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 안내원들은 키스를 판매하는 "키스껄"이라는 소문에 시달리는가 하면, 여자 운전수들은 키스를 하려 달려드는 승객을 피하려다 충돌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흥 공간이나 공적인 노동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행위들은 ‘변태성욕’이나 폭력으로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았다. 이것은 식민지 조선에서 ‘변태성욕’과 폭력의 경계가 특정한 성적 행위의 유무나 행위를 둘러싼 강제성의 여부가 아니라, 피해 대상이 ‘어떤 여성인가’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사회는 이른바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의 입술을 보호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카페 여급이나 여자 운전수처럼 노동하는 여성들은 이러한보호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피해자로 간주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 여성들에 대한 성적 접근은 정상적인 남성성의 범위 안에 있는 일상적인 ‘히야까시(괴롭힘)’의 형태로 사회적으로 승인되었다. - P98
하층계급 남성들의 ‘변태성욕’은 거의 서사나 맥락을 부여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들은 ‘원래 변태성욕자‘로 단정적으로 가정되는 경향이 있었다. 당대의 많은 이론들과 마찬가지로 성과학은 ‘문명화된 서구‘라는 가정 뿐만 아니라 중산계급이 특별한 성적 도덕성과 고결함을 갖는다는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이것은 대부분의 의사와 학자들이 백인 중산계급 출신으로, 자기가 속한 계급의 가치와 이해를 연구와 학설들에 반영했기 때문이었지만, 이러한 이유로 비유럽인뿐 아니라 자국의 하층계급 역시 전형적으로 비도덕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 당대의 의사들은 성적인 허용성과 관능이야말로 빈민과 노동계급의 특징이며, 중산층과 상류층만이 고결한 성도덕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P104
서구 성과학의 도착 범주들은 ‘변태성욕’이 식민지 조선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이식되지 않았다. 성적 정상/변태의 기준은 근대적 법을 통해 구축된 불법/합법의 경계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조선의 관습과 식민지라는 독특한 조건 안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조정되었다. 연령과 폭력을 둘러싼 모호한 기준들이 보여주듯이 이 경계는 매우 불투명했으며 대상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태성욕‘을 저지르는 범죄자의 전형은 보다 뚜렷한 형태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이 ‘선천적인 범죄자들’은 흔히 하층계급 남성성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상상되었다. 1930년대에 비등하는 ‘변태성욕‘ 성범죄에 대한 공포 속에서 식민지 최하층 남성들은 식민지 경제 체제의 희생자가 아니라 위험한 성적 타자로서 재규정되었다. - P110
크로스드레싱 실천과 관련해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적인 집단은 바로 ‘신여성‘이었다. 조선 최초의 "단발낭"으로 알려진 기생 출신의 신여성 강향란은 1922년 "남자양복에 캡 모자"를 쓴 차림으로 정측강습소에 등교해 남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음으로써 세간에 화제를 모았다. 한복에 갓을 쓰고 다니는 남성이 조선인, 화복和服을 입은 남성이 일본인으로 식별될 수 있다면, 양복, 그것도 남성용 양복을 입은 채 거리에 나타난 이 여성의 정체성은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녀에게 적합한 정체성은 바로 근대적 개인일 것이다. 강향란은 자신이 "단발"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실연으로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한 후, "남자에게 의지를 하거나 남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답한 바 있다. 전통적으로 긴 머리는 여성성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으며, 따라서 긴 머리를 자르는 행위는 단지와 함께 굳센 사랑의 맹세를 의미했다. 강향란은 이제 그 머리를 연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자름으로써 경제적·정서적으로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겠다는 결기를 표현했던 것이다. 강향란의 단발은 자신 역시 "남자와 똑같이 살아갈 당당한 사람"이며 "남자와 같이 살아 보겠다"는 일종의 근대적 ‘개인‘으로서의 자기선언이었던 셈이다. - P122
오히려 이 경계 자체를 심문하고 이에 깊은 불안을 드리우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여성이 과거 시험에 비견되곤 했던 당시의 치열한 입학시험에서 남성과 나란히 경쟁할 뿐 아니라, ‘남자양복’을 입고 같은 교실에서 같은 교과를 공부할 수 있다면 여성과 남성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어디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 P128
물론 현실에서 대부분의 인터섹스의 삶은 여전히 수술과는 무관한 채로 남아 있었다. 경제적 자원을 가지지 못한 하층계급인터섹스들에게 있어 수술처럼 상당한 비용을 요구하는 의학적 개입은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규범적인 여성/남성 몸 모델을 통해 분류될 수 없는 신체가 일종의 ‘불구자‘일 뿐만 아니라 치료할 수 있고 치료되어야만 한다는 사고는 분명 당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인터섹스 당사자들의 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두 개의 성별 정체성과 이에 상응하는 두 개의 신체, 그리고 두 개의 배타적인 삶의 방식만을 자연적이고 유일한 질서로서 새겨 넣는 과정이기도 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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