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기사를 꼼꼼히 읽고 내용을 잘 기억해두었다. 기억하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기억이 됐다. 그건 한 편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슬픔은 이야기로 만들면 견딜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말하자면 이야기가 된 모든 것은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것이다. - P12

기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공장 안에서의 삶도, 공장 바깥에서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정해진 기한을두고 어딘가에 머무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건 임시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견뎌지지 않는 현실이 거기에도 있었다. 그렇게 끓지는 않을 만큼 미지근하게 익어가다가, 먹어버리면 끝나는 순간들이었다. - P50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언제나 한결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고, 깊게 오래 바라보고 적응해간다면 시골살이나 바다에 가까운 삶도 꿈만은 아닐 테지만, 아직은 이 복잡하고 정신없으며 수많은 사건 사고가 있는 도시가 좋다. 세계인이 함께 통과하고 있는 이 예상치 못한 팬데믹의 시간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기에, 그때까지는 서울에 머물러 있고 싶다. 아주 오래된 것과 오늘 새롭게 생겨난 것이 뒤섞인 서울이 나는 여전히 재미있다. 싫은 것도 많지만 좋은 것도 가득한, 매콤달콤새콤한 나의 도시. 어쩔 수 없는 나의 베이스캠프. - P93

미안하지만 애초에 ‘엄마의 마음‘이라는 것부터가 문제다. 면식이 밥에 버금가는 주식이었던 우리집과는 달리 라면을 먹는 걸 금기시하고 먹게 되는순간을 가능한 한 늦추는 집들을 나는 자주 보아왔다. 어떻게 봐도 건강식으로 보기 어려운 음식이니이런 엄마들의 마음이야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바로 이 마음 때문에 라면을 잘 끓이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엄마들은 라면을 끓이면서 이왕이면 단백질도 섭취했으면 하는 마음에 달걀도 깨서 넣고, 파나 양파를 무작정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 P95

냉장고도 비울 겸 냉동만두 같은 것까지 넣어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나트륨 과다 섭취를 걱정하면서 수프는 반만 넣는다. 이런 라면은 맛이 있을 가능성도 없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라면도 아니다. 라면 수프의 맛을 국물 베이스로 쓰고 면을 탄수화물 추가용도로만 사용하는 정체불명의 요리일 뿐이다. - P93

그리고 또 하나. 거의 모든 라면 봉지 뒷면의 조리법에는 ‘나트륨(식염) 섭취를 조절하기 위해서 분말수프는 식성에 따라 적당량 첨가’하라는 주의가 따라온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프를 덜 넣는 만큼 맛도 덜어진다는 것이 나의 단호한 입장이다. 나트륨은 다른 끼니에서 조절하면 된다. 수프의 양을 조절할 필요가 있는 라면 요리는, 내 기준에서 보건대 오직 라면땅 정도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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