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태양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별일 뿐이다. 시속 6만 킬로미터로 움직이는 보이저 1호가 그다음으로 가까운 별인 센타우루스자리 프록시마까지 가려면 8만 년 가까이 걸릴 것이다. 그것도 우리 은하 내에 있는 한 별로 가는 여행일 뿐인데, 우리 은하에는 그 외에도 수천억 개의 별들이 중력으로 한데 모여 있다. 그런 우리 은하조차도 1조 개의 은하 중 하나에 불과하다. - P39

과학의 멋진 점 중 하나가 이것이다. 약간 더 나이 든 우주의 증거가 발견되었을 때, 그 정보를 은폐하려고 한 과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새 데이터가 사실로 확인되자마자, 온 과학계가 수정된 지식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언제까지나 혁명적인 태도, 변화에 대한 열린 태도가 과학의 핵심에 있기 때문에 과학이 이토록 효과적인 것이다. - P41

‘우주력’은 138.2억 년에 걸친 과학의 시간 이야기를 모두가 익숙한 체계인 지구의 1년으로 번역한 것이다. 시간은 달력의 맨 왼쪽 위 1월 1일의 대폭발에서 시작되고, 맨 오른쪽 아래 12월 31일 자정에서 끝난다. 이 척도에서 한 달은 10억 년이 좀 넘는다. 하루는 3786만년이다. 1시간은 158만 년 가까이 된다. 1분은 2만 6294년이다. 우주력의 1초는 438.2년으로, 갈릴레오가 처음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던 때부터 지금까지 흐른 시간보다 더 길다.
우주력의 의미는 바로 그 점에 있다. 시간이 시작된 뒤 첫 90억 년 동안 지구라는 행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주력이 3분의 2는 지난 늦여름인 8월31일이 되고서야 비로소 태양을 둘러싼 기체와 먼지 원반으로부터 우리 작은 행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 P41

인간이 자긍심을 느낄 만한 모든 성취는 - 인류가 배우고 만들어 온 모든 것들은 - 그 30억 개의 발판으로 이뤄진 사다리에서 딱 하나의 발판, 딱 하나의 유전자에서 딱 하나의 염기쌍이 변한 덕분이었다. 그것은 새겉질이 더커지고 주름이 더 많이 잡히도록 명령하는 돌연변이였다. 그 돌연변이는 우주선에 맞아서 생겼을 수도 있고, 한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복사될 때 생긴작은 오류 탓일 수도 있다. 어떻게 생겨났든, 그 돌연변이는 결국 우리 종을 바꿨고 그로써 지상의 다른 모든 생물 종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우주력의 12월31일 늦저녁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 P46

우주력으로 12월 31일 밤 11시 52분, 즉 지금으로부터 수십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가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호모 사피엔스들의 집이었다. - P48

하위헌스는 별들이 다른 태양들이고 그 곁에 다른 행성들과 위성들을거느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주에 무한히 많은 세계가 있다고 상상했고, 그중 생명이 사는 세계도 많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성서에는 그 다른 세계들과 생물들에 대한 언급이 한마디도 없을까? 신이 왜 그 내용을 빠뜨렸을까? 신은 그 점에서 분명했다. 인간 외에 다른 자녀가 있다는말은 일절 없었다. - P59

1920년 11월, 역시 빛에 대한 열정으로 넘치는 또 다른 남자가 스피노자의 철학이 미친 영향력을 기념해 박물관으로 보존된 헤이그의 초라한 작업실을 찾았다. 새로운 자연 법칙을 발견한 업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 과학자는 사람들로부터 종종 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믿는 신은 만물의 조화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입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 P63

수렵 채집인의 생활 양식은 자연과의 조화를 잃지 않으면서 50만 년에 걸쳐서 진화했다. 그때도 남획으로 인한 멸종은 있었지만, 우리 선조들이 지구적규모로 재앙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혹은 1만2000년 전에 발명된 농업은 우리를 바꿔 놓았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이후 ‘농업 후 스트레스 증후군(post-agricultural stress syndrome)‘이라고 부를만한 병을 계속 앓아 왔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자연과 또한 다른 인간과조화롭게 살아갈 전략을 진화시킬 시간이 부족했다. 농업 혁명, 그리고 우리가 식량 공급의 양과 질을 향상할 수 있게 된 일에서는 축복과 저주가 둘 다따랐고, 그 덕분에 인구가 폭증했으며, 역시 그 때문에 우리가 지금 직면한 위기도 생겨났다. - P67

아치 위에 새겨진 이름들은 오르도비스기 대멸종, 데본기 대멸종, 페름기 대멸종, 트라이아스기 대멸종, 백악기 대멸종인데, 그토록 많은 죽음을 일으켰던 격렬한 화학적, 지질학적, 천문학적 사건들을 추념한다. 이제 여섯 번째 복도에도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 이름은 좀 다르다. 거기에는 우리 이름이 붙어 있다. 인류세(Anthropocene)라고. Anthro는 그리스 어로 ‘인간‘을 뜻하는 단어에서 왔고, cene은 ‘최근’을 뜻하는 그리스 어 접미사다. 우리는 이제 인류가 일으킨 ‘인류세 대멸종’의 시대를 공식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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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1-24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 드류얀의 책 읽으시는 군요!! 저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만 읽었는데 넘 좋았어요. 이 책은 언제 기회가 되면 읽거나 아니면 햇살과함께 님의 밑줄로 만족할까 합니다요.^^;;

햇살과함께 2022-01-25 10:08   좋아요 0 | URL
주말에 한 챕터씩 읽으려고요~ 무거워서 들고 다니지는 못하겠고요. 저도 코스모스 너무 좋았어요 물론 다 이해는 못했지만^^ 코스모스 왜
인생책이라고 하는지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