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본에 끌려갔던 동포들이 우리의 말과 글, 그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교육하기 위해 세운 조선학교, 하지만 조선학교와 재일본조선인 학생들은 우리 사회에서 잊힌 존재였습니다. 남북대립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일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 학교인 조선학교는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들이 우리 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조선인‘이라는 것입니다. - P5
‘우리 학교’에 아들 딸을 보내는 어머니 치고 훌륭하지 않은 분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눈앞의 편안한 삶을 택하기보다 불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자기가 물러설 수 없는 자리를 지켜내는 일, 그러기 위해 저항하고 싸우는 일에 나서는 의지. 이것을 가진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는 고통스럽더라도 그 길을 간다 하지만 자식은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게 어미 마음이 아닐까? 내 살아 - P10
온 경험으로는 자식에게까지 고통스럽더라도 정의를 지키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못 보았다. 아니 지금 내 둘레를 살피면 참으로 가관이다. 제 자식 잘 되기 위해서 남의 자식 짓밟는 일은 예사이고 더욱이 자식이 정의로운 길로 가고자 해도 애비 어미가 죽을 듯이 막아나서기 때문이다. 정의와 인정은 사라지고 경쟁과 승리만이 인생의 목표가 된 세상. 이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의 현실이다. - P11
일본정부의 억압과 탄압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1966년부터 1972년까지 7번에 걸쳐 조선학교의 수업 중지, 학교의 폐쇄를 꾀 - P20
하였고, 2010년 이후에는 고교무상화에서 유일하게 조선학교만을 제외하는 노골적인 차별정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고교무상화‘는 수업료의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하는 조치로, 다른 재일외국인학교는 지원하면서 조선학교는 지원하지 않는 인권 침해적 교육차별정책입니다. - P21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어요. 《지세의 첫 자랑은 무엇이니?》
선생님 래일이면 이야기할래요 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예요. 나의 첫 자랑은 나를 사랑해주시는 귀중한 사람들이 많다는거예요 - P39
어머니와 한 놀이 종이쪽지로 질문하기 《만약 돈을 많이 가졌다면?》
어머니는 뭐라고 쓰셨을가? 예쁜 옷? 가족려행? 크고큰 우리 집? 슬금슬금 종이쪽지펼쳐봤어요.
(아!!)
그래, 비가 많이 내린 바자날에도 차거운 바닥에 앉아 판매하고계셨지 - P53
낡아진 교사 꽃학교 되라고 꽃밭꾸리기 열심히 하고계셨지
제일 좋은 모든것 학생들에게 언제나 우리들이 선참이였지 그런 어머니가 주신 대답
그것은 《학교에 다 준다》 종이쪽지 보고 또 보았어요.
《어머니!》
어머니의 넓고 따뜻한 품에 꼭 안기였어요. 나는 그런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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