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문장들~!

그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분가루처럼 엷게 떨어져내리는 햇빛뿐이었다. 내가 들은 것은 환청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입안쪽의 살처럼 따뜻하고 축축한 느낌이 내 몸을 둘러싸고 있음을, 내 몸 가득 따뜻한 서러움이 차올라 해면처럼 부드러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떠돌던 고추잠자리가 잠깐 물에 스치듯 꽁지를 담갔다 뺀 순간이었을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햇빛이 사위었다는 것뿐. - P50

인생이란…….
나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뒤를 이을 어떤 적절한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복잡하고 분명치 않은 색채로 뒤범벅된 혼란에 가득 찬 어제와 오늘과 수없이 다가올 내일들을 뭉뚱그릴 한마디의 말을 찾을 수 있을까. - P97

동네 뒤터에 천막을 친 서커스단에서 종일 떠들어대던 풍각쟁이, 만담가도 쉴 참인 저녁답이라 가끔 땅거미를 재우며 스쳐가는 바람 소리뿐, 사위는 조용했다. - P107

나는 다시금 소설책 읽기에 몰두했고, 퇴근 후면 그 무렵 발견한 조용한 찻집에서 한잔의 차를 시키고 상업학교 졸업, 경리 직원 2년 경력의 내 앞에 놓인 미래를 창밖의 풍경처럼 쓸쓸히 내다보며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위안이란 다만 비바람 치는 날 손안에 간직한 찻잔의 온기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찻잔이 싸늘히 식을 때까지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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