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적인 경험, 실상 쓰라린 경험을 통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있었다. 모든 연애는 처음엔 삶을 다채롭게 변화시켜 사랑스럽고 가뿐한 모험으로 만들어주지만, 점잖은 사람들, 특히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모스크바사람들에게는 아주 복잡한 문제로 커져버려 결국에는 곤혹스럽게 되어버린다는 것을. 그렇지만 새로운 매력적인 여자와 만날 때마다 이런 경험은 어쩐 일인지 기억에서 전부 사라지고, 그냥 삶을 즐기고 싶었다. 그러면 또 모든 일이 순탄하고 유쾌하게 여겨졌다. - P11

오레안다에서 그들은 교회 근처의 벤치에 앉아 말없이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아침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얄타가 보였고 산꼭대기에는 흰 구름이 걸려 있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고 매미들만 소리 내 울었다.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단조롭고 먹먹한 파도 소리만이 우리를 기다리는 평온과영면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이곳에 알타도 오레안다도 존재하지 않던 때에도 그렇게 아래쪽에서는 파도 소리가 울렸을 것이다. 지금도 그 파도 소리가 울리고 있고, 우리가 모두 사라진 후에도 그렇게 무심하고 먹먹하게 - P26

계속 울릴 것이다. 이런 항구성에, 우리들 각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 완전한 무관심 속에, 아마도 영원한 구원의 약속, 지상에서의 삶의 끊임없는 움직임과 완성을 향한 무한한 진보의 약속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여명을 받아 더 아름다워 보이는 젊은 여인과 나란히 앉은 구로프는 바다와 산, 구름, 넓은 하늘이 내다보이는 풍경에 흠뻑 빠져 있었다. 구로프는 우리가 존재의 고결한 목적과 인간적 존엄을 잊은 채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제외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실상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생각했다. - P28

기차는 빠르게 떠났고, 그 불빛도 곧 사라졌다. 잠시 후에는 기차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 달콤한 미망과 광기에서 빨리 벗어나라고 모든것이 일부러 꾸며진 듯했다. 플랫폼에 혼자 남겨진 채 멀리 어둠을 응시하던 구로프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것 같은 느낌으로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전선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인생에 또 한번의 무모한 장난 혹은 모험이 있었으며, 이제 이것도 다 지나가고 추억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심란하고 슬펐으며 가벼운 회한을 느꼈다. - P31

그런데 이제야, 머리도 세기 시작하는 지금에 와서야 난생처음으로 진짜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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