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요 앞에서 독서교실을 하는 선생님이에요. 어린이,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지만 저 가는 데까지라도 우산 같이 쓰면 어떨까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마주하고 보니 어린이 품에는 4학년 문제집들이 안겨 있었다. 아마 공부방에 다녀가는 길인 모양이었다. 어린이는 조금 놀란 듯했지만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말투도 움직임도 조심스러운 어린이였다. 나는 이 어린이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꾹 참았다. 어린이가 무서워하는 것도 싫고, 안심하는 것도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침묵이 최선이었다. 나는 어린이의 보폭을 모르니 천천히 걸었고, 어린이도 비슷한 생각인지 서두르지 않았다. 빗소리와 발소리만 들렸다. - P140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는 대상화된다. 어른이 마음대로 할수 있는 존재가 된다.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할 수는 없다. 어른이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오히려 사랑은 칼이 되어 어린이를 해치고 방패가 되어 어른을 합리화한다. 좋아해서 그러는 걸 가지고 내가 너무 야박하게 말하는것 같다면, ‘좋아해서 괴롭힌다‘는 변명이 얼마나 많은 폐단을 불러왔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큰 오해다. - P227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 준다. 반대로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야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힘이 생길 것 같아서다. 일의 결과가 생각만큼 좋지않을 때 괜찮다고,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나를 달랜다. 뭔가를 이루었을 때는 마음껏 축하하고 격려한다. 반성과 자책을 구분하려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돌보게 되었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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