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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침의 정치
앤디 메리필드 지음, 김병화 옮김, 서동진 해제 / 이후 / 2015년 5월
평점 :
흥미로운,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야 할 지점에서 종종 메타포로 비켜가버린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주는 책..
혼자 읽었더라면, 들뢰즈+가타리 이후의 논의들을 반복재생산하는 책이라며 그냥 휙 던져버렸을 지도 모른다..
뭐, 그런 혐의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별 넷을 주면서 다소 주저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함께 텍스트를 읽는 공간에서 무엇인가 희미한 그리움을 떠올리게 했다는 점에서 그냥 그렇게 지나쳐갈 수 없었다..
그 무엇은 알튀세가 말년에 펜으로 19쪽 정도 쓴 원고의 첫 문장..
"비가 온다. 그러니 우선 이 책이 그저 비에 관한 책이 되기를.."
아마 누군가는 예전에 읽었고, 또 누군가는 들었을 이 전설적인 문장 앞에서 빙 둘러앉은 몇몇 사람들은 순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자신들의 머릿속 사전을 뒤적여가며 그 '사건'같은 순간을 반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떨림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리뷰를 남긴다..
마주침이 세계의 실재에 뭉쳐진 원자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창조해내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분명 마주침은 원자들 그 자체에 실재감을 부여한다. 빗겨남과 마주침이 없었다면 원자들은 그저 추상적인 원소들의 집적물에 불과할 것이고, 거기엔 어떤 일관성이나 존재감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주침과 빗겨남 덕분에 원자의 존재 자체가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마주침이 일어나기 전에 원자들은 유령처럼 존재할 뿐이었다.
개인사든 세계사든 역사가 바뀌는 동안, 위대한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주사위가 예기치 않게 테이블 위에 던져질 때, 아니면 역시 예고 없이 카드 패가 분배될 때, 혹은 광기가 발작할 때, 자연의 힘이 풀려나서 새롭고 놀라운 방식으로 자리 잡을 때 모든 사람에게 이토록 강한 충격을 가하는 것은 바로 이런 흔한 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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