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오 마그리스Claudio Magris의 [다뉴브] Dantbin, 이승수 옮김, 문학동네 2015에 혐오를 드러내는 잔인성이 특별히 잔인한 어느 개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 안에" 있다고 말하는 페이지가 있다. 그러므로 "외적 혹은 내적 법으로 적절히 막아내지 못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그 순간 약자를 찾아 난폭성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 P18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내게 특히 좋았던 부분은 마릴라가 내면의 혼란을 드러낸 순간들이었다. 앤은 과거에 마릴라가 가져보지 못한 질문과 표현해보지 못한 분노로 마릴라와 충돌하곤 하는데 마릴라는 그때마다 당혹스럽게 자신의 과거를 돌이킨다. 그가 자기도 모르게 앤에게 날카로운 태도를 보이는 몇몇 순간들은 거의 질투로도 보였는데, 나는 그런 순간들이 좋았다. 마릴라가 마냥 완성된 어른이 아니라서 좋았고 그에게도 욕망과 원망이 있었다는걸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 마릴라에게 그런 순간을 마련해준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고마웠다. - P46
책 정리와 재정렬은 누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시간과 품을 들일 마음을 먹고 내가 조심해서 해야 하는 일인데 그 마음을 먹기가 어려워 일년이 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정리하기가 비교적 간단한 세계문학 전집류를 꽂은 선반들은 그럭저럭 정돈되었지만 판형이 다양하고 전집이 드문 인문사회계열 책꽂이들의 사정이 아주 나빠서, 스테판 에셀 Stephane Hessel의 『분노하라] 돌베개 2011를 잃어버렸다가 ‘필립 볼의 형태학 3부작‘ 사이언스북스 2014과 『소비의 역사』 설혜심 지음, 휴머니스트 2017 『인정투쟁]악셀 호네트 지음, 사월의책 2011 「영속패전론]시라이 사토시 지음, 이숲 2017 『바나나] 댄 피펠 지음, 이마고 2008 『심연으로부터] 오스카 와일드 지음, 문학동네 2015가꽂힌 선반에서 찾아냈다. 오스카 와일드가 왜 여기 있지, 하고 멍하니 생각하다가 슬슬 책꽂이 앞에서 물러났다. 책꽂이에 다가갈 일이 있을 때마다 이런 식이었다. 최근에 산책들만 빈 선반에 가지런히 꽂아가며 나머지 선반들은 나중에, 하고 미루다 오늘이 되었다. 책을 꽂을 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나는 초조하다. - P81
다시 읽고 싶은 문장을 만나면 진한 심 연필로 책에 망설임 없이 동그라미를 사악, 그리면서 나는 전에 이걸 참을 수 없었지, 하고 생각한다. 왼쪽 정렬도 참을 수 없었지. 그러니까 뭐든 익숙해지기 나름일까?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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