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와 크레이크 미친 아담 3부작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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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거릿 애트우드M. Atwood의 작품들은 꼼꼼이 챙겨보는 편인데, 품절되었던 <인간종말리포트>가 <오릭스와 크레이그>라는 본명으로 재출간되었다.. 같은 출판사에 번역자도 동일하니, 아마 미친 아담 삼부작 시리즈를 위해 개정판을 낸 것 같다.. 절판될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이니 일단 1권을 구입하기로 한다.. 그래도 예전 2권으로 나눠서 냈던 것을 한 권으로 만들었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인가.. 요새 민음사가 자꾸 책을 2권으로 나눠 출간해서 이래저래 욕을 먹고 있는 것 같긴 하던데..

 

어쨌거나, 한 해가 저물어가는 연말.. 기나긴 겨울밤을 보내는 하나의 방법으로 미친 아담 삼부작 을 읽는 것은 탁월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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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마을>(엘리트들의 거주지)과 <평민촌>의 구분.. 인간성을 상실한 과학기술의 폭주.. 국가의 경계를 넘어버린 자본들.. 유전자 변형으로 탄생하는 새로운 생명체들.. 새로운 종의 인간 탄생(크레이커.. 선과 악의 관념마저 부재하는 완전히 순수한 형태의 인간.. 인류멸종계획(인류종말마라톤).. 그리고 세상의 끝..

물론 이러한 도식 자체는 이제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많은 소설/영화들--<가타카>, <눈먼자들의 도시>, <20세기 소년>, <신세기 에반게리온>.. 또 뭐가 있더라--에서 한 번씩은 보았음직한 <토폴로지>들의 변주..  
하지만 저자는 이 낯익은 도식들을 가지고 실로 놀랍고 <멋진 신세계>를 연출해낸다.. <인류 멸망 마라톤>을 꿈꿨던 한 천재 몽상가가 만들어낸 변종 바이러스로 멸종된 인류.. 초식동물로 화해버린 <새로운 인간/크레이커들>--그걸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인간들의 사체를 먹으면서 텅 빈 도시에서 살아가는 새로운 변종 동물들--<늑개>, <돼지구리>, <너구컹크>--.. 그것들은 인간만큼 교활하고 사악하다..그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인간 중 하나인 주인공 스노우맨의--그 이외에 살아남은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소설의 후반부에야 비로소 잠깐 내비쳐진다-- 눈을 통해 펼쳐지는 세계는 실로 <아포칼립스, 나우>의 풍경이다..

이 곳에는 돼지구리들의 흔적이 너무 많다. 그 야수들은 물러가는 척 했다가 다음 골목에서 기다리는 짓을 할 정도로 약다. 놈들은 그를 쓰러뜨리고 짓밟은 다음, 그의 몸을 찢어발기고 내장부터 먹어버릴 것이다. 그는 놈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머리가 좋고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동물, 돼지구리. 몇몇 돼지구리들의 교활하고 사악한 머릿속에서는 인간의 대뇌 신피질 조직이 자라고 있을 수도 있다..
... 돼지구리, 그놈들은 언제나 탈출의 명수였다. 만일 놈들에게 손가락이 있었다면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다. ... 놈들이 여기로 오고 있다. 놈들은 코로 밀어 문을 열고 이제 첫 번째 방에 들어와 있다. .. 놈들은 꾸역꾸역 들어와 초조한 듯 꿀꿀거리며 그의 발자국 냄새를 맡는다. 그 중 한 마리가 창문 너머로 그를 발견한다. 더 시끄럽게 꿀꿀거리는 소리. 이제 놈들 모두가 일제히 그를 올려다본다. 그들 눈에 보이는 것은 시식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맛있는 고기 파이에 붙어 있는 그의 머리다. 가장 큰 수컷 두 마리(물론 날카로운 엄니가 났다)가 나란히 문 앞으로 와서 어깨로 들이받기 시작한다. 돼지구리들은 협동작업을 하는 존재들이다. 저 밖에는 엄청난 근력을 가진 놈들도 도사리고 있다..

