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김소윤이고자 하지 않는 이유, 그 이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 수많은 닉네임을 거치고 거치는 이유, 그렇게 나를 분절시키고 이름을 바꿔대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나 자신과 남들을 이해시켜줄 설명 말이다. 나는 그 누구도 원해서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다는 얘기를 속으로 주워섬겼다. - P21
그리고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커밍아웃‘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어서 더 두려웠다. 그것은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 상태인데, 더욱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보일까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했다. 정말 두려웠던 것은 무엇이 드러나는 것이었을까. - P23
그래서 유튜브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이 절대 섞지 말라고 당부하던 일과 생활은, 갈라진 적이 있기는 했냐는 듯 한 번 경계가 흐려지자 곧장 하나의 거대한 슬라임이 되어 엎치락뒤치락 제멋대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 P33
검열을 당한다는 것은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생각이라는 것은 대단히 생산적이거나 발전적인 무엇이 아니라, 나 자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 속의 장기와 세포 하나하나까지를 양말 까뒤집듯이 의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검열은 잔인하다. 검열하는 쪽은 간편하되 당하는 쪽에서는 정말로 내가 당당한 피해자인지를, 내 쪽에 정말로 한 점의 원인 제공도 없었는지를 지속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이것이 잔인함의 핵심이다. 검열은 저쪽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그걸 지속하는 것은 이쪽,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 P47
나는 그런 면에서 퀴어와 헤테로를 대립구도로 보지 않는다. 그냥 우리는 다 ‘퀴어‘라고, 실상은 헤테로가 퀴어의 하위범주라고 인지한다. 우리는 모두 개별적으로 이상한 변태들일 뿐이고, 그것은 헤테로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한 변태 헤테로들이 많은가. - P53
더불어 또 중요한 것, 자신이 좋아하는 특별한 광대를 계속 보기 위해서는 특별한 응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전달되었으면 한다. 나는 더 보여주고 싶고, 더 웃기고 싶고, 더 말하고 싶고, 더 생존하려 한다. 당신은 당당히 문화혜택비를 내고 그 모든 걸 정당하게 즐길 수 있다. - P59
얇고 길게 하면 됩니다. 저는 남들한테는 이반지하지만 여러 가지 직업을 거쳐왔고요. 학원 선생부터 시작해서 지금도 미술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고, 영어 번역도 하고, 모 복권사 홍보 제안도 쓰고 있고요.. 동사무소에서도 근무를 했었고…….…사회 전반의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원래 남들 잘되는 건 단순하고 심플하게 한결같이 잘되는 것 같고, 나는복잡하게 안 되는 것 같잖아요. 실은 그게 아닌데.
_<월간 이반지하> 2호 - P81
특히 한국 사회에서 퀴어 퍼포먼스를 하면서. 지금까지도 공간 하나만 빌리려 해도 거절 많이 받거든요. 많이 받았다고 해서 거절당하는 게 쉬운 건 아니에요. 누구나 그럴 것이고 나중에도 항상 어려울 것 같아요. - P98
뭐, 그렇게 대단해서 패배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예요. 거절이란 게,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대단한 이유로 행해지는 게 아니라 되게 흔하고 평범한 경험이니, 그걸 너무 한계라고 견고하게 느끼지 않길 바라요. 그리고 그 거절과 패배를 겪어내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결정타가 될지 모른다는 거?
어쨌든 지금 이 순간도 님한테는 중요한 삶이니까, 그 안에서 꼭 뭔가 맨날 먹는 커피든 디저트든, 조금이라도 기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되게 사소하고 별거 아니어도.
취업할 곳을 찾고 있는 이 기간도, 그냥 준비 기간만이 아니라 ‘삶’이 잖아요. 삶의 일부로서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니까 나한테 조금이라도 기쁨을 주면서 이시간을 보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어디론가는 가고 있을 거예요.
_<월간 이반지하> 10호 - P99
왜 자꾸 그 기억을 그리는 줄 아나요? 왜냐고 묻자 그는, 다룰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예요, 라고 말했다. - P133
저는 동네 커피숍을 아주 중시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가정의 갈등으로 인해서 제겐 커피숍이 항상 중요한 기관이었거든요. 왜냐하면 집에 오래 있을 수 없으니까.
사람들은 스타벅스 가면 된장녀라고 생각하겠죠?
전혀 아닙니다. 피해자입니다.
_<월간 이반지하> 4호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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