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의 대륙 - 20세기 유럽 현대사 커리큘럼 현대사 1
마크 마조워 지음, 김준형 옮김 / 후마니타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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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학이 전체 글의 객관적 논지와 거시적 안목의 명료함을 흐리지 않았다는 역자의 말에 100퍼센트 공감. 특히 동서를 균형감 있게 배치하며 20세기 유럽사를 기술했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 발칸사, 그리스사 전공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점이었을까. 홉스봄의 극단의 시대와 함께 읽는 것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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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침의 정치
앤디 메리필드 지음, 김병화 옮김, 서동진 해제 / 이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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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야 할 지점에서 종종 메타포로 비켜가버린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주는 책..

혼자 읽었더라면, 들뢰즈+가타리 이후의 논의들을 반복재생산하는 책이라며 그냥 휙 던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뭐, 그런 혐의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별 넷을 주면서 다소 주저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함께 텍스트를 읽는 공간에서 무엇인가 희미한 그리움을 떠올리게 했다는 점에서 그냥 그렇게 지나쳐갈 수 없었다..

 

그 무엇은 알튀세가 말년에 펜으로 19쪽 정도 쓴 원고의 첫 문장..

 

"비가 온다. 그러니 우선 이 책이 그저 비에 관한 책이 되기를.."

 

 

아마 누군가는 예전에 읽었고, 또 누군가는 들었을 이 전설적인 문장 앞에서 빙 둘러앉은 몇몇 사람들은 순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자신들의 머릿속 사전을 뒤적여가며 그 '사건'같은 순간을 반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떨림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리뷰를 남긴다..

 

마주침이 세계의 실재에 뭉쳐진 원자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창조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분명 마주침은 원자들 그 자체에 실재감을 부여한다. 빗겨남과 마주침이 없었다면 원자들은 그저 추상적인 원소들의 집적물에 불과할 것이고, 거기엔 어떤 일관성이나 존재감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주침과 빗겨남 덕분에 원자의 존재 자체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마주침이 일어나기 전에 원자들은 유령처럼 존재할 뿐이었다.

 

 

개인사든 세계사든 역사가 바뀌는 동안, 위대한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주사위가 예기치 않게 테이블 위에 던져질 때, 아니면 역시 예고 없이 카드 패가 분배될 때, 혹은 광기가 발작할 때, 자연의 힘이 풀려나서 새롭고 놀라운 방식으로 자리 잡을 때 모든 사람에게 이토록 강한 충격을 가하는 것은 바로 이런 흔한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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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영토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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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1,2부에 비해 3부에서 이야기가 갑자기 힘을 잃은 듯한 느낌이다. <소립자>를 썼던 작가를 떠올리며 아쉬워하는 독자들도 많을 듯. 사라진 강렬함을 메울 만한 무엇인가를 찾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문체 속에 묻어나오는 쓸쓸함과 슬픔의 정서-그것이 멜랑콜리아일까-만큼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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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역사 - 거래, 스파이, 거짓말, 그리고 진실
존 루이스 개디스 지음. 강규형 외 옮김 / 에코리브르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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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역사에 대한 훌륭한 개설서. 단 미국의 시각에서라는 부제가 붙었을 때만 별 다섯 개를 줄 수 있다. 냉전의 평화 유지를 위해 강대국들이 치렀던 많은 대리전들은 열전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전쟁의 피해를 감내해야 했던 것은 제 3세계 민중이었다는 점은 철저히 간과되어 있다는 아쉬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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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 손창섭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2
손창섭 지음, 조현일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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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한국 전후문학의 놀라운 성취..

비평가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린다면, "손창섭은 <비오는 날>이라는 작품 하나만으로도 전후 작가로서의 존재 의의를 스스로 증명해냈다."

음.. 과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소설의 첫구절을 읽은 이후로, 장마철이 되면 가끔씩 그 빗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 이미지는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적어도 내게 <비오는 날>은 50년대 한국 사회의 원풍경을 시각적으로, 또 청각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전쟁과 학살이 초래한 파국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은 부패하고 타락한 전후 한국의 심부를 도려내는 듯이 보여준다. 그것은 벤야민이 거쳐갔던 <멜랑콜리>의 위대한 힘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작가가 아닌 생활자로서 손창섭 자신에게는 치명적인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손창섭은 멜랑콜리의 검은 구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는 4.19, 5.16, 그리고 욕망이 약동하는 60년대로 진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자리는 최인훈과 김승옥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잉여인간>은 어쩌면 심연으로 빠지는 자신을 위해 스스로 준비한 동앗줄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동앗줄은 손창섭의 음물함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끊어졌다.. 그것이 저 빈약한 한국문학사에서 커다란 손실인지 아니지 평가할 능력 같은 것은 내게 없다..

 

하지만, 화창한 초여름 주말 오후 그의 소설집을 다시 꺼내 읽노라니, 그가 그려낸 그 황량한 전후 한국사회의 풍경, 좀비들의 세계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가라앉은 자들>, <메두사의 머리를 보아버린 자들>의 세계다.. 이러한 네크로필리아적인 세계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다시 서로를 사랑하고, 또 욕망하면서 <사회>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 지금 우리 사회의 가식들을 한꺼풀 벗겨내면 바로 <인간동물원초>의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면, 元求의 마음은 감당할 수 없도록 무거워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東旭 남매의 음산한 생활 풍경이 그의 뇌리를 영사막처럼 흘러가기 때문이었다.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元求에게는 으레 東旭과 그의 여동생 東玉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들의 어두운 방과 쓰러져가는 목조 건물이 비의 장막 저편에 우울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비록 맑은 날일지라도 東旭 오뉘의 생활을 생각하면, 元求의 귀에는 빗소리가 설레고 그 마음 구석에는 빗물이 스며 흐르는 것 같았다. 元求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東旭과 東玉은 그 모양으로 언제나 비에 젖어 있는 인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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