원래 <돼지구리>라는 변종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이는 다름 아닌 스노우맨, 아니 어린 시절 <지미>의 아버지였다.. 돼지구리 프로젝트의 목표는 인간과 동일한 조직을 지닌 아주 간단한 여러 가지 장기를 성공적인 유전자 이식용 돼지 숙주 내부에서 배양하는 것이었다.. 이식이 순조롭고 거부반응이 없는 장기, 그러면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매년 더 많은 변종을 만들어내는 미생물과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장기를 생산해내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돼지구리의 신장과 간과 심장이 보다 빨리 완성될 수 있도록 조숙 유전자가 접합되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가능할 것만 같은, 지극히 <자본적이고> <인간적인> 발상.. 그래서 애트우드는 자신의 소설을 SF가 아니라, 사변소설(speculative novel)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불멸>을 꿈꿨던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의 세포를 지닌 변종 동물이 아포칼립스 이후 인간의 시체를 들쑤시며 내장을 파먹고, 또 살아 있는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스노우맨.. 그는 바이러스로 세계의 인류가 멸망하던 그 날, 새로운 인간들(크레이커들)을 이끌고 세계의 끝으로 향한다.. 바이러스와 함께 크레이커들을 만들어낸 친구 크레이크가 신이라면, 그는 <노아>이자, 동시에 <모세>이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요된 것이었다..  더구나 그는 결코 이들과 <정서적으로> 교류할 수 없다.. 세계의 끝에서,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그는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그는 흐느낀다.. "크레이크! 내가 왜 지구상에 있는거지? 왜 나만 홀로 남겨진거야? 내 프랑켄슈타인 신부는 어디 있어?"

소설은 두 가지 <가능성>을 남기고 있다.. 하나는 크레이커들이 <진화>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창조주인 크레이크의 계획대로라면, 크레이커들의 사회에는 영장류의 파괴적인 특징, 즉 현재 세계의 병적 상태를 유발시킨 특징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위계질서를 창조해낸 신경 복합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냥꾼도 아니고 땅에 굶주린 경작자도 아니기 때문에 텃세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뭇잎과 풀과 뿌리와 한 두 가지의 나무 열매만을 먹고 살기 때문에 식량은 언제나 풍부하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을 제외한 모든 포유류처럼 그들 역시 정기적으로 발정기에 도달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성(性)은 계속 되는 괴로움이 아니며 사나운 호르몬의 구름도 아니다.. 적어도 이론상으로 본다면 인간의 폭력성이 일체 제거된 개체들의 군집..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사회>가 아니다..
 
사실 이들은 물려줄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가계, 결혼, 이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거주 환경에 완전히 적응하기 때문에 주택이나 도구 혹은 무기 같은 것, 또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옷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이들은 왕국, 성상, 신, 돈같은 위험한 상징적 표현을 고안해 낼 필요도 없다. 가장 좋은 점은 자신들의 배설물을 재활용한다는 것이다. 뛰어난 유전자 조작 기술을 통해 유전적 재료를 결합시킴으로써..

하지만 그들은 진화하기 시작한다.. 무리 중의 하나는 서서히 일종의 지도자로서 각성을 시작한다.. 그리고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자기방어본능>도 깨어난다.. 심지어 그들 사이에는 원시적인 종교적 의식도 생겨난다.. 며칠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스노우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들이 만들었다는 그를 닮은 <조상>이다.. 드디어 <상징>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창조주의 의도를 벗어나버린 그들의 <진화>는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또 하나는 대재앙에서 살아남은 자기종족의 출현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스노우맨은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자신과 비슷한 외모의 사람들이 여기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크레이커들로부터 전해듣는다.. 그는 바로 그들을 찾기 위해 행동에 착수한다.. 마치 무인도의 모래사장에서 자신 이외의 발자국을 발견한 로빈슨 크루소가 느꼈을 환희와 공포에 몸을 떨면서.. 그들은 어떤 사람일까.. 과연 그들과 접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일까..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그는 텅 빈 허공에 대고 속삭인다..
...
습관처럼 눈사람은 자신의 시계를 든다. 시계가 공허한 얼굴을 내보인다.
0시로군. 눈사람은 생각한다. 갈 시간이다.

어디로 간다는 것일까.. <세계의 끝>에서 또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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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손 - 살아있지만 인격의 일부라고 말할 수 없는 인간적인 어떤 것에 대한 법적 탐구
장 피에르 보 지음, 김현경 옮김 / 이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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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가 이번엔 인격과 몸이라는 주제를 한국사회에 던져주었다. 서구의 로마법, 교회법 전통과는 ‘다른‘ 문화적 전통의 한국사회에서 이 주제는 어떻게 논의될 수 있을까. 다른에 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그 계보를 읊어줄 언어가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식민지가 별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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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데올로기 2 Marx Engels 전집 3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병창 옮김 / 먼빛으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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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완역되었다.. 번역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와.. 그런데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읽을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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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계급재생산 - 반학교문화, 일상, 저항
폴 윌리스 지음, 김찬호 외 옮김 / 이매진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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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 책에 대해, 저자의 관점에 대해 한 번도 젠더적 관점에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저자인 윌리스는 맑스주의적 사적 유물론과 문화연구의 접합이라는 1960년대 영국 맑스주의 전통에 충실한 연구자처럼 보였고..

