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뭐든지 절반씩’, ‘내 새끼는 네 새끼다.‘라는 모토로 육아와 가사는 남편과 철저히 분담해오고 있었지만, 하필 승진 시기가 임박해 그도 매일 야근이었다. 집안일도 육아도 아이의 유치원 대소사를 챙기는 것도 전부 나 혼자의 몫이 됐다.(결혼과 출산을 생각하는 분들은 이 부분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당신의 배우자가 피치 못하게 조력을 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 P151

"알코올중독자 중에는 완벽주의자가 많죠."
나의 첫 정신과 진료 날 의사가 했던 말이다. 자기 인생을 진창으로 던져버리는 알코올중독자가 완벽주의자라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같지만 나 자신이 직접 경험해봤기에 어떤 의미인지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 그 누구도 자기가 바라는 이상형의 자기 자신이 될 수는 없다. 부족한 나를 용서하고 추스르며 어느 정도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들은 까탈을 부린다. 자기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며 불안과 긴장에 시달린다. 멍청하게도 자기 손으로 자기 목을 옥죄는 꼴이다. - P154

알코올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멍청하게도 귀한 시간을 술에 타서 하염없이 흘려 버리는 한심한 족속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 속 편해 보이는 그들의 속마음을 까뒤집어 보면 미세하게 누적된 실패와 좌절된 열망이 얽히고설켜 내면에서 몇 번이나 폭발한 끝에 폐허가 되고 만 풍경이 보일 것이다. - P159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인 앨릭스 코브가 쓴 『우울할 땐 뇌과학』에는 감정과 인식은 각자 다른 뇌 영역이 매개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정 상황에서 자기 자신의 반응을 ‘인식‘하면 계획과 실행 등 이성적인 활동을 주관하는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어 뇌에서 감정을 주관하는 편도체 부위를 진정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즉 스스로를 이성적으로 파악함으로써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언이 신경생물학적 통찰의 의미도 담고 있었던 모양이다. - P171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불행하다."라는 그 유명한 문장처럼, 술꾼 기질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대물림된다. 성향, 기질, 부모와의 관계 등 복잡미묘한 요소들이 뒤섞여 저마다의 독특한 유전의 배경이 완성된다. 그러니 중독의 기원을 찾으려면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평생의 기억을 뒤적거려야 한다. - P193

내 중독이 (프로이트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남근선망에서 비롯됐다는 발상은 다소 터무니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장 바우어라는 분석심리학자가 쓴 『알코올중독과 여성』이라는 책에서 이와 비슷한 분석이 언급된 것을 발견했다. 융 정신분석학의 관점으로 여성 중독자를 다룬, 다소 특이한 내용의 책이다. 바우어는 우리 문화에서 남성성의 가치가 너무 높게 평가되기 때문에 완벽주의적인 여성들이 남성적인 속성을 취하려다 술에 빠지곤 한다고 분석한다. "여성 알코올중독자들은 특히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아폴로적 기준을 따르는 완벽주의 아니무스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칼 융의 이론에서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 속의 남성적 요소를 뜻하고 아폴로는 궁극의 남성성의 상징이다. - P196

문득 카르마와 다르마에 대해 떠올렸다. 거스를 수 없는 숙명, 카르마가 나를 중독의 길로 인도했다 하더라도 다르마, 즉 내 선택과 의지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에 따라 삶을 다른 방향으로도 이끌 수 있다는 거야말로 내 희망이다. - P197

뇌신경학자 마이클 쿠하가 쓴 『중독에 빠진 뇌』에 따르면 뇌의 정상상태는 시소가 수평을 이룬 모습과 같은데, 약물이나 술에 중독되어 뇌의 화학적 신호가 변화하면 시소 한쪽이 아래로 기울어진 상태가 된다. 그러면 우리 뇌는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고 반대쪽을 눌러 평형을 맞추려한다.
그런데 중독자가 술 마시는 걸 멈추면 반대 방향으로 균형을 잡으려던 뇌의 노력들만 남아 시소의 다른 한쪽만 눌러진 상태가 된다. 즉 술이나 약물 복용을 멈추면 그걸 복용했을 때와 반대로 불쾌한 느낌을 받게 되는 거다. 이게 바로 금단증상이다. - P209

페미니즘 서적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인간 ‘디폴트 값‘이 남성으로 설정된 사회에서 여성이 배제되는 현상을 다룬다. - P237

"남성의 음주 원인은 내적 요인 이외에도 사회적 요인의 비중이 컸고, 여성은 반대로 개인의 우울이나 스트레스와 같은 내적 요인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는 기존의 연구들과 유사한 결과로도 해석해볼 수도 있다." 즉 남성은 친교 모임 등 사회적 활동의 일환으로 마시지만 여성은 우울이나 스트레스를 감소하기 위해 마신다는 거다. - P249

남자가 술을 마시면 주변 사람들이 위험해지지만 여자가 마시면 그 자신이 위기에 처한다. - P2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