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린은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직·간접적으로 갖게 된 문제의식일 텐데, 1960년대 초반에 "여자는 전체로 보아서 아직도 하인의 신분에 있으며 "그 결과 여성은 자기로서 살려고 하지 않고 남성으로부터 이렇다고 정해진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를 선택하게 된다"고 쓰고 있다. - P92
요즘은 드물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이 땅에 있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 전혜린 문학이다. 다만 전혜린 문학은 이런 강한 면모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정서적으로 취약한 부분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표시되어야 하는 어떤 자리라고 생각한다. 한국문학이 결여하고 있는 부분을 온전하게 결여의 형태로 보여주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 P96
특이한 것은 독자도 여기에 반응했다는 점이다. 이런 과감한 생략에 공감한 것이다. 이 두 시대를 부담스러워하는 대중적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괄호에 넣고자 하는, 그래서 없어도 되는 것으로 날려 버리는 것이 바로 1990년대적인 현상의 핵심이다. 1990년대 독자들의 무의식이 작가와 공모한 것이다. 1970년대는 박정희 정권으로 1972년부터 1979년 박정희가 암살될 때까지 유신체제 하에 있었다. 이어서 1980년에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 서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1987년까지 뜨거운 시대를 보냈다. 이것이 왜 아무 의미가 없는가. 이 시대가 주인공의 성장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 것처럼 처리되고 있지만, 이것은 사실적이지 않다. 그저 편의적으로 그렇게 보고 싶어 한 것뿐인데, 그 점이 독자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 P222
1990년대에 문학의 대표적인 화두 가운데 하나가 ‘욕망‘ 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1980년대 문학에서는 욕망이라는 말이 거의 나오지도 않고, 따라서 키워드도 될 수 없었다. 1990년대 중반쯤에 프로이트 전집이 번역되어 나온 것도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있다. 집단이나 민족, 사회주의 같은 거창한 이념이 있던 자리를 개인주의가 대신한다. 그래서 개인의 재발견이나 욕망의 재평가 등이 이론적인 차원에서 주목받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 조응해서 문학 쪽에서는 문학동네 같은 출판사가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 이 출판사의 간판작품으로 떠오른다. - P224
정확히 똑같은 내용이 러시아작가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1840년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에도 나온다. 남자 주인공이 "내 안에 두 명의 나가 있다. 보여지는 나가 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가 있다" 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불행한 의식을 갖게 한다. 이것이 근대적 개인이다. 러시아문학에서 처음 탄생한 근대적 개인이 이 소설을 통해서였다. 프랑스문학에서는 그보다 조금 앞서 그런 주인공이 등장한다. 스탕달의 1830년 작품 《적과 흑》에 나오는 쥘리앵 소렐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행동하고 있는데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나‘가 있다. 이것이 근대적 주인공의 기본형이다. - P235
또한 1970~1980년대에 괄호를 치는 기본 전략을 통해, 1980년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덮어 버리는 소설이다. 하지만 덮어 버린다고 덮이는 것이 아니다. 결국 다시 삐져나오게 된다. 우리가 해결하거나 관통해 가야 하는 시대적 과제로 계속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1960년대 후반의 불안과 1990년대의 환멸을 겹쳐놓으면서 성장 불가능성을 현시하지만, 이것이 면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성장 불가능한 시대를 산 것이 아니라 책임을 떠안지 않으려고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243
<엄마를 부탁해》가 출간된 2008년에는 미국발 국제금융위기가 한국에도 여파를 미쳤다. 그런 상황이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독자들의 무의식을 자극하게 된다.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철저하게사회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문학적인 성취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저주받은 걸작이 생겨나기도 한다. 2000년대 이후 최대의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이 작품을 판단할 때의 참고사항이긴 하지만 오히려 작품 이해에 장애가 되는 면이기도 하다. 반면에 그런 사회적 배경을 제쳐 놓고 이 작품의 의미를 제대로 짚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 P254
한국문학에서 근대 사회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불만이다. 여성작가들의 경우 대부분 그렇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갖는 발생사적인 의의는 근대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데 있다. 그것이 근대소설의 본질이다. 한국에서는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기는 해도 근대와 정면 대결하는 작품이 희소하다. 그렇게 근대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경향을 ‘신파‘라고 하는데, 그 원조는 일본이다. 일본에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나오는 가정소설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 P256
쿤데라도 이야기했듯, 소설의 미덕은 인생의 본질에 대해, 실존의 비밀에 대해 뭔가 더 알게 해주는 것이다. 이 작품이 무엇을 더 알게 해주는가. 이미 아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더 알게 해주는 것은 없어 보인다. 엄마가 이런 존재라는 것은 이 소설을 읽기 전에도 다들 알고 있다. 그저 이 소설을 통해서 한 번 더 확인할뿐이다. 작가가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는 엄마의 비밀이라는 것도 싱겁다. 쿤데라에 따르면 이런 소설은 부도덕하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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