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계급재생산 - 반학교문화, 일상, 저항
폴 윌리스 지음, 김찬호 외 옮김 / 이매진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역시.. 이 책에 대해, 저자의 관점에 대해 한 번도 젠더적 관점에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저자인 윌리스는 맑스주의적 사적 유물론과 문화연구의 접합이라는 1960년대 영국 맑스주의 전통에 충실한 연구자처럼 보였고..

이 책의 관심은 무엇보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그나마 유일한 사다리로 여겨졌던 학교/교육이 실제로는 계급 재생산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반문화 전통이 이러한 학교의 재생산 구조를 간파(penetration)하면서도, 왜 또 그 반문화가 간파를 제약(limitation)하는 구조적 요인이 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데올로기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문화기술지(=민족지)라는 방법론을 통해 1970년대라는 상황에서 본다면 꽤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했다고 생각해왔을 뿐..

 

이미 반문화의 담지자들인 '싸나이'가 그의 주된 연구대상이었을테니, 인터뷰이로 나오는 여성들 역시 '싸나이'들의 '남성성'/마초이즘을 설명하기 위한 증언자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것 역시 분명하다..

하지만 이 역시 1970년대 영국사회,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에서 연구자가 갖는 포지션의 문제가 있었을테고, 그렇게 본다면 윌리스의 연구를 그렇게까지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히 윌리스의 연구가 영국의 학교문화 전체를 포괄할 수는 없을 것이고, 연구자들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학교제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다만, 노동자계급 출신의 일원으로서,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쩌면 유일하게 그 제도에 포섭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가진, (19세기부터 축적해온)'자랑스러운' 노동자계급의 문화가 오히려 자본주의 재생산에 역설적으로 기여하는가에 대한 그의 분석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비관주의로 흐르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진성에 대한 논리적 가능성을 찾으려 하는 자세를 견지하려 하는 점.. 그것을 문화기술지적 방법론을 통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재생산 속에 깔려 있는 깊은 분열과 극심한 긴장을 읽어내려 했다는 점은 여전히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노동자계급 사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엄연한 현실이 존재하고, 또 <밥, 꽃, 양>의 현실을 이미 알아버린, 단일한 노동자계급의 문화라는 이상이 이미 쇠락해버린 사회에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 책의 한계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다시 이 사회를 분석해야 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문제 전환을 요구하는 떡밥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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