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에서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취약점이 문제를 끝까지 밀어붙이면서 다루지 않고 중간에 덮어 버린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자살로 너무나 손쉽게 마무리가 되고 있는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다. 유럽 소설들에도 그런 작품들이 여럿 있다. 어떤 문제를 중편 규모로 다루는 방식과 장편으로 다루는 방식이 있는데, 장편으로 다루려면 일단 전지적 시점을 취해야 한다. 1인칭 시점으로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장편 규모로 확장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한국작가들이 전지적시점의 작품을 잘 못 쓰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까지 갖게 된다. - P157

강석경은 이화여대 조소과 출신인데, 이대 출신이라는 것과 미대출신이라는 것, 두 가지가 다 의미가 있다. 뭘 쓸 것인지, 어떻게 쓸것인지가 대충 가늠이 된다. 강석경은 토마스 만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토마스 만은 시민성과 예술성의 대립, 시민과 예술가의 대립이라는 주제를 주로 다뤘다. 《토니오 크뢰거》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시민과 예술가라는 주제를 다루려는 모든 작가들은 토마스 만을 표준으로 삼는다. 시민과 예술가의 긴장관계에서 균형을 유지하면 좋은작품이 나온다. 《숲속의 방>도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 P159

그런 시기를 배경으로 여성적 주체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파고든다. 《나목》에서 예술가성을 상징하는 박수근은, 박완서가 시민성으로 안착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기도 하다. 그 방향으로 넘어가려면, 자기 안에 있는 예술적 자아를 포기하거나 부정해야 한다. 예술가성을 계속 품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성적 주체가 탄생하는 과정이고, 정신분석에서 $로 표시하는 거세된 주체의 공식이다. 이런 거세 과정을 통해서 주체가 된다. - P161

가고 싶으면 가면 된다는, 불가능이 없는 조건에서는 소설이 나오지 않는다. 시는 나올 수가 있지만, 소설은 원리상 현실의 하중이 없으면 나오지 않는다. 현실세계의 압력이 있고 거기에 맞서서 투쟁하는 과정이 바로 소설적 서사이기 때문이다. - P171

세계 인구가 70억 명이라면 나의 가치는 고작 70억 분의 1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나는 유일하다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인격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은 이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70억 각자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타인에 대한 배려도 가능하다. 그런데 소양은 그런 의식까지는 가지 못한다. ‘섬‘이라는 것은 자기애적 만족에서 그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단계에서 빠져나와야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남녀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학습했던 경험과 막상 일상에서 부딪히는 현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공지영의 세대는 그러한 충돌을 경험한 첫 세 대다. 그것을 작품화했다는 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시대사적 의의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도 시대적 지표가 되는 중요한 시집이다. 문학적으로 중요하다기보다 정확하게 이 시대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후일담 시집‘이다. 달리 말해 최영미의 시는 공지영의 시 버전이다. - P197

공지영은 작품 안에서 남편들의 이중성을 이야기하지만, 실은 어머니의 이중성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딸들에게는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아들들에게는 엄마 같은 여자를 만나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도기로서 1990년대가 내포하는 문제이다. 이 세대는 이러한 변화를 몸으로 겪은 첫 세대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것은 그 이전 세대도 겪은 것을 똑같이 반복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어머니 세대만 하더라도, 어머니 세대의 삶이 할머니 세대와 비슷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1980년대를 통과하면서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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