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다


 매년, 사창립 기념일이 되면 본사에서 사장 공로상이 내려온다. 일정 기간 이상 근무자는 1등급 상을 받게 되는데, 수상자는 인센티브도 가급되며 승진 심사 시 가점이 부여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영예를 차치하고라도 현실적으로도 필요한 사람에게는 중요한 상이다.


 그런데 이 상은, 본사에서 지사별로 인원을 할당하고 지사는 또 예하 사업소별로 인원을 배정하여, 공적조서와 이전의 수상 이력 등을 검토하고 사업소 인사위원회를 거쳐 대상자를 결정한 다음 이를 본사에 상신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진짜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경우에는 간부는 이 상을 안 받는다. 직원들의 승진 가점에 꼭 필요하기도 하고 또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도 직원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거의 선례가 되어 있으며 또 간부들 대부분은 공로상 1등급이 하나쯤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사업소에서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간부가 상을 받겠다며 공적조서를 올려왔다. 옛날에 같은 부서에서 근무해서 내가 잘 아는 간부였는데, 주로 보안, 소방, 예비군, 민방위 관련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했고, 그런 업무들이 또 대외 기관의 상을 받을 기회들이 많았기 때문에 상이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해서, 그 분의 인사기록을 확인하니, 맙소사! 대통령상을 비롯해서 국무총리상, 장관상, 시장상, 사장상 등 온갖 상들을 다 수상하여 인사 기록의 상벌 란이 모자라 별지로 수상 내역을 덧붙여 놓을 정도로 많은 상을 받은 기록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어마어마한 수상 기록을 가진 분이, 간부들이 구태여 안 받아도 되는 상을 받고 싶어 하는지 몹시 궁금해서 그 사업소에 전화를 해서 알아보았다.


 그런데 그 대답이, 다른 상은 다 있는데 사창립일에 주는 사장 공로상이 없어서 구색을 맞추려고 신청을 했단다. 내일, 모레 퇴직을 할 사람이 하도 자기가 받겠다고 주장을 하니까 아무도 다른 말을 꺼내지도 못하였고, 그래서 그렇게 신청이 되었단다. 하이고, . 한숨이 나올밖에. 다른 사람들은 일생에 한 번 받을까 말까하는 그런 상들을 그렇게 많이 받았으면서도 최후의 순간에까지 욕심을 내다니.ㅉㅉㅉ


 결국 그 분의 공적조서는 사업소 인사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하여 수상에 실패했는데, 그렇게 되고 보니, 그 분 때문에 직원 한 사람이 상을 못 받게 되었고, 또 당해 연도에 포상 인원 배정을 받은 사업소는 다음 해에 포상에서 배제되는 원칙에 따라 그 사업소는 3년을 사경일 사업소장 상도 받지 못하는 사업소가 되고 말았었다.


 아무리 내가 먼저라지만 상황 파악은 좀 하고 살아야지, 같이 근무하던 직원들이나 후배들에게 부끄럽지도 않았는지, .


 어쩌다 보니 그 분과 또 다른 여러분의 합동 퇴임식에서 내가 사회를 보게 되었는데, 그 분의 수상 경력을 소개할 때는 시간 관계상, “대통령상 외에 다수의 상을 수상하였습니다.”로 간략하게 끝내야 했었다. 그런데도 그 사장상 1등급이 뭐

그리 필요가 있었던지......(또 한 번 ㅉㅉㅉ)


