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라는 이데올로기 트랜스 소시올로지 29
마이클 레이섬 지음, 권혁은 외 옮김 / 그린비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사회에서 '근대화론'은 무엇이었을까.

냉전시대 소비에트와의 싸움에서 미국이 정력적으로 만들어냈던 이데올로기이자 정책이기도 했던 '근대화' 이론의 가장 성공적인/예외적인(거의 대다수의 사회에서 실패했다는 점에서) 모범생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한국South Korea에서 근대화론은 분명히 역사적으로 깊이 있게 검토해야 할 주제임에 분명하다.. 근대화이론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전통' 사회와 문화를 물질적 자원, 합리적 조직 및 사회구조의 입증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고 지도하는 힘은 제국주의 국가와는 다른/예외적인, 즉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체현하는 미국사회에서 나온다는 믿음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한국사회는 해방 이후부터 적어도 1990년대까지 근대화론의 세례를 흠뻑 받은 미국 유학파 엘리트들에 의해 그 틀이 만들어진 사회이다. 한국전쟁의 '혈맹'으로 민주주의의 영원한 모국인 미국은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80-90년대 초반 학생운동의 일시적인 반미 성향을 제외한다면, 지금까지도 가장 친숙한 '우방'이자, 지적 스승일 것이다. 물론 80-90년대 사회과학의 영향으로 역사적으로 미국이 걸어온 제국주의적 속성이나, 해방 8년사 시기 분단의 고착화 과정에서 미국의 많은 의심쩍은 행동들에 대한 인식들이 만들어지고 논의되어 온 것은 분명하다.. 근대화론의 사도들인 교수들에 맞서 맑시즘과 제 3세계 민족해방론으로 무장한 학생들이 세미나를 조직해가며 근대화론을 비판하며, 새로운 변혁이론을 만들어내던 시기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공론과 심정의 영역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반미를 외치며 짱돌을 던지다가도 코카콜라를 마시고 맥도날드를 먹었고(코카콜라를 먹기를 거부했던 시절도 있었고, 그 분들의 의기를 폄하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사회구성체론을 역설하다가, 미국 유학을 떠난 뒤 돌아와서는 그래도 미국 시스템이 가장 훌륭한 것 같다는 모순에 찬 독백을 토로하며 진보 이론을 모색하기도 했다..

 

어쩌면 사회과학의 시대라는 환상이 소멸해버린, 그리고 한국경제의 질적 도약, K-방역의 성공과 함께 찾아온 '선진국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지금에야말로, 우리 사회를 만들어낸 '근대화 이론'이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적어도 과거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도배되어 있던, 그래서 질리도록 달달 외웠던 근대화론의 '교리'를 넘어서는 근대화론의 '장치들'(dispositifs)이 실제로 만들어낸 세상에 대한 '앎'(knowledge)이..

 

그런 점에서 근대화론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역사에 대해 다룬 이 책은 그러한 앎을 만들어내는 도입의 역할을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케네디 정부가 주도한 세 가지 정책-진보를 위한 동맹, 평화봉사단, 베트남 전략촌-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그 이데올로기의 입안자들의 사상적 배경과 그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문화적 이미지와 수사를 검토하고 있다..

 

특히 당시 한국사회와 관련하여 단연 흥미로운 테마는 <평화봉사단>일 것이다. 지금은 어느덧 잊혀져버렸지만, 한국에도 꽤 많은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파견되었고, 그들은 한국사회의 도시와 농촌으로 파고들어가, 여러 근대화 사업들을 함께 하다가 귀국했다. 우리에게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로 잘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나, 한국의 초기 농촌 인류학에서 중요한 민족지를 썼던 빈센트 브란트도 평화봉사단 출신이었다.

저자도 언급하고 있듯이, 이 책의 주목적은 그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이미지와 수사였기 때문에, 실제로 평화봉사단원들은 누구였는지, 그들은 자신들이 파견된 세계 각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그리고 평화봉사단의 공식 이데올로기와 자신의 실제 삶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과 괴리들을 발견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부수적으로 다루어진다..(레퍼런스에서 언급된 Fritz Fischer, Making Them Like Us: Peace Corps Volunterrs in the 1960's, 1998이라는 책이 흥미로워 보인다.) 또 실제로 이데올로기 정책사에서 본다면 '스테레오타입으로 규정된 타자'일수밖에 없는 저개발 사회의 사람들(우리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들일텐데)은 '파란 눈'의 그들을(비유가 좀 그렇긴 한데, 평화봉사단원중에 백인과 비백인의 비율은 어느 정도였을까?)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와 같은 보다 더 개인적으로 흥미로워 보이는 주제들 역시회고록의 일부 인용 외에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사실, 저자에게 어디까지 기대해야 하겠는가.. 이런 주제야말로, 근대화이론의 가장 성공적인 모범생이자, 여전히 '테이크 오프'라는 환상이 지배하는 사회의 '연구자들'이 해야 할 과제가 아니겠는가.. 항상 그렇지만, 해야 할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데.. 모두들 너무 바쁘다.. 

 

 

 

 

코넬대학의 인류학자들은 2년여에 걸쳐 이루어진 페루 지역 마을 조사를 통해 "대학을 갓 졸업하고 단지 3개월의 훈련을 받았을 뿐인 미국 청년들이 사회 발전에 중대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류학자들은 정치 및 사회적 서비스, 여가 활동의형태, 지역 공동체 내에서의 상업 활동 등을 평가하는 "발전 척도"를 사용하여 수도 리마에 100점 만점을 부여하고, 시골 지역 공동체들과 리마의 상대적인 격차를 측정했다. 이 연구는 자원봉사자들이 파견된 15개 마을과 파견되지 안은 5개 마을을 분석한 결과, 평화봉사단이 "전통적인"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결론내렸다. ... "진보"와 "근대성"이란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문제는 변화에 대한 양적 분석 밑으로 사라진 후, 결코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