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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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권도 더는 올려둘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내 방의 침대 둘을 합쳐 그 위로 관 뚜껑처럼 닫집 형태의 선반을 짜 넣었고, 거기에 지난 삼십오 년 동안 찾아낸 2톤의 책을 쌓아두었다. 잠이 들면 끔찍한 악몽처럼 나를 짓눌러오는 책들이다..

 

 

요 며칠새, 이사를 위해 방에 있는 책짐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닥 커보이지 않는 우체국 4호박스에 책을 가득 넣으면 26-7kg이 족히 나간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역시 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전혀 틀리지 않다.. 물론 책장 서가의 주제별 분류에 맞춰 박스에 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일단 한 박스에 다 채워지는 경우가 드물고-대개 넘친다-, 또 4호박스 안에 여백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책의 크기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계산이 한층 복잡해진다..

연 2박 3일 동안 물론 중간에 밥을 먹기도 하고, 또 차를 마시기도 했지만, 풀타임으로 열심히 책짐을 싸다보니, 오늘 저녁 9시 반 기준으로 55개가 생겼다.. 앞으로도 어림잡아 10개 정도쯤이 남아 있는 듯하니, 65개.. 그러고보면 총무게가 2톤에 육박하고 있다..

 

보후밀씨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 정도 책짐을 싸고 있노라니 한숨과 동시에 왜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헤매고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노마드로 살아야 했건만, 정주민 행세를 하며 살았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고행수련을 하듯 책짐을 싼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알라딘 계정을 찾아보니 이 책은 2017년 2월에 구입한 책이다.. 책장에서 잠자고 있은지 11개월이 지났다.. 첫 2-3페이지를 읽다가 아.. 책중독자에 대한 책인가보다 하고 덮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금요일 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집으로 오는 길에 아직 박스 안에 들어가지 않은 책들 중에서 가장 얇은 책을 고르다가, 이 책이 손에 잡혔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다보니, 글귀 한 구절 한 구절이 예사롭지 않았다.. 어쩌면 주인공이 하고 있는 작업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과 상당히 유사한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폐지를 압축하듯, 끊임없이 책들을 박스 안으로 감싸는 이 무의미한 중노동의 피로와 좌절감이 이 책을 계속 읽게 하는 이유인지도..

 

아직, 2장을 읽고 있는 중.. 육체적 피로와 동병상련의 공감, 이 둘 중의 승자가 오늘 밤 읽을 책의 페이지 수를 결정할 듯 싶다..

다만 아직은 후자가 조금 앞서고 있을 뿐..

 

 

나는 삼십오 년째 폐지를 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대학 교육을 받았거나 적어도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을 받았어야 하리라. 최적의 조건은 신학 학위가 아닐까 싶지만. 내 직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나선과 원이 상응하고, 프로그레수스 아드 푸투룸('근원으로의 전진')과 레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미래로의 후퇴')이 뒤섞인다. 그 모두를 나는 강렬하게 체험한다.

안 돼, 넌 그럴 수 없어, 단 한 권의 책도 펼쳐볼 권리가 없어, 잔혹한 형리처럼 냉정해져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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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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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출현을 다루는 1부와 농업혁명의 허구를 다룬 2부는 탁월하다. 평이한 문체로 대서사를 풀어내는 탁월함에 한 표. 하지만 역사시대를 다루는 3부 이후의 서사는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며, 그래서 1, 2부에 비해 몰입도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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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국가 느가라 - 19세기 발리의 정치체제를 통해서 본 권력의 본질
클리퍼드 기어츠 지음, 김용진 옮김 / 눌민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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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다롭기로 소문난 책을 번역해낸 역자의 노고에 우선 경의를. 이제야 계속 오용되어온 극장국가라는 개념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하게 내적으로 검토하면서, 베버적 권력이론에 대한 인류학자 기어츠의 (당대 신선했던?) 비판을 다시금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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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국가 북한 -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권헌익.정병호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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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 권력의 세습이라는 정치적 난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북한 체제 측의 시각/노력에 대해 이해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는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베버, 기어츠에 대한 독해에 기초한 이론적 논의는 엉성하며, 북한을 ‘극장국가‘로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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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세계문학의 숲 23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태동 옮김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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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의 모던라이브러리 판 서문에서, V. 울프는 나는 삶과 죽음을, 정상과 광기를 보여주고 싶다.”고 쓴다. 이 소설은 광기와 죽음에 대한 연구, 온전한 정신과 광기에 휩쓸린 정신이 나란히 서서 보는 세계가 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몇 차례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던, 그리고 결혼 후 심각한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다가 회복기를 거쳤던 그녀가 만 2년의 시간을 쏟아 부으며 정성을 들였던, 그리고 당대의 영국 여성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세상으로의 출구였던 문학/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무엇을 꿈꾸었던것일까. 그녀는 무엇을 되찾으려 했던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하나의 방법은 이 작품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죽음이라는 집요저음basso ostinato을 떠올리면서, 사형집행인의 시계처럼 어김없이 ~~” 시간을 통보해주는 빅벤 종소리에 맞춰 댈러웨이 부인 셉티머스 그리고 다시 댈러웨이 부인으로 이어지는 1926월 중순의 어느 하루를 해체하고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쓰기로 하고, 일단,셉티머스의 죽음과 댈러웨이 부인의 교감/공감을 기록하고 있는 후반부의 문장 하나를 옮겨 적는다..

  

그 젊은 남자는 창문으로 몸을 던졌다고 했다. 땅이 위로 솟구치는 듯하더니, 그의 몸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멍들다가 결국 담장에 박힌 녹슨 못에 꿰뚫린다. 바닥에 떨어진 그의 머릿속이 쾅, , 쾅 울린다. 그러고 나서 의식이 까맣게 되며 숨이 멎는다. 그녀는 그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젊은 남자는 자기 몸을 던졌다. 우리는 계속 살아가겠지(그녀는 다시 손님들에게 돌아가야 했다. 방들은 여전히 붐볐고, 새로운 손님도 계속 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녀는 하루 종일 부어턴을, 피터를, 샐리를 생각했었다) 계속 늙어가겠지. 그녀에게도 지켜내고 싶어 하는 중심의 무언가가 있었지만, 그것은 쓸데없이 복잡한 일상 속에서, 잡담에 파묻히고 거짓말에 더렵혀지기도 하며 녹아 없어졌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 중심을 지켜냈다. 죽음은 그것을 지켜내려는 저항이었다. 죽음은 그 중심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소통의 시도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신비하고도 자꾸만 손에서 빠져나가는 삶의 중심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점점 더 그 중심에서 멀어져가, 거기에 접근하면서 느꼈던 황홀감도 잊어버린다. 그렇게 황폐해져가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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