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에서의 지루함에 대하여
대하소설을 워낙 좋아해서 즐겨 읽는 편이다. 어떤 동기나 계기가 있었던 건 아
니고 그냥 읽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한 가지 요인으로 짐작되는 것은, 옛날에 공부할 때, 한 참 공부를 하다가 어느 순간에 능률도 오르지 않고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때 슬럼프 극복의 한 방법으로 그 기다란 장편 무협소설을 밤새 읽으며 컨디션을 조절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런 것들이 잠재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 여겨지
기도 하고,
그리고 또, 구태여 이유를 밝히라면, 이유야 많지. 우선은 재미있고, 그 재미가 오래 지속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겠지만 단 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은, 살 때는 두툼한 책이 보기에 기분도 좋고 마음이 뿌듯하지만 막상 읽으려면 그 두께가 부담스러워지는 경우가 있는데 대하소설은 그런 것을 전혀,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런 걸 보면 정말 대하소설을 좋아하기는 하는 것 같다.
대하소설이라 하면, 길이로만 보면, 통상 원고지 700매, 3권 이상의 소설을 말한다고 한다는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3백 페이지, 5권 이상이면 대하소설이라고 칭해도 크게 잘 못된 생각은 아닐 것 같다.(물론 요즘은 대하소설도 점점 상업화의 영향을 받아 활자를 키우고 페이지를 줄이고 하여 10권 이상으로 나오는 것이 보통인 추세지만 3권짜리로 노벨상을 받은 훌륭한 대하소설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는 대하소설도 읽으면서 지루함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읽은 책들이 나름대로 유명세를 탄 – 널리 알려진 고전 소설, 유명 작가의 소설,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던 소설 등 - 작품들인데도 말이다. 왜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지? 별 할 일 없는 사람이다 보니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해 본
다.
1. 축약본
대하소설의 축약본은 독자를 지루하게 한다. 독자가 원한 것도 아니고 원저자가 축약본을 따로 집필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역자가 출판사의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내놓은 듯한 경우이다. 역자가 여러 이유를 들고 있지만 원작을 훼손한 것이 분명한 것 같고 원저자의 의도가 제대로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독서의 시작부터 독자를 지루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원작을 읽어야할 필요성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2. 반복되는 사건의 진행
특히 전투 장면이 많은 소설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비슷한 상황의 전투가 비슷한 방법으로 특징 없이 반복되면 갈수록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발생하는 사건도 없이 긴 여정만 설명하는 경우, 산을 넘고 숲을 헤치며 강을 지나 덤불을 뚫고 등이 반복적으로 설명되면 그 부분은 책을 건너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책 속에서의 그런 자연환경들의 변화를 어떻게 상상 속에서 특징을 달리해 가면서 형상화할 수 있단 말인지?
3.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
상기 2항과 관련된 얘긴데, 반복되는 상황의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선지 억지 상황을 만들고 앞뒤가 맞지 않은 지나친 방법들을 등장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삼가야할 방법이다. 독자들은 그것이 억지로 끼워 맞춰졌다는 것을 다 알고 있고, 그런 것을 식상해 하기 때문이다.
4. 이야기의 전개가 처음의 주된 사건에서 점점 멀어져 갈 때
처음의 사건이, 진행이 계속되면서 가지를 치고 또 쳐서 처음의 사건과 서로의 관련성이 너무 희석되었거나 전혀 다른 사건이 되었을 때. 이런 부분들은 빼버려도 전혀 작품의 진행에 지장이 없다. 그런 부분들이 분량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 독자는 흥미를 잃고 지루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5. 지나치게 복잡한 사건의 전개
동 시대에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일정한 간격의 시간 순으로 번갈아 가면서 전개할 때. 이런 경우는 시작부터 너무 복잡하여 읽은 내용들이 머릿속에 들어오지를 않는데, 최소한 2-3권은 읽어야 작품의 흐름을 알 수 있게 되고 그것이 독자의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
6. 이념 편향적인 소설
소설 속에서는 전지전능한 작가가 무슨 짓을 못할까만, 등장인물들을 딱 양쪽으로 편 가르기를 해놓고 노골적으로 선과 악으로 대비시킨다. 우리편은 선, 선, 선. 상대편은 악, 악, 악. 그것도 정도가 있지, 내 눈에는 다 보인다. 지루함을 넘어 짜증스럽기조차 하다.ㅉㅉㅉ
뭐, 내가 느낀 대하소설의 지루함은 대충 이런 것들인데, 나의 생각만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내 생각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그것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번 해 본 이야기인데 세금 내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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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의 지루함에 대해 부분적인 견해를 밝혔지만, 일부 그런 경우가 있다는 것이고, 사실은, 대하소설을 즐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하소설은 전체적인 기승전결 속에서 또 각 권마다 아기자기한 기승전결이 들어있어서 이야기를 길고 재미있게 끌어가는 힘을 가진, 훌륭함을 간직한 문학의 한 장르이다.
물론, 대하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그 부피만 보고도 지루함을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되지만, 대하소설은, 그 분량과 구성에서, 사전 자료를 준비하고 집필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공감하면서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래서 나는 독서 전, 후에 반드시 그런 점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대하소설을 읽을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