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바로 그 소박함과 예술적인 무질서 때문에 사랑했던 이 모든 생활이 지금은 그녀에게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느끼며 차갑게 말했다.
「우린 당분간 헤어져야 되겠어요. 안 그러면 권태에 지쳐서 대판 싸우게 될 것 같아요. 이제 신물이 나요. 난 오늘 가겠어요」 - P58

한번은 그녀가 랴보프스키에게 자기 남편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관용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어!」
이 문구가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래서 자신과 랴보프스키와의 로맨스를 알고 있는 화가들을 만날 때마다, 그녀는 남편 이야기를 하면서 손으로 힘찬 제스처를 지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관용으로 나를 억압하고 있어!」 - P65

뭐든 무거운 물건으로 화가의 머리통을 갈겨준 다음에 나가버리고 싶었지만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나 창피한 나머지 자신이 이제는 올가 이바노브나도, 여류 화가도 아닌 그저 작은 딱정벌레처럼 느껴졌다. - P69

술로 데워진 그의 마음은 유쾌했고, 따뜻했으며, 또한 슬프기도 했다……. 걸어가면서 그는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자주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가를 떠올리고 이런 만남 뒤에는 추억만이 남겨질 뿐임을 안타까워했다. 지평선 위에 두루미들이 가물거리고, 산들바람이 이들의 애원하는 듯한 혹은 기뻐하는 듯한 울음을 실어오기도 했지만 몇 분 뒤에는 아무리 애써 푸른 저편을 응시해도 점 하나 보이지 않고,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바로 이처럼 사람들의 얼굴이나 말도 삶 속에서 명멸하다가는 과거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다. - P91

모든 광경은 마치 베일에 덮인 듯 뿌연 연기 너머로 비쳐 보였고, 자연의 아름다움이 그 베일을 사이에 두고 즐겁게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더욱 희고 짙어진 안개는 낟가리들과 덤불 위로 여기저기 덮이거나 혹은 실타래처럼 길 위를 배회하면서 경치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땅바닥에 바짝 달라붙기도 했다. 연기 너머로 숲에 이르는 길과 그 양옆으로 파인 검은 도랑이 보였고 거기서 자라는 낮은 관목들은 안개 기둥의 방랑을 방해하고 있었다. 쪽문으로부터 반 베르스타쯤 떨어져 있는 쿠즈네초프네 숲이 검은빛을 띠어가고 있었다. - P96

다리에 이르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괴이한 냉담함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것이 외부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은 명백했다. 그는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것은 영리한 인간들이 종종 과시하는 그런 이성적인 냉담함도, 자아도취적인 바보의 냉담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영혼의 무기력, 아름다움을 깊이 지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일 뿐이며 또한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한 지저분한 싸움과 독신의 하숙방 생활, 그리고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얻어진 조로증에 다름 아닌 것이다.
다리를 지나서 그는 끌려가듯 천천히 숲으로 걸어갔다. 짙은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나는 곳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에만 잠겨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다는 욕망이 불같이 일었다. - P109

그것은 소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질투 때문인지, 아니면 이 소녀가 지금 내 것이 아니며 앞으로도 영영 내 것이 될 수 없는 타인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소녀의 흔치않은 아름다움이 지상의 다른 모든 존재들처럼 우연하고 불필요하고 무상한 것이라는 사실을 내가 막연히 느끼고있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나의 슬픔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관조할 때 인간의 마음속에서 불러일으켜지는 특별한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 P119

나는 그녀의 몸과 얼굴이 잠자코 있던 순간을 기억할 수 없다. 아름다움의 비밀과 마법은 바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작고 우아한 동작들, 그 미소, 그 표정, 우리들을 훑고있는 날쌘 시선 속에 있었던 것이다. 섬세하고 우아한 그 움직임들은 젊음과 신선함, 그리고 그녀의 웃음이며 목소리에서 울리는 영혼의 순수함과 결합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아이들이나 새들, 어린 사슴이나 나무들 속에서 발견하는 사랑스러운 연약함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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