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 엘킨Lauren Elkin은 "걷지 않는 문화가 권위적인 분위기를 만든다"라며 그것이 특히 "여자들에게 나쁘다"라고 썼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 홍한별 옮김, 반비 2020 - P125
도시 산보와 독서를 모두 즐기는 사람이라면 「도시를걷는 여자들] Flaneuse을 즐겁게 읽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거기 등장하는 거리와 공원과 책을 나도 걸었고 읽었다. 이런 책을 읽는 동안에 산보와 독서가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로런 엘킨이 읽은 헤밍웨이E. Hemingway의 파리 에세이를 나도 읽었고 그가 방문한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 서점을 나도 방문해 책들을 구경하다가 작은 사전을 사고 엽서를 받기도 했다. - P126
이 ‘없음‘은 소설을 쓰는 내게도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서 나는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내가 어떤 사회에서 자란 사람인지를 생각하곤 한다. 예컨대 공포나 경이나 더러움이나 죽음의 어조를 띠려고 검은색을 불러낸 내 문장을 피부가 검은 사람이 읽을 때,라는 상황을 그가 직접 내게 묻기 전까지 나는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한국사회에서 그처럼 피부가 검은 사람을 아예 만난 적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 상황과 맞닥뜨리고서야 나는 내가 아주 강력한 동질 사회에서 나고 자랐다는 걸 알았다. 한국인, 가족, 이웃, 여성. 실은 동질하지도 않은데 동질하다는 강한 암시와 압박이 있고 그 속에서는 동질성 자체는 물론이고 이질성이나 다양성을 생각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것을. - P129
조금이라도 인간이 덜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 이 행성에 이롭다는 것을 알수록 그렇다. - P130
매일 걷는 길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 이렇게 남의 산보에 욕심을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요즘 산보하는 도시엔 과거를 알 수 있는 흔적이랄 게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굴착기로 껍질을 벗기고 평평하게 다진 땅에 솟은 신도시, 현재만 있다. 나는 어딘가에 당도하면 전에 거기 머물던 사람들과 그들이 겪은 일이 늘 궁금한데 남은 게 거의 없다. 과거를 짐작할 수 있는 지표는 ‘들판에 연못이 있다’는 뜻을 가진 지명뿐이다. 이 호수가 그 연못의 흔적일까, 그런걸 생각하기도 하면서 호수공원 둘레를 따라 산보하는 중에 내가 보는 것은 신도시를 이룬 조경과 구획뿐이다. 누구도 살지 않은 땅인 것처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 P131
아무런 역사도 겪지 않은 땅인 것처럼, 이 부근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이런 도시에서는 과거뿐 아니고 현재도 지워진다. - P132
조금만 경계심이 풀려도 누군가를 즉시 비난할 준비가 되어 있다. - P141
원고를 말 그대로 눈뜨고 볼 수 없었다. 내 작업을 향한 혐오와 두려움 때문에. 매일 손가락만 만지며 지내다가 그때까지 쓴 내용을 단념하고 첫 문단부터 다시 썼다. 이 과정에서 내가 이 소설에 베였다는 걸 알았다. 타인을 상상한다는 것이 전에 없던 강도로 두려웠다. - P159
나는 가장 가까운이들의 나쁜 말과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를 향해 당신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자기가 살고자 하는 이를 거절하고, 멀어지라고, 어떤 형태로든 그를 돌볼 수는 있겠지만 그의 비참을 자기 삶으로 떠안지 말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 P162
어른이 된다는 건 무언가에 과정이 있다는 걸 알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늘어간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과 차마 용서를 청하지 못할 사람이 늘어가는 일이기도 한데 그건 내가 살아 있어서. 그리고 나는 그게 괜찮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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