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강바람


 윗니는, 발치 4개월 보름 만인 지난주에 상악동거상술로 임플란트를 심는 수술을 하였다. 수술은 잘 된 것 같은데, 아랫니와는 달리 수술 시간도 많이 걸렸고 붓기와 통증이 좀 더한 것 같았다. 이제는, 코 속에서 목구멍을 통해 나오던 핏덩이도 멈춘 것 같고 붓기가 빠지면서 입 주위로 나타났던 멍도 조금 엷어지는 것 같다.


 당분간 무리한 운동은 삼가라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집에만 있으니 갑갑하고 몸이 근질근질하다. 가벼운 산책이나 할까하고 집을 나서서 시민공원으로 가는 골목길로 접어드는데 웬 할머니 한 분이,

 “개똥아! 개똥아하면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허둥댄다.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나?’했는데 손자를 찾는단다.


 할머니 역시 바람이나 쐬려고 손자를 데리고 나왔는데 중간에 동네 사람을 만나 잠깐 얘기를 하다 돌아보니 그 사이에 손자가 사라지고 없다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하시며 급히 저쪽 골목으로 사라진다. ㅎㅎㅎ 그 녀석, 별명도 개똥이라니 꽤나 개구쟁이인 모양이다.


 「개똥이, 똥개. 참 정겨운 별명이다. 하 많은 세월을 질병과 전쟁과 천재지변을 겪어온 우리의 부모들과 그 이전의 선인(先人)들은 자식들이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고 이름에 복 복() 자와 목숨 수() 자를 많이 붙였다.


 그러고도 마음이 흡족하지 않거나, 이름에 복 자나 수 자가 없는 사람들은, 천한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탈 없이 오래 산다하여 별명을 돼지, 개똥이, 똥개」 등으로 붙여 온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도록 하였다.


 그렇게 하여 한 동네에서만 돼지, 개똥이, 똥개가 여러 명이 되기도 하였는데, 어릴 때야 뭐 스스럼없이 부르고 듣기가 정겹기까지 하지만 나이 들어가면 대놓고 별명을 부르기가 좀 거시기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한 동네에 살면서 그렇게 불러온 습관 때문에 그것을 고치기가 쉽지 않으면서, 본명조차 점점 잊어 간다는 것이 문제인데,


 어느 날, 손님과 함께 저녁을 먹고 2차로 술을 한 잔 걸친 다음 배웅을 하면서 합승 택시에 손님을 태우고 작별을 하는데 기사가 나를 부른단다. 고개를 돌려보

,

 ‘오잉!? 고향에서 같은 동네에 살던 국민학교 동창생, 똥개 아이가?’


 그런데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별명은 퍼뜩 생각이 나는데, 교류도 없이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었지만 순간, 무척 당황했다. 그렇다고 손님도 있는 자리에서 대놓고,


 “! 똥개야 오랜만이다.” 이럴 수도 없고,

 “, , , , 니 오랜만이네.” 얼버무리며,

 옛날 동창생의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한 채, 바쁜 시간 때문에, 기약도 하지 못하고 헤어졌는데, 돌아서면서 나는 똥개의 별명이 좀 더 멋진, 대감이라든가 시인이라든가, 솔로몬까지는 아니더라도 달팽이정도만 되었어도 남들 앞에서 별명 한 번 부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 달팽이 아이가, 손님 모시고 좀 빨리 가 도하고 ㅋㅋㅋ


 아이 때 어른들이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고 붙여준 별명 말고는 국민학교에 입학하고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별명들이 탄생하게 되는데 주로 이름이나 신체적 특징, 행동거지 등을 감안한 작명이 이루어진다.


 머리 크기나 모양을 빗대어 짱구꼭뒤라고 부르기도 하고 눈이 크다고 왕눈이, 뽈래기(볼락의 사투리), 몸이 야위었다고 갈비, 행동이 느린 아이를 거북이」 「굼뱅이등으로 명명하였는데, 대개가 썩 좋은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별명을 불리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한다하는 개구쟁이들이나 말썽꾸러기들은 꼭 걸맞은 별명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는 얌전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럴듯한 별명이 없었다. 기껏해야 몸이 말랐다고 갈비, 명태정도였는데 그것도 대중성이 없어서 몇몇이 잠깐 그렇게 불렀을 뿐 금방 사그라졌고, 인기 있어서 오랫동안 회자되거나 한 별명은 없었기에, 별명이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한 때는, ‘나도 남들처럼 좋은 별명이 있었으면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