 상 얘기가 나온 김에 나의 경우를 보면, 나도 참 상복은 없었다. 하도 도와달라고 사정사정해서 오버타임 해 가며 힘들게 보고서 만들어 줬더니, 칭찬도 지들이 듣고 내려온 상도 지들이 타먹어 버리고, 입 싹 닦고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분명히 다음이 내 차례인데 인사이동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어 다시 후 순위로 밀리고. 하여, 막상 내가 상이 필요할 때에는 내부에서 주는 상은 아예 포기를 하고 외부에서 주는 상의 루트를 뚫어 수상을 하였는데, 그것도 그 방법을 간파한 다른 직원의 방해 공작으로 시도 첫 해에는 뺏기고 다음 해에서야 겨우 수상을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열심히 일한 결과로 포상이 내려오면 관련도 없는 인간들이 서로 먹겠다고 작당들을 하여 기어코 뺏어가지 않나, 하이에나 같은 인간들. 능력도 없는 것들이 남의 떡을 뺏어 먹는 데는 얼마나 영악하고 도가 텄던지. 남 눈치 보지 않고, 얼굴에 철판 깔고 지가 먼저라고 덤비는 인간들을 보면 가엾기도 하고, 가 양보를 해야지. ㅉㅉㅉ


 그래도 나는 뭐, 꼭 필요한 상에 교육우등상까지 있었으니까 더 욕심은 없어서 상이 내려오면 나는 유별나게 상을 받을 수 있는 일을 많이 하였고 그리고 상이 많이 내려왔다 - 무조건 직원들에게 모두 돌려주어서 그걸로 승진까지 한 직원이 있었으니 대신 만족을 하기는 했었다.


 그리고 어느 해에는, 인사철이 슬슬 다가오고 자리를 이동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동 신청을 한 다음 밀린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오랫동안 전임들이 손도 대지 못하고 묵혀왔던 업무 관련 내칙을 정비하고자 완벽한, 내가 보기에도 멋진계획을 수립하여 결재를 올렸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결재를 하지 않는다. 궁금해서 그 계획서 아직 다 안 봤냐고 물으니 상사란 인간이 책상 속에서 슬 꺼내 놓으며 여기 있단다. 엥∼! -한 느낌. 결재해 달라는 뜻인데 답변이 여기 있다는 무슨 시츄에이션? 그 이후로도 몇 번 독촉을 하였지만 그 인간은 내가 발령 나는 날까지 끝끝내 결재를 하지 않았다.


 나쁜 인간! 내가 조만간 발령이 날 것 같으니까 그때까지만 개기면 지 꺼가 된다 이거지? 나는 그 인간의 의도를 즉각 눈치 채고 언짢은 얼굴로 내 자리로 돌아와서 죄 없는 책상만 걷어찼다. 이제는 상을 뺏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실적 자체를 뺏겠다는 몰염치가 아닌가. ‘그래 인간아 잘 먹고 잘 살아라.’ 일 잘하는 내가 죄인이다.


 결국 나는 그 서류가 미결인 상태로 두고 사업소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얼마 후, 내가 다 해 놓았던 그 일이 지가 한 것으로 둔갑하여 사업소에 통보되었다. 역시 내가 먼저다. 남 줄 것 뭐 있어, 몰인정은 잠시고 가로챈 실적은 영원한 것인데.


 ㅎㅎㅎ 허탈하기는 했지만 그런 꼴을 하도 많이 봐 오다 보니 감흥도 없었다.

그 인간은 이후에도 요리조리 줄도 잘 타서 승진도 귀신같이 하더만. 그래도 나만 보며는 미안한 건 아는지, x도 모르면서 얼마나 아는 체를 하던지.ㅋㅋㅋ 야이, 인간아! 아무리 내가 먼저라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마라. 그 지은 죄를 언, 어떻게 다 갚을래?’


 그래도 오늘 같이 새벽에 잠이 깨어 온갖 잡생각이 다 들 때는 나는 기도한다. ‘! 신이여 이 같이 비열하고 능력 없는 인간들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들이 죄를 짓도록 원인을 제공한 저의 죄 또한 사하여 주시옵소서.’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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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7-27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길태님 가끔 살아온 이야기들 해주시면 너무 재밌어요. 그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하셨어야죠. ㅎㅎ

하길태 2021-07-27 06: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재미 있게 읽으셨다니 감사합니다.^^

행복한독서가 2022-01-15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이 글을 읽으니 세상만사가 다 비슷한 경험을 안겨주는 느낌입니다. 슬며시 동화되어서 재미있게 읽었고 그 느낌 알기에 화도 나고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