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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디로 향하는가 - 헤이세이 30년의 기록
사토 마사루.가타야마 모리히데 지음, 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평점 :
주말.. 그동안 <현대 일본 사회>에 무관심했던 것을 반성하며..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일본의 나름 알려진 두 논객 사토 마사루, 가타야마 모리히데의 대담집인 <일본은 어디로 향하는가: 헤이세이 30년의 기록>과 미국의 국제문제연구 전문가인 브래드 글로서먼의 <피크 재팬: 마지막 정점을 찍은 일본> 이렇게 두 권이다.. 읽다보니 뭔가가 쓰고 싶어져서 오랜만에 100자가 넘는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성향상 그다지 대담집을 선호하지 않지만-꼭 그런 건 아니다.. 푸코나 부르디외와 같은 대가들의 대담은 가끔 원저보다 깔끔하고 명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참고한다-,
현대 일본 사회.. 특히 '헤이세이' 시기 일본 사회문화에 대한 좋은 책들을 찾아보기 어렵고, 또 무엇보다 주말에 몸이 아파 누워 있는데, 누워서도 볼 수 있는 책으로 적합하다는 생각으로 책을 들고 침대로 갔다..
가타야마 모리히데는 예전 <미완의 파시즘>이라는 책으로 한 번 접한 적 있는데.. 그 책 자체가 지극히 일본인의,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아시아-태평양 전쟁 사관의 한 변종에 입각해서 씌어진 책이었기 때문에,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냥 지나치게 편향되지는 않은, 나름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라는 느낌이었고, 그 면모는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한편 사토 마사루는, 예전 일본 서점의 신서 코너에서 저자의 책들이 진열되어 있어 흘깃 본 적이 있었는데, 그 풍채나 느낌이 전형적인 일본의 우익 인사같아서 굳이 이런 책들까지 읽어야 하나.. 하며 지나쳤던 저자였다.. 이번에 이 대담집을 읽고 관심이 생겨 검색해봤더니 한국에 의외로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있는 걸 보고 다소 놀랐다.. <국가의 함정: 외무성의 라스푸틴이라 불리며>이라는 책이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데, 이 책은 미번역이지만, 이 책을 토대로 한 사토 마사루*이토 준지의 <우국의 라스푸틴>이 번역된 적이 있었다(일부 품절이다).
풍채나 느낌이 과거 사이고 다카모리의 그것과 비슷해서.. 사토가 약간 의식하며 따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사이고 다카모리야말로 일본 우익의 정신적 아버지니까) 동시대를 읽어내는 '동물적' 감각은 책상물림, 즉 학자이자 교수인 가타야마보다 사토 쪽이 몇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그 감각은 러시아 대사관, 외무성 국제 정보국 분석 1과 근무, 그리고 국내 정치에도 깊숙이 개입되어 그 '덕분'에 꽤 긴(512일) 수감생활도 했던 '독특한' 이력에서 만들어진 것이리라.
헤이세이 30년이라는 꽤 긴 시간을 두 저자가 훑어내듯이 대담하는 기획이니만큼 깊이 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고, 다만 1989-2019년.. 즉 동시대의 일본 사회를 사적이지만, 나름 깔끔하게 정리한 연표(역시 연표를 만들어내는 데는 일본인들을 따라갈 수 없다..)와 그 연표에 기대어 30년의 역사를 거칠게 리뷰해나가는 대담은 꽤나 신선했다.. 가타야마가 개략적으로 리뷰를 하면, 사토가 자신의 견해를 푹 찔러넣고, 거기에 가타야마가 자신의 배경지식으로 부연하는 만담식 구성이 나쁘지 않았고, 가끔씩 지나치다는 느낌도 받지만, 그래도 40-50대 아저씨들이 여전히 이정도로 발랄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적어도 알쓸신잡, 꼬꼬무 같은 정도의 프로그램밖에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국사회보다는 지성적으로 몇 수 위인 것은 분명한 사실.. 무엇보다 당대에 유행했던 영화나 책들 같은 레퍼런스를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아마 이 책에서 그나마 건질 수 있는 가장 중심적인 메시지는 헤이세이기에 접어들면서, 정치 문화에서 모호한 존재나 중간단체가 배제되고, 법에 구속당하지 않는 관례의 영역이나 관습의 세계가 인정되지 않는, 그래서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칫 투명한 것처럼 보이나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는 것일텐데..
하지만 저자들의 그 말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과연 그 이전의 일본 사회에 그런 모호한 존재나 중간단체가 존재했던 것인지, 그리고 법에 구속당하지 않는 관례나 관습의 영역이 진정 올바른(just)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왠지 다나카 가쿠에이나 나카소네 야스히로로 상징되는, 자민당의 예전 좋았던 시절, 부패해지만, 적당히 결단력도 있는 보스형 정치가들이 군림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같은 느낌이 들어서-,
하지만 이런 관례나 관습의 영역이 사라지고 법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싸움의 무대로서 광장을 빼앗기고 법정만이 남은, 모든 싸움에서 법의 언어에만 의존하는, 그리고 그 결과 '약자의 무기'(weapons of the weak)마저 사라져버린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감각'은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동시대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기에, 그들의 메시지는 어떤 울림을 준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드는 계속되는 소송들이 잘 보여주듯(굳이 카프카의 <소송>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법은, 소송은 결코 약자에게 유리한 싸움의 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기에 누워 읽다가, 도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책상에 앉아 인터넷으로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영화, 소설들을 검색도 해가면서 나름 흥미롭게 읽었다.. 책이 다루는 시기가 예전 일본에 살았던 시기와 일부 겹치기도 해서 옛날 생각들을 떠올리며 몽상에 잠기기도 했는데.. 그러다보니 책 읽는데 이틀이 꼬박 걸렸다.
책을 덮고 나서 1987년 이후의 한국사회를 이런 방식으로 읽어보는 기획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뜬금 없는' 생각도 해봤는데.. -강만길, 서중석, 혹은 (계통은 조금 다르지만) 강준만과 같은 할아버지들의 지나치게 '올바른' 현대사 읽기 방식이 아니라-, 장르를 넘나드는 이런 대담을 소화해낼 수 있는 식견의 논객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지나치게 진지한, 그래서 유머 감각이 떨어지고 사람들을 무조건 가르치려 드는, 더구나 자신의 분야를 제외하고는 지식이 빈약한 자칭 '진보'와, 그저 무식할 뿐인 '우파'(우리 사회에 '보수'의 품격 같은 것은 없다는 의미에서) 사이의 '회색지대'가 필요한데.. 그래도 다소 풍자 감각은 가지고 있던 진중권도 저렇게 타락해버리고.. 사실 한국사회에 논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ps. 글로서먼의 <피크 저팬>은 장을 바꿔 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