 회사에 입사하여 처음 발령 받은 부서가 총무과였고 첫 보직이 일반서무였다. 회사의 업무가 좋고 나쁜 것이 어디 있겠냐만, 일반서무. 좋은 점은, 회사의 용도품 등을 구매 관리하기 때문에 다른 직원들이 모두 나에게 뭐 좀 달라’, ‘뭐 좀 해 달라라고 숙이고 아쉬운 소리를 할 때 끗발을 좀 잴 수 있다는 것이고,


 안 좋은 점은, 그 이외에 전부다. 남이 안하는 일, 하기 싫어하는 일이 모두 일반서무의 몫인데, 업체를 부를 시간이 없을 때, 책상서랍 안 잠기는 것, 캐비닛 안 열리는 것, 타자기 활자 떨어진 것 수리는 기본이고 행사의 준비와 뒷정리 및 하기식 방송에 사옥 청소 관리까지 타에 속하지 않는 일은 모두 일반서무의 몫이다.


 그런데도 시간이 흘러 슬슬 관록이 붙을 때 쯤, 연말 종무식이 있는 날이었다.


 10시쯤에 강당에서 시작한 종무식을 마치고 뒷정리를 한 다음 총무과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자체 송년회를 하는 것이 관례였다.(그때는 종무식이 끝나면 그 해의

일은 모두 마무리되는 거라 모두 퇴근을 하였다.)


 다른 직원들이 책상을 모으고 음식을 세팅하는 사이, 나는 총무과에만 방송이 되도록 방송시설의 ‘ON’, ‘OFF’ 스위치를 점검하고 마이크 점검을 시작했다.


 “! ! ! !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하면서 볼륨을 조절하는데 갑자기 마이크 든 김에 노래가 하고 싶었다. 잠시 후에는 우리끼리 노래도 한 곡씩 하

고 할 건데 먼저 좀 하면 어떠랴? 우리끼리만 듣는데.


 하지만 아쉬운 것은 반주가 없어서 생음악이라는 점이었다. 목청을 가다듬고 하나, 둘 셋, ,


 “낙동♩♬ 강바아라아아암이♪♫ 치마폭을 스치면∼♬하고

 <처녀 뱃사공>을 멋들어지게 뽑고 있는데, 우리과 책상 위의 전화벨들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지?’하고 전화를 받는데, 전화기 저편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목청 좋다.”

 “앵콜등등의 소리들이 들려온다. ? 무슨 일인가 하여 방송시설을 보니 맙소사! 전 사무실로 나가는 회선의 스위치가 꺼지지 않고 ‘ON’ 상태로 있다. 분명히 끈다고 생각했는데 꺼지지 않은 상태로 온 사무실로 내 노래가 흘러나간 것이

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종무식이 끝나고 대부분의 직원들은 퇴근을 하였지만 아직

도 잔무를 정리하고 있던 직원들은 모두 나의 생음악을 들은 터였다.


 ‘아이고, 챙피해라ㅋㅋㅋ


 이후로 내 별명이, 한 동안 낙동강 강바람이 되었다가 낙동강으로 줄여서 불리다가 사그라들었는데, 내가 옛날에 있었으면 하고 원했던 멋진 별명에 대한 바람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었을까?


 「낙동강 강바람, 괜찮은 별명 아닌가? 낙동강 오리알도 장마철에 홍수가 나 떠내려가더라도 깨어지지만 않으면 된다는데, ㅋㅋㅋ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보면서 혼자 실실 웃으며 집으로 오는 길에 할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손자를 찾아서 집에 간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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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09 17: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낭만적인 별명입니다. ㅎㅎ 어릴 적엔 보통 이름으로 별명 붙였던 기억이 나요 황씨면 황소 횡소개구리. 개똥이. 전 할머니가 우리 강세이. 라고 불헜는데. ㅎ

하길태 2021-08-09 21:07   좋아요 4 | URL
낭만적인 낙동강 강바람, ㅍㅎㅎㅎ 뭐 나쁘진 않네요.ㅎㅎ
우리 강세이는 엄청 사랑받은 느낌의 별명이네요.^^

바람돌이 2021-08-10 0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낙동강 강바람 굉장히 낭만적인 별명이예요. ㅎㅎ 그때는 조금 부끄러우셨겠다. ㅎㅎ

하길태 2021-08-10 07: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조금 쑥스러웠지요.^^

han22598 2021-08-18 0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툽에서...찾아봤어요. 낙동강 강바람~~~ 구성진 노래네요 ㅎㅎㅎ
앵콜 요청까지 있는거 보면 노래를 잘 부르셨나봐요. ^^

하길태 2021-08-18 11:3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일부러 찾아보셨군요.
한 때는 이 곡이 국민 애창곡이었습니다. 이후에 투 에이스(금과 은)가 약간 경쾌한 리듬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었죠.
젊었을 때는 노래를 꽤 잘 했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