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내 이야기가 알려지고 나서, 누군가에게 실제로 이런 말을 들었다. 내가 그럴 줄 몰랐다고, 그런 일을 당할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맞을 것처럼 보이는 여자란 대체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그는, 내가 만났던 사람은, 만나는 여자를 때리며 죽여버리겠다고 속삭이던 이진섭은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일까. - P17
그가 나를 구겨진 옷더미처럼 대할 때마다 그 감정을 기억했다. 그는 나를 분명 사랑했다. 그는 단지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또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전처럼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는 조금 피곤한 건지도 모른다.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 탓에 조금 우울해진 걸지도 모른다. 내가 그를 외롭게 한 건 아닐까. 그러면 내 잘못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걸 헤아리지 못했으니, 먼저 알아채지 못했으니, 잘못한 것이다. 노력하자. 내가 그에게 잘한다면, 그가 나를 보고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한다면 우리는 처음처럼 행복해질 것이다. - P22
저항하지 않았으니까. 싫다고 안 했으니까. 하지만 계속 짓밟히고 있는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비참한 기분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용서를 했다. 그러면 마음이 나아졌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아니. 지저분하고 굴욕적인 그 상황을 내가 그나마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역겨운 상황에 들어온 것이 내 선택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면, 언젠가는 내 선택으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 P44
나는 이진섭에게 맞으면서도 맞지 않을 방법만 생각했다. 그의 비위를 맞추고, 기분을 좋게 해서 손찌검을 피할 방법을. 하지만 진짜 필요했던 건 내 목소리였다. 하지 마.
나를 때리지 마.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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