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금지법을 폐지하는’1965년 이민국적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한국계 미국인들도 미국 인종 분리 정책의 희생자였다. 다이빙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계 미국인 새미 리(Sammy Lee)는1930년대에 공영 수영장에서 훈련하지 못했다. 아시아인은 백인과 수영장을 같이 쓰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P12
모범 소수자라는 고정관념은 아시아인이 백인만큼 우등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아시아인은 흑인과 비교했을 때에 한해서만 우등하다는 의미였다. 미국 백인 사회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성공을 놓고 소수자가 근면하게 일하면 정부의 사회적 지원이 필요 없다는 증거라며 자기들 편리하게 이용했다. 고정관념을 받아들인 아시아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은 모범 소수자 지위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영리하고 성공적인 집단으로 간주된 것은 맞지만, 그와 동시에 로봇 같고, 무감정하고, 쉽게 교체될 수 있는 존재, 즉 기본적으로 여전히 인간 같지 않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시아인은 보이지 않는(invisible) 인종이어서, 언론매체, 정치, 오락물 등에서 찾아볼 수 없고 우리의 인종 정체성 때문에 직장에서 승진하거나 지도적 위치에도 오르지 못하고 간과되었다. - P14
친구 하나는 자기는 우울하면 "나무에서 떨어진 나무늘보"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적절한 표현이었다. 외출해서 사람들과 대면하기 전까지는 멍하고 무기력하다가, 나갔다 오면 처맞고 실신한 느낌이었다. - P21
예상대로 낭독회는 순조롭지 못했다. 청중에게 내 시를 낭독하는 일은 나의 한계를 난폭하게 깨닫는 것과 같다. 청중이 지닌 시인에 대한 관념과 내가 그 시인이라는 증거의 부실함 사이에 놓인 무한대의 간극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도저히 시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인은 존재감이 별로 없다. 아시아인은 미안스러운 공간을 차지한다. 우리는 진정한 소수자로 간주될만한 존재감조차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는다. 다양성 요건을 채울 만큼 인종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 P23
대중의 머릿속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은 모호한 연옥상태에 놓인다.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며, 흑인에게는 불신당하고 백인에게는 무시당하거나 아니면 흑인을 억압하는 일에 이용당한다. 우리는 서비스 분야의 일개미이며 기업계의 기관원이다. 우리는 리더가 되기에 적절한 "얼굴"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대량으로 숫자를 처리하며 기업의 바퀴가 잘굴러가도록 기름이나 치는 중간 관리자가 된다. 사람들은 우리의 콘텐츠를 문제 삼는다. 저들은 우리가 내적 자원이 없다고 여긴다. 나는 겉으로는 태연해 보이지만, 역부족이라는 기분에 함몰된 내 상태를 감추기 위해 물밑에서 미친 듯이 발을 저으며 언제나 과잉 보상을 한다. - P26
아무 생각 없는 백인에게 인종 문제를 참을성 있게 가르치기란 정말 고되고 피곤하다. 내가 가진 설득의 능력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야 한다. 인종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히 수다로 끝날 수가 없다. 그것은 존재론적이다. 그것은 남에게 내가 왜 존재하는지, 내가 왜 아픔을 느끼는지, 나의 현실이 그들의 현실과 왜 별개인지를 설명하는 일이다. 아니, 실상은 그보다도 훨씬 더 까다롭다. 왜냐하면 서구의 역사, 정치, 문학, 대중문화가 죄다 저들의 것이고, 그것들이 내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 P37
1917년 미국 정부는 이민 금지를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 적용했으며, 필리핀은 한때 미국의 식민지였는데도 필리핀 사람들의 이민마저 제한했다. 기본적으로 그런 이민 금지 조치는 전 세계적 규모의 인종 분리정책이었다. 1965년에 미국이 "하급 인종"을 다시 받아들이게된 것은 소련과 이념 경쟁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홍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난한 비서구권 국가에서 일렁이는 공산주의의 물결을 막아내려면 인종차별적인 짐 크로법의 이미지를 지우고 재부팅해 미국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증명해야했다. 해결책은 비백인의 미국 유입을 허락해 직접 실상을보도록 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모범 소수자 신화가 대중화되어 공산주의자들 - 그리고 흑인-을 견제하는 작업에 이용되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성공 신화를 퍼뜨려 자본주의를선전하고 흑인 민권 운동을 깎아내렸다. 우리 아시아인은 뭘 요구하지도 않고, 근면하고, 절대로 정부에 손을 내밀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고분고분하게 일만 열심히 하면 차별은 없다며, 저들은 우리를 안심시켰다. - P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