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 이상의 하루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하루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키나와 인들은 일본인이라고 할 수도 없고 일본인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던데. 그녀가 애매하게 뇌까렸다. 그때 하루오가 던진 농담은 이런 것이었다.
말하자면, 절반 이상의 하루오는 어딘지 다른 하루오이다 - 라고. - P66

결혼 후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나는 자꾸 밖으로 돌았고, 아내는 그런 나를 견디지 못했다. 절반 이상의 나는 어디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건 아마도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P72

보통의 경우 일상은 주체가 고정된 자리에서 세계와 맺는 관계들로 주조되는 데 비해, 여행은 일상을 타자화한 채 낯선 자리에서 편입되는 새로움을 통해 이루어진다. 일상의 시간이 주체만의 한정된 경험으로 어떤 세계를 일군다면 여행의 시간은 오랜 기간 축적되어온 주체 중심의 세계를 잠시 소거함으로써 인식의 자리를 넓힌다. 즉 여행은 차이‘의 실감을 통해 삶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 P89

그러니까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내일 죽는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죽기 전까지 매 순간 모든 생각 모든 행동이 부질없어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직 살아 있는데도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 그게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다. - P1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