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 내겐 과분할 정도이지요. 훌륭한 한패고말고요. 하지만 나를 그토록 높은 지위에서 이렇게 낮은 신분으로 떨어뜨린 작자는 누구지요? 바로 나라는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비난하고 있는 게 아니올시다―― 천만에요. 나는 누구도 비난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다 자업자득이지요. 냉엄한 이 세상더러 하고싶은 대로 최악을 다하라지요. 한 가지만은 나는 알고 있지요 — 나를 위한 무덤이 어디엔가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전과 다를 것 없이 돌아가고, 나에게서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겠지요 사랑하는 사람들, 재산, 그 밖에 모든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그 무덤만은 빼앗아갈 수가 없어요. 언젠가 나는 그 무덤에 누워 모든 걸 잊어버리고 내 불쌍한 상처받은 가슴이 안식을 찾게 될 겁니다 - P277
그러나 나는 한마디 입도 뻥끗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지요. 혼자만 알고 내색을 않는 것, 그게 제일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싸움도 일어나지 않고, 귀찮은 일도 생기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놈들이 자기들을 왕이니 공작이니 하고 불러주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가족의 평화를 유지하는 한 나는 반대하지 않았지요. 짐에게 얘기해 보았자 아무소용도 없는 일이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아빠한테서 무엇인가 배운 바가 있다면, 이런 종류의 인간들과 함께 살아나가는 데 제일 좋은 방법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내버려두는 거라는 겁니다. - P284
나는 곧 잠이 들어버렸고, 내 당직 시간이 와도 짐은 나를 깨우지 않았습니다. 짐은 가끔 이렇게 했지요. 마침 아침 새벽녘에 눈을 떠보니 짐은 거기 그대로 앉아서 머리를 무릎 사이에다 박고는 혼자서 신음소리를 내며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또 그런 내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엇 때문인지 잘 알고 있었지요. 짐은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와 자식 생각을 하고는 상심하여 향수병에 걸려 있는 겁니다. 아직까지 한번도 집을 떠나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자기 가족을 생각하는 심정은 흑인이나 백인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같이 보이지 않지만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요. - P340
나는 이렇게 혼자 생각했습니다. 나는 지금 바로 이 처녀의 돈을 저 뱀 같은 늙은이가 훔치도록 잠자코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 P378
그런데 사실을 고백하는 편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때가 있는 법인데,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일을 마음속에다 새겨두었다가 언젠가 좀더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보통이 아닌 괴상한 일이었으니까요. 이런 일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마침내 옳지, 위험을 무릅쓰기로 해보자, 이번만큼은 진실을 말해 보기로 하자 하고 혼자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마치 화약통 위에 앉아 자기가 어디로 튀어나갈지 보기 위해 화약에다 불을 당기는 격이었지요. 그러고 나서 나는 이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 P401
그것은 사소한 일로 성가신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지상에서 사람이 가는 길을 가장 평탄하게 해주는 것은 이와 같이 사소한 일인 겁니다. 그렇게 한마디 해두면 메리 제인은 안심할 것이며, 게다가 돈 한 푼 드는 일도 아니었지요. - P408
아슬아슬한 고비였습니다. 나는 종이를 집어 손에 쥐었습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둘 중에서 어느 하나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나는 숨을 죽이고는 잠시 생각한 끝에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좋아, 난 지옥으로 가겠어」―그러고는 편지를 북북 찢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끔찍스런 생각이었고 무서운 말이었지만 벌써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뱉은 말을 취소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었지요. 그러고는 이제 두 번 다시는 마음을 고쳐 먹는 일에 대해서 신경을 끄기로 했습니다. 그 모든 생각을 머리에서 말끔히 씻어버렸지요. -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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