이 책의 관심은 무엇보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그나마 유일한 사다리로 여겨졌던 학교/교육이 실제로는 계급 재생산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반문화 전통이 이러한 학교의 재생산 구조를 간파(penetration)하면서도, 왜 또 그 반문화가 간파를 제약(limitation)하는 구조적 요인이 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문화기술지(=민족지)라는 방법론을 통해 1970년대라는 상황에서 본다면 꽤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했다고 생각해왔을 뿐..

 

이미 반문화의 담지자들인 '싸나이'가 그의 주된 연구대상이었을테니, 인터뷰이로 나오는 여성들 역시 '싸나이'들의 '남성성'/마초이즘을 설명하기 위한 증언자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것 역시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역시 1970년대 영국사회,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에서 연구자가 갖는 포지션의 문제가 있었을테고, 그렇게 본다면 윌리스의 연구를 그렇게까지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히 윌리스의 연구가 영국의 학교문화 전체를 포괄할 수는 없을 것이고, 연구자들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학교제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다만, 노동자계급 출신의 일원으로서,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그 제도에 포섭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가진, (19세기부터 축적해온)'자랑스러운' 노동자계급의 문화가 오히려 자본주의 재생산에 역설적으로 기여하는가에 대한 그의 분석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비관주의로 흐르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진성에 대한 논리적 가능성을 찾으려 하는 자세를 견지하려 하는 점.. 그것을 문화기술지적 방법론을 통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재생산 속에 깔려 있는 깊은 분열과 극심한 긴장을 읽어내려 했다는 점은 여전히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노동자계급 사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엄연한 현실이 존재하고, 또 <밥, 꽃, 양>의 현실을 이미 알아버린, 단일한 노동자계급의 문화라는 이상이 이미 쇠락해버린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 책의 한계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다시 이 사회를 분석해야 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문제 전환을 요구하는 떡밥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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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땅의 이방인들 - 미국 우파는 무엇에 분노하고 어째서 혐오하는가 이매진 컨텍스트 62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유강은 옮김 / 이매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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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사회에서도 병리적 현상으로 출현하고 있는 상호소통이 불가능한 '거대한 벽', 그리고 우파들의 분노와 혐오, 나아가 자신들의 이익과 무관한 정파에 기꺼이 몸을 바치는 거대한 역설을 이해하는 데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역작..

감정사회학의 권위자답게, 저자는 이러한 정치적 현상에서 감정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좌파와 우파 모두 '감정 규칙'feeling rule이 작동한다. 우파는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에 관한 자유주의적 통념, 곧 게이 신혼부부를 보고 행복한 감정을, 시리아 난민의 곤경을 보고 슬픈 감정을, 세금을 내는 일에 관해 분노하지 않는 감정을 느껴야 하는 통념에서 벗어나려 한다. 좌파는 편견을 본다. 이런 규칙은 우파가 가진 신념의 정서적 핵심에 도전한다. 그리고 201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억만장자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 같은 자유분방한 후보가 운집한 지지자들을 응시하면서 '이 모든 열정'을 보라고 말할 때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요소가 바로 이런 핵심이다.

 

물론 내밀한 감정을 사회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미국 사회에서 우파들이 느끼는 심정의 세계는 너무 복잡해서 객관적으로 추출해내기 어렵고 , 그리고 그들의 실제 이익과는 반하는 정치적 행동의 역설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는 흐릿하기만 하다.. 통계가 이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까. 저자가 차용하는 방법은 심층 인터뷰를 통한 이해의 방법론이다. 이 방법은 밑도 끝도 없는 작업이어서, 언젠가는 핵심에 도달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 길은 너무 험난하다.. 그래도 이런 많은 품과 시간이 드는, 현재의 자본주의 합리성에서는 그다지 바람직하다고 간주되지 않는 작업을 할 수 있는 극소수의 공간이 학계academy라고 한다면, 세금으로 책을 읽고, 또 연구하는 연구자들이야말로 사회가 자신들에게 준 이 특권을 소중히 여기면서 자신의 공간에서 작업을 수행해나가야 할 것이다..

 

세대간, 정파간, 또 불명료한 여러 전선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역설들을 이해하는 시도로서 감정사회학, 감정인류학적 연구가 조금이나마 이루어지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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