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의 말씀. 함께 사랑하든가 함께 죽든가 해야지, 그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어. 그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니.’ - P185

그가 나중에 리유에게 말한 바에 따르면 바로 그때, 구급차가 질주하는 어둠 속에서 그는 자기와 아내를 갈라놓은 장벽으로부터 어떤 탈출구를 찾기에 열중한 나머지 그동안 줄곧 아내 생각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또한 바로 그때, 모든 길이 또다시 꽉 막히고 나자, 욕망의 한복판에서 새삼스레 아내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고통의 폭발이었기 때문에, 그는 호텔 쪽으로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그 불지짐같이 혹독한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 뜨거운 아픔은 그의 가슴속에 남은관자놀이를 파먹듯이 쑤셔 대는 것이었다. - P207

"그렇습니다. 아직도 잘 이해 못 하고 계세요. 페스트란 바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게 특징이란 걸 말입니다." - P213

리유는 갑자기 피로를 느낀 듯이 일어섰다.
"옳은 말씀이에요, 랑베르, 절대로 옳은 말씀이에요. 그러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금 하시려는 일에서 마음을 돌려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일이 내 생각에도 정당하고 좋은 일이라 여겨지니까요. 그러나 역시 이것만은 말해 두어야겠습니다. 즉,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성실성이 대체 뭐지요?" 하고 랑베르는 돌연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일반적인 면에서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 하고 랑베르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어떤 것이 내직분인지를 모르겠어요. 아마 내가 사랑을 택한 것은 정말 잘못일지도 모르겠군요." - P216

게다가 형무소 당국은, 교회 측이나 그보다는 차이가 훨씬 덜 나지만, 군 당국과 똑같은 조처는 취할 수가 없었다. 사실 시내에 단 두 개 있는 수도원의 수도승들은 신앙심이 두터운 가정에 임시로 분산 숙박하도록 조치가 내려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정이 허락할 때마다 소규모의 부대들이 병영에서 분리되어 학교나 공공건물에 주둔하도록 조처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외관적으로는 포위된 상태 속에서의 연대책임을 시민들에게 강요하던 질병은 동시에 전통적인 결합 형태를 파괴하고 개개인을 저마다의 고독 속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혼란을 초래했다. - P225

그러한 행정 면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절차에 따른 그 불쾌한 성격 때문에 도청은 부득이 친척들로 하여금 장례식을 멀리하게 해야만 했다. 단지 묘지 정문 앞에까지 오는 것은 허용했지만, 그나마도 공식적인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최종 단계의 의식에 관련된 사정이 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당국은 묘지 맨 끝에, 유향 나무들로 뒤덮인 빈터에다가 엄청나게 큰 구덩이 두 개를 마련했다. 남자용 구덩이와 여자용 구덩이였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행정 당국은 예의를 갖춘 셈이었다. 여러 가지 사태의 압력으로 급기야는 그 마지막 수치심까지 팽개치고서 체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자 남자 가리지 않고 뒤범벅으로 포개어 묻어 버리기 시작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 P231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가장 놀라운 것은 질병의 전 기간을 통해서 그런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인력은 결코 모자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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