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처음부터 상품이었던 것은 아니다. 주거 공간이 소유자에 의해 배타적으로 소유되고, 공간의 소유자와 실제 사용자가 분리되기까지 유구한 역사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울타리를 친다는 뜻의 인클로저 운동이다. 15세기 후반 양모 가격이 폭등하자, 영국의 지주들은 농지에서 농민들을 몰아내고 그 땅에 울타리를 쳐양을 키우기 시작했다. "전에는 사람이 양을 먹었지만 지금은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 근대적 의미의 토지 소유권이 확립되면서, 공동 경작지나 유휴지처럼 소유자가 누군지 모호한 땅을 사용하던 많은 이들이 쫓겨나거나 소유권자체를 부정당했고, 소수의 지주가 많은 땅을 갖게 되었다. 땅으로부터 자본을 축적하는 대지주와 가난한 소농민이라는 공간 소유자와 사용자의 대립 구도가 널리 퍼졌다. - P172

그러나 현재 비적정주거 거주자들이 직접조성한 공간이나 공동체 문화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980~1990년대를 통과하며 불법 점유 및 자력 건설로 생성된 무허가주택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반지하, 고시원, 쪽방은 임대 상품으로 등장했다. 그로부터 돈을 버는 사람들과 빈곤해지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가난한 거주자가 무상 토지를 개척하던 낭만적인 시기는 끝나고, 희망의 슬럼이 사라진 자리에 심화된주거 자본주의가 들어섰다. 비적정주거는 수요자에게 자신의 존엄을 잃게 하는 공간이자, 공급자에게 이윤을 가져다주는 투자 상품이다. - P175

누구나 집주인이 되어 돈을 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집을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평범한 욕망은 역설적으로 비적정주거가 생산되고 유지되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비적정성은 상대적으로 빈곤한 사람들까지도 비적정주거의 생산에 참여할 수 있게 하며 비적정성이 심화될수록 재개발, 재건축 이익에 대한 기대 또한 높아진다. 이처럼 비적정성 자체가 비적정 주거 재생산의 원동력으로 활용되는 양상은 심화된 주거 자본주의 체제의 단면을 보여 준다. - P182

이는 다시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갖게 한다. 첫 번째는 교정교열이라는 책 만드는 작업 중 한 과정을 언어간 번역만큼 중요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는 교정교열에 대한 물질적 대가나 사회적인인식이 당장 크게 바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과정이 언어 간 번역만큼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진다면 변화의 여지가 있다. 두 번째는 언어 내 번역이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사실 이는 번역의 기본적인 목적이다. 외국어를 내가 아는 언어로 번역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외국어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다. 그렇다면 언어 내 번역도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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