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이지 어머니 짱!!

이모들은 이기동의 집에 자주 찾아왔다. 형편이 좋았던 이모들은 그들이 집을 구할 때 목돈을 빌려주었다. 그는 이모들이 사 온 과자를 먹으며 어머니와 이모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가 천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아무도 그의 이해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이모들은 주로 그의 아버지를 흉봤다. 그때마다 그의 어머니는 입을 꼭 다물고 있다가 이모부들을 흉보는 분위기로 전환되어서야 비로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모들은 빌려간 돈은 언제 갚을 생각이냐고 자주 물었다. 어머니는 그를 가리키며 이렇게 대꾸했다.
"내가 못 갚으면 쟤가 갚을 거야. 우리 아들 못 믿어? 장래희망이 의사라고."
"너 공부 잘하니?"
둘째 이모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물었고 그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 P11

- 이기동의 어머니는 아들이 의대에 갈 수 있을 거라고 굳게믿었다. 시험 점수가 평균 70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성적표에 사인할 때마다 한참 동안 망설였다. 오른손에 볼펜을 쥐고 성적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마다 그는 어머니의 심장에 총을 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희망을 잃지 마.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더 잘할 수 있어."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희망을 믿고 하던 대로 열심히 했지만, 존 케이지와 그의 제자들은 다른 길을 택했다. 존 케이지의 제자인 백남준은 이런 말을 남겼다.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꾸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는 아직 존 케이지를 만나지 못했다. 그곳까지 가려면 한참이나 더 걸어야 한다. - P27

그러면 그녀는 두툼한 허리에 두르고 있던 앞치마가 펄럭일 정도로 빠르게 돌아서며 대꾸했다.
"뭐겠어? 나한테 도대체 뭘 기대하는 거야?"
"여보, 난 단지 저녁 메뉴가 뭐냐고 물은 것뿐이야."
"왜 나만 보면 다들 똑같은 걸 묻는 거지? 젠장, 나도 다른 사람한테 오늘 저녁 메뉴가 뭐냐고 물었으면 소원이 없겠네." - P29

"엄마는요?"
"내 뒤에 태우면 되지."
아버지는 웃으며 맥주를 더 주문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아버지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가족을 대했다. 그는 아버지를 관찰하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술 마시며 하는 모든 희망적인 말들은 사실 이루어질 가망성이 거의 없는 것이며, 그걸절실히 깨달은 사람만이 술을 마시고 그런 얘기들을 늘어놓는거라고,
그는 술이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인지, 사람이 술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희망이 사람을 초라하게 만든다는 것만은 그의 아버지를 보건대 어렴풋하게나마 알수 있었다. - P31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덫도 아니고 감옥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었다. 이기동은 창밖을 보면서 그것의 존재를 눈으로 더듬었다.
-존 케이지는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이 빠져나갈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덫도 아니고 감옥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었다. 존 케이지는 창밖을 보면서 그것의 존재를 눈으로 더듬었다. 그 존재는 바로 그였다. - P35

-종일 시내를 싸돌아다니면서 뭘 했니? 본다는 영화는 봤니?"
존 케이지는 어머니의 물음에 답했다.
"네, 봤어요. 착취에 대한 얘기였어요."
"오렌지농장 얘기로구나."
"정확히 말하면 이 세계에 대한 얘기예요. 어머니는 착취의 반대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반대말은 모르지만 비슷한 상황은 하나 알지.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착취를 당하고 있어. 돈 한 푼 못 받고 말이야."
그는 아들의 접시에 으깬 감자 한 덩어리를 툭 떨어뜨리며 말했다. - P46

존 케이지와 그의 아버지는 잠자코 그것을 먹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오늘따라 맛이 기가 막힌데? 시카고에서 아들이 온다고 특별히 신경 썼나보군."
존 케이지의 어머니는 코웃음을 쳤다. 포크를 든 채로 그릇만 노려보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맙소사,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무도 모르다니."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부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P47

- 존 케이지는 시애틀로 떠나기 전 그레이스와 함께 극장을 방문했다. 〈모던 타임즈>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찰리 채플린의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그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급식 기계의 오작동으로 찰리가 고생하는 장면과 톱니바퀴에 끼어버린 동료에게 통닭과 수프를 먹여주는 장면이었다. 다른 몇몇 장면에서도 그는 크게 웃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그의 표정은 전반적으로 어두웠다.
그녀가 물었다.
"영화가 별로였어?"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별로야. 원래부터 알긴 했지만 이젠 더 확실히 알겠어. 이 세계는 잘못됐어."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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