좋았다. - P9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은 인종도 성별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아." - P99
"우리 엄마가 그 사람들 편을 드는 건 그 사람들도 권리가 있어서래. 너도 들었잖아. 우리 아빠랑 결혼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 편을 드는 거야." "네 아빠랑 결혼한 거랑 무슨 상관인데?" 이번에는 내가 짜증이 났어. "우리 아빠 흑인인 거 까먹었냐?" 나는 한심하다는 듯이 마리아를 바라보고는 다시 바다로 고개를 돌렸어. 작은 파도들이 우리가 앉아 있는 바위 쪽으로 살며시 다가오고 있었어. 마리아가 말했어. "아, 그런 거였구나." "우리 엄만 상관 안 할 거야." - P124
로이스 라우리 Lois Lowry 나는 1937년에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뉴욕과 펜실베이니아에서 살았고, 중학교는 도쿄, 고등학교는 뉴욕, 대학교는 로드아일랜드에서 다녔습니다. 결혼하면서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코네티컷, 사우스캐롤라이나, 매사추세츠, 메인을 돌아다니며 생활하다가 1979년에 이혼하고 난 뒤로는 보스턴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의 일상은 아주 평온합니다. 주중에는 도시에서 살고, 주말은 시골에서 보냅니다. 나는 책과 꽃, 개, 영화, 음악을 좋아합니다. 같이 사는 남자는 유머 감각이 넘치며 해리 트루먼을 영웅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내게는 아들과 딸이 둘씩 있는데, 이제는 모두 다 컸습니다. 넷 다 눈이 파랗고 혈액형이 Rh 음성입니다. 그리고 모두 유머 감각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닮은 점은 그게 전부입니다. 둘은 곱슬머리이고, 둘은 아닙니다(한 아이는 한때 머리를 빡빡 밀고 다녔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셋은 기혼인데 그중 하나는 두 번째 결혼입니다. 한 아이는 아직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하나는 공화당원이고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자입니다. 둘은 아이가 있고, 하나는 앞으로 부모가 되고 싶어 하며, 하나는 절대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나는 장애인이고, 둘은 운동을 좋아하며, 하나는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입니다. 나는 사람들 저마다의 차이를 존중합니다. 1994년 뉴베리상 수상작인 <주는 사람 The Giver>에도 이러한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 P144
모든 시선이 애브너에게 꽂혔다. 그러고는 바로 록시와 나한테로 옮겨 왔다. 선생님이 말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 우리가 늘 강조하는 거 잊지 않았지? 누구도 억지로 커밍아웃할 필요 없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신할 필요도 없다는 거." - P165
"캐런, 그날 일……… 미안해." "나도, 엄마한테 화내서 미안해. 그래도 에이즈에 대해선 엄마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 그건 나한테 중요한 문제야. 그렇지만 뭐, 엄마에게도 엄마 생각을 말할 권리는 있는 거니까." "아냐, 내 생각이 잘못된 거라면 고집해선 안 되지. 요 며칠 책을 찾아봤는데, 나 자신이 좀 부끄러워지더라. 내가……… 애초에 내가 왜 사회복지사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는지 잊어버리고 산 것 같아. 그동안 난 동성애라는 것이 좀 거북했어. 그런데 이제는…………." - P175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형이 나한테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친해지고 싶을 뿐이야. 내가 볼 때 넌 참 매력이 많은 애인데 지금은 아주 혼란스러운 것 같아."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 "그동안 널 지켜봤으니까. 시작은 늘 그래, 마이클 자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다 먼저 알게 되더라고." "뭘 알게 된다는 거야?" 월트는 그저 웃기만 하더니 마이클을 보면서 자기 옆자리를 두드렸다. 마이클은 가슴속에서 비상벨이 울리는 걸 느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월트 옆으로 갔다. - P199
나도 그래. 나도 다른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거 좋아해 보려고 했거든. 그러면 애들이 날 좋아해 줄 것 같아서. 근데 아무리 해봐도 유치한 파티에 가는 거랑 쇼 프로그램 보는 건 너무 싫어." 베키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랑 나는 남들하고 다른가 봐." 마이클은 눈물이 가득 고여 앞을 가렸지만 가까이 다가가 베키를 와락 끌어안았다. "베키야, 사랑해." 마이클은 한없이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벅찼다. 베키를 지켜주는 건 자신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 순간은 베키가 마이클을 지켜 주고 있었다. - P203
실라가 내 팔에 손을 얹자 내 마음 한가운데에서 다시 실라의 손길이 느껴졌다. 내 마음을 저 깊은 속까지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실라가 불쑥 자신이 아니라 나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테리야, 너도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할 거야." 이 말이 매기 없이 농구 캠프에 가는 걸 말하는 게 아님을 나는 알고 있었다. 실라는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밖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문은 열려 있었다. 용기만 낸다면 얼마든지 따라 들어갈 수 있게. - P227
앨런 하워드 나는 거의 평생을 오리건주에서 살다가 1990년에 남편 척과 함께 미시간주의 캘러머주로 이사를 왔습니다. 딸이 넷 있는데, 지금은 다 자랐습니다. 그중 셰일리라는 딸이 레즈비언입니다. 부모 노릇을 하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레즈비언 정체성을 찾아 헤매던 셰일리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달리기>의 주인공처럼, 난 딸아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에서 도망치려고만 했습니다. 딸이 레즈비언인 게 창피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려면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딸은 자신을 찾기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비겁한 엄마를 두었는데도 말입니다. - P228
오솔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하던 데이비드는 이상하게 날아갈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앨런과 헤어지면 허전함이 밀려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떤 충만감과 깊은 만족감이 느껴졌다. 데이비드는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앨런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 P265
대화는 사실 추한 거짓말들뿐이었다. 여자 몇 명을 꼬셨고, 몇 명이 넘어왔는지 등등. 피트와 리 둘 다 거짓말에 능숙한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둘을 부추긴다. 사실 이 대화는 남자든 여자든, 스트레이트든 게이든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빈칸은 알아서 채워 넣으시길. 운이 좋은 애들은 곧 성숙해져서 이따위 거짓말이 필요 없어진다. 강인한 애들은 애당초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 P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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