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노먼을 시대의 양심이니 유대인의 마지막 희망이니 하는 수식어로 포장하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어요. 그런 거창한 수식어 뒤에 숨어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정의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건, 뭐랄까, 나에겐 천진한 기만 같아 보였죠. 알려 했다면 알았을 것들을 모른 척해놓고 나중에야 자신은 몰랐으므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 P57

그러므로 단순히 조해진의 소설이 디아스포라의 형상들에 근접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의 서술적 윤리는 타자의 절대적 외부성과 그것에 접근해 들어가는 주체의 시선과 서술이 가지는 권위 사이에서 끊임없이 망설이며 서성인다. 연민이나 동정을 빌미로타자의 세계를 함부로 두드리고 열어보며, 그 어두운 방안에 불을 밝힐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존재한단 말인가? - P72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나는 부지런히 메일을 썼다. 그동안 연락하지 못한 사람들, 사과하고 싶은 사람들이 제법 많아 편지를 다 썼을 때는 밤이 돼 있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답장은 어디서도 오지 않았다. 기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기다리다보니 그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도 같았다. - P90

나는 쿤의 팔을 잡아뜯으며 간신히 책을 펼쳤다. 쿤을 영원히 없애는 법 : 거울을 볼 것. 책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 P101

이제, 무엇이든 되고 싶은 것이 되어봐.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물음표가 내리누르는 것 같았고, 텅 빈 객석이 나를 적대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랬다. 그게 내가 되고 싶은 것이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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